문학 전문 창작공간, 연희문학창작촌을 가다
[이런 공간 어때요①] 역사를 연구하던 곳이 문학을 위한 공간으로
▲ 예전 시사편찬위원회 당시 폐공간이었던 연희문학창작촌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 최초의 문학 전문 창작공간이다. 서울시의 역사를 연구, 편찬하는 시사편찬위원회를 리모델링해 지난 2009년 11월에 개관했다. 당초 시사편찬위원회가 총 5동이었는데, 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4개동이 사용되었다. ⓒ 연희문학창작촌
몇 달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다. 연희 삼거리에서 300미터쯤 갔을까.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길이 점점 좁아지고 높은 담장이 보였다. 어느 젊은 남자가 내 차를 가로 막는다.
"어떻게 오셨죠?"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조용히 내게 말을 걸었다. 마치 집주인 마냥 물었다. 누가 들을까 조심스럽게.
"연희....뭐였지??...아... 연희문학창작촌 가려구요."
"여기가 아니구요... 다음 골목에서 우회전을 하시면 됩니다."
밀집된 주택가 안에 위치한 연희문학창작촌은 문인들을 위한 창작공간이다. 다시 말해 시인이나 소설가와 같은 작가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레지던스인 셈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필자가 마주했던 그 낯선 남자는 전두환 전대통령을 경호하는 경찰이었다.
"아...이곳이 그 연희동이었지..."
문인들을 위한 창작공간, 연희문학창작촌
▲ 연희문학창작촌 전경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에서 조성하고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중인 서울시 최초의 문학 전문 창작공간이다. 대지 6,915㎡, 연면적 1,480㎡의 부지 위에 총 4개의 주택형 건물과 야외무대, 소나무와 과실수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과 산책로로 구성되어 있다. ⓒ 연희문학창작촌
얼마 전 사석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중견 문인들과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더 자세히 얘기하면 한 분은 시인이었고, 다른 한 분은 소설가였다. 대화의 물꼬를 틀겸 질문을 던졌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초등학교 잔혹 동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르가 달라서 일까? 서로의 생각이 완전히 어긋났다. 다음으로 이어진 얘기는 연희문학창작촌이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처럼 울창한 숲과 자연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워요. 사실 저같은 시인들은 이 곳에 입주하는 것이 일종의 꿈이기도 합니다."
"저도 20대에 멀쩡한 직장생활을 다니다가 소설을 쓰겠다는 신념으로 시골에 들어간 적이 있었죠. 드라마 속에 나오는 작가처럼 방구석에 앉아서 원고지에 쓰다가 구겨서 버리고, 다시 쓰다 버리고... 몇 날을 그러고 지냈는지 몰라요."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 최초의 문학 전문 창작공간이다. 서울시의 역사를 연구, 편찬하는 시사편찬위원회를 리모델링해 지난 2009년 11월에 개관했다. 당초 시사편찬위원회가 총 5동이었는데 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4개동이 사용되고 나머지는 경호동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연희문학창작촌은 조용한 주택가로 둘러싸여 있으며, 입구에 들어서면 울창한 숲과 소나무, 과실수로 이어진 산책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여기 수목원 아니야?" 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4개의 집필동은 각각 '끌림', '홀림', '울림', '들림'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이 중 3개동은 국내작가 전용 레지던스 공간이며, 나머지 동은 해외작가들을 위해 운영된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공간에 머물며 문학을 위한 집필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다.
문인들을 위한 창작공간이라... 처음에는 다소 의아했다. 막상 떠올려보면, 서울보다는 고즈넉한 시골이나 폐교를 활용한 공간에서 집필이 더 잘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몇 발자국만 걷다보면 왜 이곳이어야 하는지 알 것이다. 보이는 건 숲이며, 들리는 건 새소리뿐이니까.
시내 한복판이지만 서울의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성역과 같은 곳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단지 문인들만을 위한 전용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산책만 하고 돌아가기에 아쉬운 분들을 위해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됐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놀랄 것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의 대표적인 공간 두 곳을 추천한다. 산책로 안쪽을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울림동 지하에 위치한 '문학미디어랩'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이곳은 문학을 비롯해 예술과 관련된 서적과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북카페다.
▲ 연희문학창작촌 공간배치도연희문학창작촌은 모두 20개의 집필실로 구성되어 있는 4개의 집필동은 각각 '끌림', '홀림', '울림', '들림'이란 명칭으로 불린다. 1~3동(끌림, 홀림, 울림)의 17개 집필실은 국내작가를 위한 레지던스로, 4동(들림)의 3개 집필실은 해외작가를 위한 레지던스로 운영되고 있다. ⓒ 연희문학창작촌
문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국내외도서, 문학 관련 정기간행물, DVD 등 총 8500여종을 비치하고 있다. 단 모든 자료는 미디어랩 안에서만 열람이 가능하다. 또 시민, 작가, 문학이 하나로 호흡하는 대표적인 '야외무대'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야외무대에서는 연희문학창작촌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는 '연희목요낭독극장'을 비롯해 다양한 행사가 연중 계속된다.
"그동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과 같이 탁 트인 공간에서 진행한 행사와 여기는 느낌이 사뭇 달라요. 뭐랄까...관람하기 보다는 마음의 정화를 받는 느낌이에요" ('304낭독회' 프로그램 참여자)
"지난 10년 동안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페이스북을 보고 이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됐는데, 두꺼운 책을 같이 읽고, 고민하고 얘기를 나눈다는 것...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동을 느껴요" ('느리게 책읽기'에 참여한 허유리씨)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소소하게(?) 진행된다. 다른 의미로 얘기하면 정적인 느낌이다. 작가의 낭독공연도 진행된다. 바로 옆 자리에서 작가들이 내뿜는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 음향장비를 사용해 큐시트에 따라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니고 관객이 자연스럽게 출연자가 되기도 한다.
매주 수요일마다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브런치를 먹으며 문학에 대해서 공람하는 '맛있는 책다방'가 대표적이다. 또 생애전환주기 연령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1박2일 문학캠프 생전처음(생애전환처음캠프의 줄임말)'도 색다르다. 이밖에도 청소년들에게 정규 교과과정의 직업체험을 연계하는 '미래문학IN'도 다른 곳에선 느끼기 힘든 프로그램이다.
▲ 연희문학창작촌 문학미디어랩3동 '울림' 지하에 위치한 문학미디어랩은 다양한 문학 및 예술 관련 서적과 함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북카페 형식의 열린 문화 공간이다. 문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국내외도서, 문학 관련 정기간행물, DVD 등 총 8500여종을 비치하고 있으며,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단, 모든 자료는 문학미디어랩 내에서만 열람 가능하다. ⓒ 연희문학창작촌
2014년동안 연희문학창작촌을 거쳐간 문인들은 총 81명이다. 짧게는 몇 개월 동안 각자의 집필실에서 쌓아왔던 원고들이 모여서 작년에 연간지가 처음으로 발간됐다. 연간지에는 입주작가들의 원고뿐만 아니라 '연희문집', '창작노트' 등 각 페이지마다 지난 일년 동안 작가들의 발자취가 녹아있다. 연희문학창작촌의 배소현 매니저는 "짧은 기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다작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작가들은 새로운 작업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으며, 그런 노력들이 하나하나 모여 연말에 한권의 소중한 결과물로 나온 것이다"고 의미를 밝혔다. 연희문학창작촌은 분명 문인들을 위한 창작공간이다. 그러나 내재적 작품활동을 위한 공간만으로 묻히기엔 너무 아깝다. 문학인들이 세상과 만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연희문학창작촌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은 팁이다.
▲ 연희문학창작촌 배소현 매니저연희문학창작촌 배소현 매니저 ⓒ 이규승
- 문학을 위한 창작공간이라... 조금은 낯설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문학을 위한 기관이 정말 많다. 가령 토지문화재단 등과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이 곳에서도 문학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
- 다른 곳과 연희문학창작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는 빌딩과 숲이 아닐까?...(웃음)..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일반적인 문학 관련 행사는 주로 대형 서점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심속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뭐가 보이는가?" 바로 눈에 보이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게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참가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비교도 할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 공간이 주는 안락함 이거 말고 콘텐츠에 대한 부분도 다를 것 같다.
"일반적으로 대형 서점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유명 작가의 출판기념 사인회나 작가와의 만남이 주를 이룬다. 신작이 나올 때 책을 소개하고 작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대중들과의 만남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작가보다 문학이 중심이다."
- 문학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 한다면?
"팬미팅과 같이 단순히 작가를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에 따라 주제를 정한다. 그 주제에 따라 시민들이 만나고 싶은 작가를 섭외한다. 연희문학창작촌의 대표 프로그램인 '연희목요낭독극장'이 그것이다. 지난 5월달에 진행된 행사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을 소재한 작가와 작품들을 기획했다. 단순한 작가 중심의 신작에서 벗어나 내용에 관심있는 분들이 행사를 기다린다. 이밖에도 일반인을 위한 시와 소설 창작교실인 '연희문학학교'도 있다."
- 이밖에도 올해 첫 선을 보이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달라.
"여기가 문인들을 위한 창작공간이지만 문인들만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문학에 관심있는 분들이 보다 많이 찾아 올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서대문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 전문 마을공동체 '우듬지'의 기획으로 진행되는 '브런치와 함께 하는 맛있는 책다방'과 너무 어려워 책장 속에 묵혀두었던 책을 함께 읽어보는 '느리게 책읽기'가 대표적이다."
- 마지막으로 연희문학창작촌에 대해서 한 마디 해달라.
"앞에서도 말했지만 문학인들 위한 창작공간이기도 하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알차게 준비되어 있다. 단순히 작가들이 읽어주는 낭독공연과 같이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문학의 속으로 들어가 참여하는 것들을 많이 선보일 것이다. '맛있는 책다방'의 경우는 그림책을 보고 다른 참여자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진다. 자기가 묻기 위해서 책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기 때문에 책을 더 폭넓게 이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느리게 책읽기'는 철학이나 인문학과 같이 꼭 읽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을 천천히 곱씹어가면서 다 같이 읽고 얘기를 나눈다. 책은 혼자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읽었을 때 재미가 배가 된다. 연희문학창작촌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알았으면 좋겠다."
연희문학창작촌은? |
▶4개동(지하1관, 지상1층), 산책로, 야외데크 (연면적 1,480.15㎡) ▶서울시 서대문구 증가로 2길 6-7 (연희동 203-1) ▶02-324-4600 ▶운영시간 : 월~금 10:00~17:00 / 주말, 명절, 공휴일 휴관 ▶오시는 길 →지하철/버스 : 2호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동교동 방향 7612 버스 환승, 연희A 지구 아파트 하차, 도보 3분)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 출구 (약 50m 직진 후 7738 버스 환승, 연희A 지구 아파트 하차, 도보 3분) ▶홈페이지 www.facebook.com/sas.yeonhui http://cafe.naver.com/seoulartspaceyeonhu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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