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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EBS 수능 연계 정책, 이대로 좋은가

등록|2015.06.08 18:10 수정|2015.06.08 18:10
EBS 교재와 수능을 연계하는 정책은 사교육비를 줄이고 지역이나 계층간 교육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10여 년 전 도입되었다. 애초 30% 수준의 연계율을 보이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70% 가까이 연계시켜 영향력을 절대화했다.

지역,계층 간 교육 격차를 다소 해소했다는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왜 굳이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실현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기도 하다. 사교육비 경감 여부를 놓고서는 실효성이 있다는 데이터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이터 사이에 엄청난 충돌과 괴리가 존재한다. 대럴 허프의 '새빨간 거짓말, 통계(How to Lie with Statistics)'라는 책을 뒤적이지 않더라도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겠으나 교육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교사들은 방법론이나 결과론에 있어 이 정책에 회의를 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의 본령이 현장에 있음에도 관료나 정책 입안자들은 그것을 간과한 경우가 많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손실을 국민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사안이 비일비재하다. 같은 맥락에서 교육의 본령을 현장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를 수용하려 한다면 EBS 수능 연계 정책에 대해 교사들이 왜 회의를 가지고 있는지 경청해 볼 일이다.

EBS 수능 연계 정책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본질에 위배된다. 범 교과적 사고력 측정 시험의 바로미터가 되기도 했던 수능이 예전의 학력고사와 다름 아닌 꼴이 된 기저에 이 정책의 폐단을 찾아볼 수 있다. 수능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형태로 준비해야 옳은 것이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물로 내놓은 정책이겠으나 한정된 범위 내 익숙한 내용이 담긴 일정 패턴의 문제를 잘 풀게 하는 것이 공교육의 역할이어야만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수능의 본질적인 취지에도 어긋나고 학교 현장의 정통성을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EBS 수능 연계 정책은 사교육비 경감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치열하게 조사한 '숫자 자료'를 바탕으로 논박하려는 자도 있겠으나 앞서 말했듯 통계는 가치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크기에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 바라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성적에 따라 학생을 분화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을 상,중,하로 나눌 때 상위권 학생들은 EBS 교재를 기본서 정도로 인식한다.

특히 올해 같은 경우는 수능 출제 오류 파동의 영향으로 전년보다 문항곤란도가 현저하게 낮기에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귀찮지만 풀어보기는 해야 하는' 정도의 교재인 것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만점이나 1등급이 목표이기에 연계되는 70%를 바탕으로 비연계 30%를 노리려 한다. 이것이 교육부의 기대와는 달리 어떤 형태로든 사교육에 노출될 가능성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중위권 학생들 중에서는 연계 정책의 수혜자도 분명 있다. 대학에서 수학할 자질까지 향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점수의 논리에서는 중위권 학생들이 노력 여하에 따라 득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능은 등급 전쟁이고 표준점수 싸움이기에 수험생들의 상대적 서열을 무시할 수 없다. 즉 연계 정책이 중위권들에게 일면 유리할 수는 있으나 점수의 상승이 절대적 위치의 상승까지 담보하지 못하기에 중위권 학생들의 불안이 고조된다. 그러면 중위권 학생들은 상위권 학생들이 비연계에 투자를 하는 방법과는 달리 연계 70%는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차원에서 선택과 집중을 가한다.

이러한 중위권 학생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 사교육계는 휘황찬란한 타이틀의 특강으로 그들을 포섭한다. 하위권 학생들은 EBS 교재가 수능에 연계된다는 것에 대해 체감하지 못한다. 연계 정책에 의해 기본 개념과 원리를 천천히 탐구할 기회를 박탈당한 그들은 문제가 약간만 변형되어도 그것이 EBS 교재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의 약점을 간파한 사교육계는 EBS 교재를 굳이 다 볼 필요 없다며 찍기 신공의 화려함을 자랑한다.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빚어진 참극이 아니냐는 식의 진부한 논쟁은 연계 정책의 본질에서 어긋나 있기에 논외로 한다.

EBS 수능 연계 정책은 불법을 조장한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사교육 경감 실효성 논란을 차치하고 국가에서 요구하는 바에 따르기 마련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공교육의 정통성 운운하며 잘못된 정책의 시녀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가운데 EBS 교재가 아닌 본 교과서로 배짱 있게 수업하는 교사는 많지 않다.  교육 풍토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으나 아직도 수능 성적에 따라 인생의 위상도 많이 달라질 거라는 학부모의 인식이 만연한 가운데 '입시 바이블'을 제쳐둘 교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3 교실에서는 해당 과목 교과서를 비싼 돈 들이기만 한 채 내팽개쳐두고 EBS 교재로 수업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교사와 학교의 '범법'이 발생한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교과용 도서의 사용)에서는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부장관이 검정하거나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라 명시하고 있다. 결국 교육수요자의 요구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교사나 학교를 위법의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방과 후 수업에서 EBS 교재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있으나 EBS 교재를 적극 다룰 수밖에 없는 수능 정책과 EBS 교재를 정규 수업에서 다루면 안 된다는 현실 간 괴리를 목도한 학생들이 정규 수업 시간을 한가한 시간으로 만들만큼의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를 포기하고 수능 연계 교재로만 수업을 해도 책거리를 하기에는 힘이 부치기 때문이다.  

EBS 수능 연계 정책은 교육 당국의 불신을 초래한다

교육 당국은 EBS 수능 연계 정책의 큰 틀에 변화를 주지 않으려 하면서 학교 현장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기는커녕 공문과 감사로 법을 지키기를 당부한다. EBS 교재를 수업 시간 중에 다루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니 엄단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교육과정에 명시된 과목명과 시험 출제 요소 간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감사를 통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고 실제 징계를 하는 경우도 적잖다.

예를 들어 '독서와 문법'이라는 과정이 있는데 평가 문항에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질문이 있다면 교사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당연한 조치인 듯하나 '독서와 문법'시간에 해당 교과서를 보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EBS 교재를 절대화한 현실에서 교사는 EBS 교재를 통해 교육수요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밖에 없고 EBS 교재를 통해 다룬 내용을 내신 시험으로 출제할 수밖에 없는 점을 지나친 조치이다. 그러니 실제 존재하는 교육과정의 명칭과 출제 요소 간 결합력이 떨어지는 것은 국가가 야기한 불가피성인데 그것을 빌미로 감사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일이다.

결국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EBS 연계 정책이 최상 또는 차상이 될 수 있다는 프레임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여섯 글자를 두고 거시적 안목을 가졌을 때도 과연 이 정책을 수호하고 나설 것인지 의문이다. 고3 수업을 담당하는 모든 교사가 자신은 범법자가 될 수 없다며 교과서의 내용만 충실히 수업할 경우 어떤 모습이 연출될지 생각해 보면 교사나 학교가 적법하게 교육의 정통성을 이야기할 수 있고 국가도 교육적 대의를 가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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