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이 먹여주는 밥, 공허하다
[리뷰] 음식이 점령한 예능 프로그램,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 KBS <요리인류> ⓒ KBS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천체의 발견보다 인류 행복에 더 크게 이바지한다."
- 장 앙텔름 브리야샤바랭 <미각의 생리학> 중에서
돈과 성공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쥐어짜는 시대다. 허리 옆에 들러붙은 지방은 인격이 아닌 재해이며, 삶이 아닌 일하기 위해 먹는 것이 당연한 시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식의 재료가 아닌 성분에 집착하고, 신선도가 아닌 조리 시간에 집착한다.
위대한 미식가였던 브리야샤바랭은 식욕이란 인류에게 신이 안겨준 놀라운 선물이라 말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런 비극적인 시대상을 반영하듯 음식에 대한 탐닉을 죄악시 해왔다. '한 끼 때웠다', 혹은 '식사하셨습니까?'라는 한국식 표현은, 끼니를 먹는 차원을 넘어 음식의 맛을 즐기고 음미하는 것이 상당히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느끼게 한다.
덕분에 미디어에선 '음식'이 주류다. 연애도, 군대도, 육아도, 결혼도, 휴가도 대신 해주는 텔레비전이 이젠 음식까지 대신 먹어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음식이 점령한 TV 프로그램들
▲ tvN <삼시세끼> ⓒ tvN
그 중 tvN의 <삼시세끼>는 지난 백상예술대상에서 나영석 피디가 TV부문 대상을 받으면서, 그들이 이 분야에 최고임을 알렸다. 나영석 작품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일상을 낯설게 하기' 바로 그 콘셉트가 음식, 그리고 배우들과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가장 훌륭하게 보여준 <삼시세끼>는 그와 작가들의 놀라운 운용의 묘와 맞물려 아쉬움 없이 순항 중이다.
'불을 준비합니다!'라는, 인류 미식과 음식의 역사를 한 줄로 압축한 멋진 문구로 시작한 <수요미식회>. 프로그램 초기 참신한 기획력이 대중의 눈을 잡았지만, 시청률의 경우 MC진, 시간대 변경과 같은 변화에도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템에 따른 편차가 있다고 해도 음식 자체에 대한 토론보다는 언젠가부터 지방보다 '수도권 맛집'에 국한한 품평회로만 이어지고 있는 점은 확실히 아쉽다.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의 처음 기획 의도는 집에 있는 간단한 재료로 손쉬운 음식을 만들어내자는 인포테인먼트의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이제 이 프로그램의 주인은 음식이 아닌 셰프, 바로 그들이다.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이들은 치솟는 셰프의 인기만큼이나 시청률도 연일 상한가다. 최근 셰프들의 과한 의존도에 따른 부작용도 분명히 있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만큼 새로운 화제의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
백종원 셰프 또한 이제 단순히 탤런트 소유진의 남편이라거나 성공한 외식업자라는 수식어는 별로 어울리지 않게 됐다. 간단하면서도 가장 평균적인 레시피를 제공하는 백종원이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집밥 백선생>이 3회까지 시청률 2.8%를 찍어낸 그의 저력은, 방송 후 가장 많이 회자되는 레시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먹는 요리'가 아닌 '하는 요리'의 틈새 시장을 제대로 찌른다.
예능뿐 아니라 시사, 교양 부문에서 음식의 힘은 강하게 발휘한다. 가장 깨끗한 한국의 맛과 과장하지 않은 재료. 이렇게나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살리면서, 동시에 근사한 최불암의 내레이션이 깔리는 KBS의 <한국인의 밥상>. 특별한 연출이나 형식이 없는 다큐임에도 평균 시청률 8%를 상회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일 어버이날 특집 방송에선 9.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 저력을 과시했다.
또한 공영 방송만이 할 수 있는 기획이던 KBS의 총 8부작 다큐 프로그램 <요리 인류> 역시 음식 문화에 대한 깊은 고찰을 인정받으며, 지난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요리의 본질, 음식의 이해, 그로 인한 문화를 포괄하며 음식의 발전 가능성을 논하는 이 작품은 국내에서 제작된 모든 음식관련 프로그램 중 가장 폭넓게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 볼 만하다.
그 외에도 지역 고수들의 걸쭉한 입담이 있는 <한식대첩 3>, 신동엽·성시경의 '케미'가 돋보이는 <오늘 뭐 먹지>. 감각적인 여성의 눈으로 음식을 잡는 <테이스티 로드>나 2010년부터 방영한 잔뼈 굵은 <식신로드>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다.
▲ KBS <요리인류> ⓒ KBS
범람하는 음식들, 허기진 대중들
한낱 식당 홍보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던 TV속 음식 프로그램들은 케이블 혹은 종편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하지만 영화 <트루맛쇼>에서 보았듯 이러한 진화는 결국 또 다른 허구를 만든다.
좋든 싫든 대중은 <삼시세끼>에서 외식 사업과 미디어를 선도하는 CJ의 통조림을 목도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한식대첩>이나 백 선생, 혹은 성시경과 신동엽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식재료 역시도 어딘가 특정 제품임을 인지할 것이다. PPL(간접 광고)에 대한 비난을 떠나 이와 같은 범람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현재와 같은 요리 프로그램의 성행이 식욕에 억압된 대중의 욕구라 분석하기도 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홍보에 속고, 싸구려 '무한 리필'집이 득세하고, 화학 조미료에 범벅돼도 한식이 최고라는 어긋난 기치 아래 다 같이 찾지 못했던 미식에 대한 순수한 욕구라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모니터에 뜨는 음식을 혀로 핥지 못한다. 씹어 먹지 못한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처럼 넘쳐 흐르는 음식의 시대에서 대중이 원하는 것은 결국 눈 앞에 따뜻한 식사다. 상업적인 TV 프로그램에서 무슨 품격을 찾을까. 아무리 떠들어 봐야 결국 내 눈 앞에 소박한 한 끼가 절실한 시대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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