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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청와대 입성 전 '하극상 시행령' 반대는 '사실'

[오마이팩트] 2005년 입법 취지 어긋난 시행령 비판

등록|2015.06.04 17:38 수정|2015.06.05 17:49
[기사수정 : 5일 오후 5시 47분]

▲ 사실검증 '진실' ⓒ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상위법 취지에 어긋난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를 당연히 여겼다? 현재 당청 관계를 '시베리아'로 만든 국회법 개정안 사태를 보면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모법(母法) 취지에 어긋난 정부 시행령에 대한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정을 마비시키고 정부를 무기력화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청와대가 4일 밝힌 얘기를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이날 "박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 시절 현재 논란 중인 국회법 개정안보다 더 강제력 있는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다"라는 지적에 대해 "발의가 아니라 서명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박 대통령이) 1998년 국회에 들어갔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공동발의 참여는) 자명한 일이라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즉, 당시 '정치 초년병'이었던 박 대통령이 특별한 뜻 없이 동료 의원의 요청에 응한 것이란 설명이다(관련 기사 : 청와대 "박 대통령, 98년 국회법 개정안 땐 서명만 한 것").

그러나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 '기록'은 다르다. '국회의원' 신분인 박 대통령은 분명 행정부가 국회의 입법취지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당대표 땐 입법 취지 어긋난 시행령 비판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단, 국회법 개정안 문제부터 다시 살펴봐도 그렇다. 새누리당은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 권한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1988년 이후 또 다시 공동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 발의 취지도 지금의 강제성 논란과 유사하다. 대표 발의자인 심재철 의원은 "17대 국회 개원 이후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수많은 행정입법이 제정·개정됐지만 국회에서의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국회가 법으로 위임한 범위를 넘어서 행정입법을 만드는 초과입법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해당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을 통보하여야 한다는 강제규정으로 개정하고 소관 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을 대통령령 등에 반영하도록 한다"라고 규정했다.

이는 현재 '위헌' 논란을 사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보다 더 강제성이 부여된 안이다. 현재 논란 중인 개정안은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 문구 중 '처리'의 의미를 놓고 여야가 논쟁을 벌일 정도로 강제성 유무가 정확치 않다.

특히 이 개정안의 발의 시점을 볼 필요가 있다. 이 개정안은 2005년 6월 9일 발의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정치 초년병'이 아니라 '한나라당 대표'였다. 박 대통령이 당을 이끌 때, 그 당이 앞장서 국회의 시행령 수정·변경 요구를 강화한 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 본인이 당시 국회 입법 과정에서 관철하지 못한 목적을 시행령 제정으로 손 쉽게 얻으려 하는 정부의 '꼼수'에 단호히 비판했다.

2005년 5월 13일 한나라당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신문법 시행령' 문제를 지적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당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독소조항이라고 반대해 삭제된 내용이 문화관광부 시행령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라며 "이는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입법부 권한 강화'에 힘썼던 국회의원 사라지고...

이밖에도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각종 정치 현안을 다루면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권위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2004년 10월 2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가건전재정법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의 골자는 정부 산하기관과 공기업도 전부 국가채무 범위에 넣도록 하고 10월 초로 돼 있던 정부 예산안의 국회 제출시기를 매 회계연도 4월 10일까지 앞당기는 등 국회의 재정통제권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즉, 입법부의 권한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2004년 "한나라당 나쁜 건 세상이 다 안다"는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 발언 논란 때도 국회가 '국민의 대표'임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이 문제를 놓고 "야당을 무시하는 행동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해찬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며 국회 의사일정을 중단했을 땐 "한나라당은 (의사일정을 중단)하고 싶지 않지만 대의민주정치가 이리되면 안 되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2005년 6월 청와대의 오찬 제안을 거부하면서는 자신에게 하루 전날 전달한 '일방통보식 초청'을 문제 삼았다. 즉, 청와대가 국회보다 우위에 있다는 '권위주의적 소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의원총회에서 이를 거론하며 "그것 때문에 오찬에 불참한 것은 아니지만, 일방적인 통보는 참여정부와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라며 "권위주의의 극치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2006년 2월 국무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처음 열렸을 때는 "대통령이 국무위원 청문회의 입법 취지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다"라고 비판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모습은 청와대 입성 후 사실상 중단됐다. 오히려 국회가 제대로 국정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비판 수위만 더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6일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가 대표적 사례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회 입법을 두고 "막 나오는 법"이라고 질타했다. 그후 13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돈 쓰는 사람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라며 국회 입법시 재원조달 방안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 "돈 쓰는 사람 따로..." 박 대통령 또 국회 비판).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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