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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는 사회 구조의 균열을 따라 전염된다

[게릴라 칼럼] 계급과 계층을 가리지 않는 메르스

등록|2015.06.18 14:02 수정|2015.06.18 14:09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메르스는 일종의 전염병인데 신기하게도 대한민국의 중심만 골라서 강타했다. 전염병은 불결한 변두리에서 도는 것인데. 이런 전염병에 가장 안전할 것 같은 곳만 골라서 창궐했다. 박근혜를 강타했고, 강남을 강타했고, 삼성을 강타했고, 전문가(의사)를 강타했다....(중략)

메르스는 '그들만의 성'에 있는 사람들을 유도탄처럼 강타했다. 이런 것들로부터 가장 안전할 것 같았던 곳, 이런 일이 있어도 알아서 척척척 잘 살아남을 줄 알았던 그곳이 이제 진앙지가 되었다....(중략)

세월호는 주변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안산의 아이들이 진도에서 죽었다. 주변부의 일이었다. 잠시 공감하다가. 그 일이 조용히 마무리되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그것이 인생이라고....(중략)

가난한 애들이 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느냐고, 비아냥거리던 사람들. 그만 좀 하라고, 그 사람들을 국가가 죽였냐고 훈계하던 사람들.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단순히 불운으로 돌리던 사람들. 그들이 사는 집 앞에서 메르스가 노크를 한다."

▲ 고재열 기자의 페이스북 ⓒ 고재열


메르스가 사람들에게 공포로 각인되기 시작하던 지난 6월 4일, <시사IN> 고재열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한 편이 이슈가 되었다. '메르스, 그리고 '중심의 저주''로 시작하는 짧은 글이었는데, 그 촌철살인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어 퍼져나갔다.

그는 메르스와 세월호를 비교하며 주변부에서나 벌어질 것 같았던 재앙이 메르스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중심부를 노크하고 있다고 서술했는데, 그 비교의 날카로움에, 그리고 그 섬뜩함에 많은 이들이 반응을 보였다.

그의 글은 세월호만 생각해도 답답한 이들에게는 통렬한 일갈이었으며, 세월호 사건을 한낱 교통사고로 생각하던 이들에게는 억지스럽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비아냥거림이었다.

모든 이에게 평등한 메르스

사실 고재열 기자가 적은 대로 메르스는 강남을 강타하고, 삼성을 강타했지만 그것은 필연이라기보다 우연에 가까웠으며, 사람과 정보가 중심부로 몰리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착시일 뿐이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메르스 관련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삼성서울병원 보다는 평택성모병원이 더 심각한 상황이었고, 강남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던 건 그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서울병원이 강남에 위치해 있고, 메르스와 관련된 의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 강남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그로부터 열흘 정도가 지나 상황이 달라졌다. 비록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강남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지만, 실제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라 자부하던 삼성서울병원은 전염병의 '숙주'가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메르스가 질병관리 본부나 병원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인력들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IT관련 외주업체 파견직 직원이나 응급실 이송요원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즉, 사회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하고 있는 약자들이 방역 시스템에 있어 아킬레스 건으로 등장한 것이다. 메르스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메르스 감염 사실을 숨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가 불안한 그들에게는 아직 치사율 10%밖에 되지 않는 메르스보다 메르스 감염에 걸렸을 때 자신이 받을지도 모르는 직장에서의 불이익이 더 치명적일 수도 있다. 메르스 때문에 격리가 되고 혹여 이 때문에 직장에서 잘리고 나면 그 이후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지 않은가.

정부에서는 메르스 관련 치료비를 모두 대주겠다느니, 의심환자로 격리된 가구에 대해서는 110만 원(4인 기준)을 지원하겠다느니 하며 생색을 내고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절박한 것은 반짝 지원이 아니라 안정된 삶이다.

다시 읽는 중심부의 저주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확산 막기 위해 출입통제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최대 진원지로 떠오른 삼성서울병원이 신규환자를 받지 않는 부분 폐쇄 조치를 내린 가운데, 지난 15일 오전 강남구 병원 본관 앞에서 직원이 내원객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유성호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비정규직들에 대한 관리 실패와 그로 인한 방역 체계의 부실화. 결국 이와 같은 현상은 고재열 기자가 작성한 '중심부의 저주'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선언에 가까웠던 그의 글이 이제는 그만큼의 현실성을 담보한 채 읽히고 있다. 

결국 우리 시대에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득권이 그들의 부를 좀 더 축적시키기 위해 선택한 전략인데, 이번 메르스 사태는 그 제도가 하나의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메르스가 의도치 않게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메르스 바이러스의 전염이 비정규직 제도 때문에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의 중심부가 만들어낸 비정규직 제도는 우리 사회 시스템을 일정 부분 헐겁게 만들었고, 그것이 이번과 같은 긴급사태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구멍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삼성서울병원이 뒤늦게 통제하지 못한 비정규직들을 격리시킨 사실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세월호 참사 때, 비정규직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죽음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당시 희생된 세월호 비정규직 선원은 보상 문제에 있어서도 논쟁거리가 되었으며, 최근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두 명은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이유로 순직 인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는 그와 같은 우리의 무관심과 차별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시스템이 붕괴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가난한 자의 손을 붙드는 시스템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믿는 상식의 붕괴를 뜻한다." - 고재열 기자 페북

사회 시스템이 무너져도 나는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복지제도가 엉망이 되어도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그것은 한낱 착각일 뿐이다. 아무리 감시와 통제 방법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약한 고리가 무너져버리면 결국 그 사회는 궁극적으로 버틸 수 없다.

부디 지금이라도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길 바란다. 대통령이 시장 상인들과 홍보 사진 찍고, 말로만 괜찮다고 한들 메르스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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