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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처럼 배려했어도..." 팬택은 억울하다

[기획-아듀 팬택] '샐러리맨 신화' 팬택, 24년 만에 막 내리다

등록|2015.06.09 09:20 수정|2015.06.09 09:20

▲ 팬택은 지난 5월 26일 법정관리 철회를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이달 중 기업 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 사진은 지난 6월 4일 상암동 팬택R&D센터 출입문. ⓒ 김시연


"그날 아침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울컥했던 기억은 나요."

회사를 살리려고 끝까지 몸부림쳤던 박창진 팬택 부사장(마케팅본부장) 기억에 '2015년 5월 26일'은 없다. 팬택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철회를 신청한 이날 박 부사장은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한나절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질 만큼 큰 충격이었다는 얘기다.

팬택도 조만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새 주인이 나타나는 기적이 없다면 팬택은 이달 중 파산 절차를 밟게 된다. 지난 24년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대기업과 경쟁하며 '한국 휴대폰 전성기'를 이끌었던 중견 벤처기업의 초라한 퇴장이다(관련기사: '법정관리 폐지 신청' 팬택 결국 역사 속으로?).

"지지 않는다, 고로 존재한다"

경기도 김포 공장은 이미 지난달 말 가동을 멈췄고, 청산을 앞둔 서울 상암동 팬택 R&D센터도 썰렁했다. 한때 4000명이 넘었던 팬택 직원은 1200여 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대부분 무급 휴직 상태다. 지난 4일 오전 직원들로 한창 북적여야할 19층 마케팅본부도 고작 한두 명이 출근해 텅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대신 "지지 않는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현수막이 출근 못한 직원들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도 모자라 팬택 직원들은 상암동 R&D센터 2층 대형 유리창에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이어붙여 'I♡팬택'이라는 큰 글자를 새겼다. 또 1층 베가 갤러리엔 지난 24년 동안 팬택을 거쳐 간 직원들 모습과 그들이 만든 제품 사진들을 전시했다.

갤러리 한켠엔 지난달 팬택 직원들이 돈을 모아 신문에 낸 '우리의 창의와 열정은 계속됩니다'라는 마지막 광고도 걸려있었다. <전자신문>은 직원들 취지를 감안해 광고를 무료로 실었고 팬택 직원들은 이날 모금액 500만 원을 창업 벤처기업 지원에 써달라며 벤처기업협회에 기부했다. 이에 벤처기업협회도 이 돈을 엔젤투자펀드에 활용하기로 하고 팬택 직원들 창업과 재취업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다음 아고라에선 지난달 26일부터 '팬택을 구해주세요'라는 청원 서명도 진행됐다. 애초 2천 명을 목표로 출발했지만 서명자가 계속 늘어 1만2000명으로 상향 조정했고, 마감을 하루 앞둔 8일 현재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팬택은 이렇게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샐러리맨 신화'의 몰락... 기술력 앞세우다 마케팅에 발목

▲ 팬택 직원 모임 대표들이 4일 오후 서울 구로 벤처기업협회를 방문해 직원들이 신문 광고비로 모은 500만 원을 창업 벤처기업 지원에 써달라며 기부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벤처기업협회


한때 국내 스마트폰 2위, 전 세계 5위까지 넘보던 팬택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사실 팬택에게 '위기'란 말은 낯설지 않다. 지난 2007년 첫 번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이후 쓰러질 듯 말 듯 버텨온 팬택이기에, '파산'을 실감하기 어렵다.

맥슨전자 영업사원 출신인 박병엽 전 부회장이 지난 1991년 창업한 팬택은 삐삐(무선호출기)를 만드는 작은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다. 이른바 '샐러리맨 신화'의 시작이었다. 이후 1997년 휴대폰 제조업체로 변신한 팬택은 2001년 현대큐리텔(팬택큐리텔), 2005년 SK텔레텍(스카이텔레텍) 등 대기업 휴대폰업체를 잇달아 인수하며 직원 4500여 명, 연매출 3조  원에 이르는 중견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지난 2007년 4월 자금난으로 첫 번째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이후 18분기 연속 흑자에 연간 2조 원대 매출을 유지하며 2011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또 일찌감치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해 2011년, 2012년 연속 300만 대 이상 판매하며 한때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스마트폰 점유율 2위, 전 세계 LTE 스마트폰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13년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삼성,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기술력을 앞세운 팬택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팬택은 2012년 3분기 이후 영업 손실이 계속되고 자금난에 부딪히자 급기야 2013년 9월 박병엽 부회장이 물러나고 직원 800명이 무급 휴직에 들어가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관련기사: '팬택의 꿈' 또 꺾이나... 박병엽 부회장 사의).

팬택은 베가 시크릿노트로 재기를 노렸지만 지난해 초 45일에 걸친 통신3사 최장기 영업정지 한파를 피해갈 순 없었다. 지난해 3월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에서 국내 휴대폰 시장까지 꽁꽁 얼어붙으면서 내수에 의존하던 팬택은 직격탄을 맞았다. 결국 팬택은 지난해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새 주인을 찾아 나섰지만 세 차례 공개 입찰이 모두 무산되며 결국 파산 위기에 처했다(관련기사: 시크릿노트도 못 구한 팬택... 2년 만에 또 '워크아웃').

"삼성-LG 견주던 팬택, 꿈도 풀지 못하고"

▲ 이준우 팬택 대표이사(가운데)와 박창진 마케팅본부장(부사장, 맨 오른쪽)이 지난해 7월 10일 서울 상암동 팬택 R&D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워크아웃 관련 이동통신사와 채권단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 김시연


지난 2002년 뒤늦게 팬택에 결합한 박창진 부사장은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도맡았다. 1988년 LG전자에서 삐삐 마케팅을 처음 시작한 '영업맨'인 박 부사장은 1차 워크아웃 당시 마케팅본부장으로 투입돼 연속 흑자를 이뤄냈고, 잠시 팬택 판매 법인인 '라츠' 대표이사로 일하다 지난 2013년 9월 구조조정 당시 마케팅본부장으로 복귀했다.

지난 4일 상암동 팬택 사무실에서 만난 박 부사장은 그동안 기술 경쟁만 강조해온 회사 전략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젠 기술 경쟁은 큰 의미가 없어요. 갤럭시S6와 아이폰6가 뭐가 다른지 전문가나 알지 소비자는 잘 몰라요. 기술 경쟁에서 손을 놓고 소비자 마인드로 접근해야 해요. 지난해 현대카드와 진행한 '브루클린 프로젝트'도 처음엔 회사 내부에 반대가 많았어요. 기술을 과시하는 제품이 아니라 기술이 내포된 결과물을 보고 사람들이 쫓아오는 제품을 만들자, 더는 기술 경쟁 제품으로는 상품 기획 못하겠다고 선언까지 하면서 끌어낸 건데 결과물을 못 내놓고 가는 게 가장 아쉽네요."

팬택은 지난해 3월 현대카드와 함께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브루클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낙후된 뉴욕 브루클린 지역이 문화예술 중심지로 탈바꿈한 것처럼 '기술' 이미지가 강한 팬택에 현대카드의 디자인과 마케팅을 접목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 결실을 이루기도 전에 팬택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말았다.

"더 큰 아쉬움은 삼성-LG 같은 전통적인 대기업에 견주던 팬택이 꿈을 풀지 못하고 가는 거죠. 냉혹한 현실에도 우리가 안주한 것도 있고. 다시 한다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팬택이 피처폰 시절에 만년 3위였지만 스마트폰만큼은 LG보다 한발 빨랐다. 삼성이나 LG전자가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 운영체제인 '윈도폰'에 매달릴 때 팬택은 일찌감치 구글 안드로이드를 선택했다. 결국 지난 2010년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시리우스'를 시작으로 '이자르', '미라크', '베가 시리즈'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LG전자를 누르고 국내 스마트폰 업계 2위로 올라섰다.

▲ 팬택 직원들이 지난달 서울 상암동 팬택R&D센터 2층 유리창에 포스트잇을 붙여 만든 'I♡팬택' 문구 ⓒ 김시연


하지만 3G에서 LTE로, 다시 LTE-A로 스마트폰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서 지나치게 기술 경쟁에만 집착해 신제품을 서둘러 내놓은 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 세계 최초 1300만 화소 카메라(베가 S5), 세계 최초 쿼드코어(베가 R3) 등 기술 외에 차별성이 없는 제품을 양산하면서 재고만 쌓였다. 정작 메탈 프레임을 사용한 '베가 아이언', 지문인식 기능을 넣은 '시크릿노트' 같은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았을 때 발목이 잡혔다.

"그때부터 너무 기술 위주로 생각했어요. LTE폰만 만들면 팔린다, 그게 아니거든요. 초기엔 스마트폰만 내놓으면 팔리지만 시장이 성숙될 때는 경쟁적 구매 요소가 있어야 해요. 재고가 쌓이니 어떻게든 팔려면 돈을 써야 했고 마케팅 담당 임원들은 울상이었죠. 베가 아이언도 제품 자체는 좋은데 그 전 재고들이 시장을 막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악순환이 계속된 거죠. 그러다 시크릿노트 나오면서 아이언 계열과 시크릿 계열로 해보려고 '아이언2'를 냈는데 그때 영업정지가 나온 거죠."

삼성은 '배려', 팬택은 '외면'... 방통위 규제 이중잣대

정부에도 나름 할 말이 많았다.

"방통위에서 SK텔레콤에 영업정지 1주일 때리고도 갤럭시S6 나올 시점을 피하려 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열 받더라고요. 우리가 작년에 그렇게 살려달라고 할 때는 꿈쩍도 안 하더니…."

방통위는 지난 4월 삼성전자 갤럭시S6 출시를 앞둔 시점에서 SK텔레콤 영업정지를 결정하고도 시행 시기를 무기한 미뤘다. 나름 국내 스마트폰 유통 시장을 위한 '배려'였지만 지난해 상반기 이통3사 영업정지 때만 해도 이런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워크아웃 상태에서 재기를 모색하던 팬택에겐 억울한 대목이다.

팬택은 당시 이통사 영업정지 시기를 최대한 겹치지 않게 하고, 기기 변경은 허용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정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워크아웃 기업은 단말기 보조금 규제에서 예외로 인정해달라는 '비대칭규제' 요구도 묵살했다. '공정 경쟁'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우리가 순진했어요."

박 부사장의 쓴소리다. 팬택에는 정부기관이나 정치인을 상대하는 이른바 '대관 조직'이 따로 없다고 한다. 양율모 홍보담당 상무는 "그동안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할 필요도 못 느꼈고 로비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면서 "오직 소비자에게 선택받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 서울 상암동 팬택R&D센터 1층 베가 갤러리에 전시된 팬택 직원 사진들 ⓒ 김시연


팬택이 무너지더라도 '제2의 팬택 신화'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건물이나 책상 같은 물건은 다시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운영 노하우나 기획-생산-마케팅-사후서비스까지 이어지는 조직을 다시 만들려면 조 단위가 필요해요. 방통위나 정부에 수도 없이 얘기했어요. 직원 일자리도 문제지만 이런 회사 다시 만들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매몰되는 게 너무 아깝다, 창조경제 한다고 테이프 커팅만 할 게 아니라 이런 회사에 1천억 원이든 투입하라고 하고 싶어요."

팬택에는 아직 1200명이 남아있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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