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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열었던 화장실 문, 낯선 여인이 목욕을?

노총각이 노총각들을 위해 쓰는 일기(22)

등록|2015.06.06 15:56 수정|2015.06.06 16:15
"이왕 하는 것 더 깨끗하게 하면 좋죠. 돈은 다른데 아끼는 것이라고요."

사회에서 알게 된 친한 동생이 있는데 이 녀석은 목욕탕에 갈 때 마다 꼭 '때밀이'(목욕관리사) 서비스를 이용한다. 돈 쓸 데가 없어서가 아닌 보다 더 깔끔하게 구석구석 깨끗해지기 위해서란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목욕관리사의 존재는 알았지만 구태여 이용하지는 않았다. 왠지 돈을 주면서까지 때를 미는게 사치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호기심 반 필요 반으로 이용해봤다. 아무리 신경 써서 때를 밀어도 손이 닿지 않는 부위가 있고 항상 깔끔한 동생 녀석을 보면서 나도 한번 이용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머리 깎는데도 돈 쓰고 운동하는데도 돈 쓰는데 때를 미는 일에 돈을 쓰는 게 뭐가 이상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심하게 경제적인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확실히 다르기는 했다. 손이 안 닿는 곳은 물론 내가 때를 민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깔끔했다. 몸이 정말 깨끗하게 정화된 듯한 느낌까지 들어 "이래서 돈을 주고서까지 때를 미나보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이후에는 간간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이용하고 싶다. 간단한 소주 한잔 값밖에 되지 않는지라 돈이 부담스러울리도 없고 무엇보다 때를 밀고 며칠 동안 느껴지는 깨끗한 몸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민망하다는 것이다. 같은 동성이라 그런지 엄청 민망하고 어색하다. 나만 유난을 떠나싶어 동생 녀석에게 물어봤더니 그녀석도 "사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얼마 전에는 목욕관리사로 내 또래 남성이 들어왔다. 보통은 나이가 많으신 아저씨가 들어오는데 솔직히 급 당황했다. 친구도 아니고 낯선 젊은 남자 앞에서 발랑 누워있으려니 난감함이 하늘을 찔렀다. 그 분 역시 어색했던지 자꾸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 잠깐의 짧은 단답형 대답이 끝난 후 이어지는 침묵이 더 이상했다.

특히 엉덩이 근처를 타올로 닦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마! 하지 말라고!" 피차 마찬가지겠지만 정말 징그러웠다. 겨드랑이 같은 곳을 닦을 때는 간지러워서 웃음이 나오려했다. 근데 웃으면 안 된다. 그 상황에서 웃으면 더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형도 그랬군요. 저는 더 했어요. 정말이지, 이일을 어찌해야될까 하고 완전 멘붕이 올 뻔 했다니까요. 그래서 저는 미리 말해요. 엉덩이 근처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동생의 말을 들은 다음에는 나도 그렇게 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잉? 목욕관리사로 남성을 원하지 않으니 누가 하냐고? 아… 물론 그렇다고 여성을 원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냥, 상황에 따라서는 이성보다 동성 앞에서 옷을 벗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민망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때를 민다는 이유가 있지만 서로 알몸인 상태에서 몸을 맡긴다는(응?)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욕관리사 서비스를 이용한 뒤의 깔끔함을 이미 겪어본 나로서는 이제는 포기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받을 수밖에…

▲ 세상을 살다보면 민망하지만 재미있는 헤프닝도 많다. ⓒ 일러스트 작가 쏠쏘라 박현진 제공


생각 없이 열었던 화장실 문, 낯선 여인이 목욕을?

살다보면 별일이 다 생긴다. 특히 전혀 예상치 않았던 상황에서 생긴 헤프닝은 관련된 모두를 당황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일의 연장 선상에서 훗날 인연이 이어지면 서로 빵 터지며 함박 웃음을 짓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당시의 당황했던 순간마저도 재미있는 추억으로 바뀌는 경우도 생긴다.

"완전 용 됐던데요. 그래서 관리가 필요한가 봐요?" 또 아까 그 동생 녀석이다. 이 녀석은 몇 년 부터 탈모 때문에 주기적으로 피부과를 다니고 있다. 그녀석이 탈모 클리닉을 위해 다니던 병원은 피부과로 탈모는 물론 각종 피부에 관한 치료도 겸하고 있었다. 동생은 한 3개월 단위로 끊어서 병원을 다녔는데 어떤 여성의 모습에서 '관리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여드름 가득하고 피부도 굉장히 좋지 않았는데 어느날 보니 완전히 달라져 있더라는 것이다. 여드름은 온데간데없고 피부 역시 백옥같이 매끄럽고, 뭐랄까…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순간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흐음, 확실히 노력하면 좋아지는 것일까?

후배의 말을 듣고 나도 이제 피부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동안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딴 세상 단어가 되어버렸다. 심지어는 실제 나이보다 더 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노안, 동안에 집착할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한 시점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후배가 다니던 병원은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니라 차타고 좀 한참을 가야되는 거리였다. 이래저래 시간도 맞지 않고 더욱이 최소 3개월 코스는 끊어야 되는지라 아직까지도 결단은 내리지 못했다. 한다 한다하면서도 시간적인 부분에서 여유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 선택한 것은 피부 관리숍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거니와 가고 싶을 때 가서 한번만 받아도 되니 편했다.

물론 겨우 몇 달에 한번 가는게 전부지만… 그래도 주변 친구들 중에서는 많이 가는 축이다. 자칭 상 남자로 통하는 내 친구들은 피부숍샵은 커녕 그 흔한 팩 한번 하지 않는다. 지난 <17편 '불금'에 혼자 삼겹살을? 다 이유가 있습니다>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녀석들에게는 술이 건강식이요 술이 화장품이다. 남들이 오이팩할 때 오이주를 담가 먹을 정도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나름 관리하는 남자다.(험험)

한 일년 정도 됐을까. 해당 피부숍을 처음 갔을 때 생겼던 해프닝이다. 관리사 선생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관리실 밖으로 나왔다. 그냥 참아볼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한시간 이상은 무리일 것 같았다. 일단 남녀가 따로 구분되지 않았고 욕실이 함께 붙어있는 구조라서 노크를 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당연히 안심하고 문을 열었다. 일은 그 순간 터졌다.

눈!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욕실이 붙어있는 화장실 안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부, 분명 노크를 했을 때 아무도 없었는데…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촉촉이 젖은 머리칼에 큰 눈(아마 놀라서 더 커졌을지도), 순간적으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목욕을 하고 있던 터인지라 상대는 알몸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에게서 "어맛!"하는 낭랑한 비명이 들린 것은 몇 초 후였다. 나 역시 그제야 황급히 문을 닫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에 서로 멍 때리느라 반응이 늦어도 한참 늦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관리사 여성분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그들도 상황을 눈치챈 듯 다들 웃음을 터트리며 아무도 나를 오해하지 않았다. 그나마 큰 다행이었다. 살짝 뻘쭘했지만 이내 유유히 내 자리로 돌아갔다.

사연은 그랬다. 내가 화장실로 가려던 순간 여성은 샤워를 마친 후 불을 끄고 밖으로 나오려했다. 그러다 수건을 놓쳤고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다시 줍고자 불을 켰는데 그 순간 내가 문을 연 것이다. 그녀도 노크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동료 관리사인줄 알았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수건을 줍고 몸에 걸친 후 나가려고 했다는 것. 화장실 바로 옆이 그녀들이 쓰는 휴게실이었다. 이래저래 절묘한 타이밍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놀라셨겠어요?" 내 피부를 봐주기 위해 오신 관리사 선생님은 갑자기 벌어진 해프닝에 씩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대답 대신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누군가와 조우하기까지는 일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예약을 하지 않고 와서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었던지라 시간도 때울 겸 책자에 적힌 이것저것 다양한 프로그램 목록을 읽어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어떤 여성분이 오셔서 열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설명 했다. 이상했다. 그동안 다른 관리사 선생님들은 그 정도 열정을 보이시지 않았었는데 그분은 과하게 친절하고 열정적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혹시 사장님이세요?"물어봤더니 이내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 어쩐지 그랬었구나. 아무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시 고용주와 피고용주는 뭔가 달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문득 사장님의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예쁘장하기는 한데 주부티도 좀 나고 왠지 내 또래 같았다. 그래서 "사장님, 왠지 제 또래 같아요." 했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제,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저 생각보다 많이, 많이 어리답니다."라고 대답했다. 많이를 강조하는 것을 보니 순간 '아차'싶었다. 하지만 이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아 그렇군요" 했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본인 나이를 말해주었다. 생각보다 어리기는 했다. 아 어린 사장님이셨구나.

평소에도 오해를 많이 받았는지, 아님 처세술이 좋은 것인지 표정상으로는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래도 사장님이라는 직책에 있으셔서 제가 느낌상 나이를 더 본 것 같네요. 직함을 빼고 보니 어려보이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으며 빠르게 수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문득 화장실 알몸사건이 생각났다. "이렇게 사장님하고 얘기하기는 처음이네요. 아! 사장님, 그런데 제가 일년 전 쯤에 여기를 왔었는데요, 그때 화장실에서 알몸의 여성을 봤었어요.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순간 말을 꺼내기 무섭게 사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어마! 이를 어째… 그때 그분이시구나? 그게 바로 저예요." 순간 사장님과 나의 눈이 마주쳤고 서로 쑥쓰러운 듯 어색하게 웃었다.

살다보면 재미있는 헤프닝도 많고 또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었다. 이래서 세상은 참 재미있는 일의 연속이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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