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 세균탄 투하한 미공군 조종사입니다"
[최초 공개] 한국전쟁 당시 세균전에 투입됐다는 군인의 진술서
▲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한반도에서 세균전을 벌였다는 조사 결과를 담은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조사 보고서'(일명 니덤보고서, 임종태 감독 공개)에 실린 플로이드 오닐(Floyd B. O'Neal) 중위의 진술서. ⓒ 권우성
여기 한 명의 공군 조종사가 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한국과 중국 동북부에 세균탄을 투하했으며, 자신이 그 임무를 수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민간인에게 이 같은 소름 끼치는 살상 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진술합니다. 자신과 같은 임무를 수행할 조종사들에게는 '당장 그 임무를 멈추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전쟁을 멈출 해법이라며 말입니다.
그는 1952년 북한 상공을 날다 격추당한 후 포로가 된, 플로이드 오닐(Floyd B. O'Neal) 중위입니다. 오닐 중위의 진술서는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조사 보고서', 일명 니덤 보고서에 담겨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보고서 소장자 임종태 감독을 통해 오닐 중위의 진술서 전문을 확보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진술이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요.
1952년 겨울, 북한 상공에 미군 비행기가 지나갔습니다. 그 후 곤충 떼가 나타났고 곧이어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곤충을 채집해 분석하니 콜레라, 페스트 등에 감염돼있었습니다. 페스트가 마을을 휩쓸었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과거 500년 동안 북한에서는 페스트가 발생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에, 북한과 중국은 미국이 세균전을 벌이고 있다는 성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세계평화회의는 국제과학조사단을 중국과 북한에 파견해 이 같은 상황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북한과 중국 국민들은 실제로 미군이 수행한 세균전의 표적이 됐다"라는 것입니다. 오닐 중위의 진술은 이 같은 결과를 도출하게 된 중요한 증거입니다.
미국은 현재까지도 세균전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1953년 7월 휴전 후 미국으로 돌아간 오닐 중위는 "중국 공산당에 억압된 상태에서 강제된 진술"이라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오닐 중위의 소회가 담긴 진술서와 오닐 중위가 동료 공군 조종사에 띄운 편지를 싣습니다. 중복되는 내용을 제외하고, 가능한 많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여기에 '강압과 거짓'의 흔적이 있는지 함께 판단해 주십시오.
공군 중위의 소회 "대량살상무기 사용, 이해할 수 없다"
▲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이 투하했다고 중국에서 주장하는 세균탄의 탄피(중국 하얼빈 제731부대 진열관에 전시된 실물을 박도 기자가 항일유적답사 때 촬영한 것. 촬영일자; 1999. 8. 4.) ⓒ 박도
미군이 한국과 중국 동북부에서 수행한 세균전에 대한 소회
-1952년 6월 30일
미국 시민의 관점에서, 나는 북한과 중국 동북부 사람에게 세균전 무기를 사용할 어떤 타당성도 발견할 수 없다. 이들 나라의 민간인에 대해 그런 소름 끼치는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할 필요는 전혀 없다. (중략)
세균전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전쟁에서 행한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가장 불쾌한 느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세균전을 지지하지 않는다. 나는 세균전에 참여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명령을 받았을 때 다른 조종사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수천 피트 아래 무고한 사람들에게 어떤 참혹한 파괴를 행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중략) 나는 한국에 세균전을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린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미국 시민의 관점에서, 미 공군의 관점에서, 세균전 사용을 고발한다. 세균전에 참여하도록 명령받았기에 수행했지만, 나는 그런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중략) 세균전은 중단될 수 있으며 중단돼야 한다.
세균전은 아직도 미군에 의해 한국과 중국 동북부에서 수행되고 있다. 이런 참혹한 전쟁이 지속되면 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것이다. 미국인들은 공포스러운 무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함께 세균전을 종식시켜야 한다.
▲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한반도에서 세균전을 벌였다는 조사 결과를 담은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조사 보고서'(일명 니덤보고서, 임종태 감독 공개). ⓒ 권우성
조종사에게 띄우는 편지 "세균전 임무를 거부하라"
18전폭기 비행단 조종사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1952년 7월 15일
이 편지는 한국 상공을 비행하는 모든 미 공군에게 띄우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 여러분은 북한 사람들에게 세균 폭탄을 떨어트리는 걸 즐기고 있나? (중략) 세균전 임무에 대한 기억이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나는 그 기억을 떨칠 수가 없다. (중략) 여러분 중 누가 조국이 세균전에 의해 파괴되는 걸 보는 것을 즐기겠는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나.
(중략) 포로가 된 후 우리 군이 자행한 참혹한 행동을 알게 됐다. 폭격을 당한 마을을 내 눈으로 봤다. 포로수용소도 안전하지 않다. 몇몇 조종사들은 포로수용소 위에 세균탄을 투하했다. 이것이 동포를 대우하는 방식인가?
야만적인 살인을 지금 중단하라. 한국 땅에 단 하나의 폭탄도 더 투하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세균탄을 투하할 때, 당신의 영혼이 그렇게 하라고 이끌었는가? 아니면 세균전이 '인본적인 살상 방식'이라는 허황된 말에 인도됐나? 어떤 시각에서 보더라도 답변은 동일하다. 세균전은 가장 저급하고 가장 야만적이며 비인간적인 전쟁형태다. 이 전쟁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한국과 중국 동북부의 무고한 민간인들이다.
(중략)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명령 받은 대로 했다고 말하는가? 이제 멈추고 생각해보라. 세균전을 위한 비행을 중단해야 한다. 군은 부대 전원을 군법회의에 회부할 수 없다, 함께 모여서 함께 행동하라. 여러분이 세균전 투하를 거부하면 세균탄에 대해 전 세계가 알게 될 것이다. (중략) 세균전에 참여한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중략) 여러분은 고향의 가족에게 돌아가길 원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평화로운 세계에 살길 원한다. 그리고 여기에 답이 있다. 1단계가 세균전 중단이다. (중략) 최종적인 해법이 당신에게 달렸다. 올바른 길을 택하고 의지를 세우라. 행동하라.
▲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한반도에서 세균전을 벌였다는 조사 결과를 담은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조사 보고서'(일명 니덤보고서)를 공개한 임종태 감독. ⓒ 권우성
○ 편집ㅣ이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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