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남미편 ⑫] 인터뷰 - 여행 중 만난 2명의 도전자 이야기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10대 낙원'으로 꼽은 '토레스 델 파이네'가 있습니다. 이곳은 세계 3대 트레일 가운데 하나로도 꼽히죠. 또한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여행지였습니다. 이 두 곳이 내가 남미 여행을 떠난 이유였죠. 잊을 수 없는 남미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 기자 말
산이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김일영(28)씨는 2011년 10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세계 일주를 했다. 그의 여행은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란 내 여행 콘셉트와 정확히 일치했다. 김씨가 지나온 여행길은 한국에서 인도·탄자니아·남아공을 거쳐서 아르헨티나·콜롬비아와 미국까지였다. 좀 더 무모하고, 좀 더 용기가 있어야 하고, 좀 더 치열한 길이었다.
특히 탄자니아에선 킬리만자로에 올랐고, 아르헨티나에선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 정상을 혼자서 밟는 감격을 누렸다. 또 미국 여행에선 자전거로 1400km를 여행하기도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김씨의 블로그를 알게 됐고, 그의 여행길을 짚어가며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우린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블로그를 통해 소통을 이어나갔다.
목적이 같았기 때문에 우린 쉽게 친해졌다. 내가 아콩카구아 등정에 실패했을 때 가장 슬퍼하고 안타까워 한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꼭 소주잔을 기울이자며 약속했다. 지난해 가을의 문턱 거제도에서 실패자가 성공자를 만났다.
세계일주, 남극탐험대에 에베레스트 트레킹까지
다음은 동우가 묻고 일영이 답한 내용이다.
- 산이 좋아 떠난 건가?
"'K2 오지 탐사대'를 계기로 산과 인연을 맺었다. 7대륙 최고봉을 한 번에 다 오르려고 여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체력·재정적으로 안 되는 일이었다. 세계일주 후엔 'KB(국민은행) 남극 탐험대'에 선발됐고, 새터민 대학 후배랑 에베레스트 트레킹도 다녀왔다."
- 남극 탐험대는 재미있었나?
"솔직히 너무 재미없었다. 처음에는 남극점 찍으러 가는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까 등산을 한 번도 안 해본 친구가 많았다. 그냥 크루즈(유람선) 여행하는 수준이었다."
- 아콩카구아에 올랐던 사람이 크루즈를 타고 있으니 얼마나 몸이 근질거렸겠나.
"진짜 몸이 근질거렸다. 좀 더 큰 도전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세계 일주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처음 가보는 나라가 많아서, 가는 곳보다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돌아와 보니 이거보다 힘든 일이 있겠나 싶었다."
- 여행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에콰도르에서 제대로 짐을 털렸다. 여권·돈·신용카드·캠코더·카메라 등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미국에 가야 했는데 이 사건 때문에 한국에서 여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도착해 보니 많은 사람이 내게 도움을 줬다. 미국에선 자전거로 여행했는데 현지인 집에서 자고, 밥도 얻어먹고 그러다 어느 교민 집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때 그분이 "미안해하지 말고 지금 받은 도움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고 하셨다. 이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
여행에서 돌아와 새터민 동생을 데리고 네팔 트레킹을 다녀왔다. 대학 신입생 동생이었는데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휴학을 했다. 수소문해보니 룸살롱 웨이터를 하고 있었다. 여행을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 후배를 이용하려고 했다. 새터민 출신이란 걸로 이슈를 만들고 다음 도전 동력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사람 마음이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더라. 여행을 통해 그 후배가 변한 걸 보면 가장 뿌듯하다."
- 사람은 본능적으로 앞에 사람이 진심을 다하고 있는지 느끼지 않나. 트레킹 후에 후배는 어떻게 변했나?
"트레킹이 4000m를 넘어섰을 때 그 후배가 나한테 화를 냈다. '얼어붙은 두만강을 수영해 목숨 걸고 탈출했는데 왜 나를 이런 곳에 데려와 고생시키느냐! 형이, 우리 부모님과 내 마음을 아느냐'고 했다. 그 길로 하산했다. 그리고 그 후배는 학교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목표 포기한 것, 그때가 처음이었다"
- 후배 혼자 내려갔나?
"난 칼라파타르(5500m)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길로 같이 산에서 내려왔다. 누군가를 위해서 내 목표를 포기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 아콩카구아는 둘이서 시작해 혼자 성공하지 않았나?
"네팔에서 그때를 많이 떠올렸다. 아콩카구아에선 내려갈 사람 내려가고, 올라갈 사람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팔에선 내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동생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여행을 통해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건가?
"그런 것 같다."
- 실패한 사람으로서 아콩카구아 산행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다. 니도캠프(C2. 5400m)에서 한 번에 정상에 서지 않았나. 그것도 10만 원도 안 되는 텐트를 가지고.
"18일 만에 정상에 섰는데, 그날 이상하게 새벽 3시쯤 눈이 떠졌다. 사실 니도캠프부터는 바람 펄럭이는 소리가 불안해 귀마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바람도 없고, 눈도 없는 게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별이 너무 반짝여 '이거다' 싶었다. 침낭 주머니에 행동식만 챙겨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몸이 무척 가벼웠다. 잠시도 쉬지 않고 행동식을 먹으며 올라갔는데 운 좋게 정상에 서게 됐다."
- 고산증은?
"없었다."
- 정상에 서는 순간 어땠나?
"정상에 꽂혀 있는 십자가를 보는 순간 가슴이 사무치면서 포기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면 되는구나. 그리고 빨리 내려 가야겠다는 생각(웃음). 하산하면서는 함께 도전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멘도사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형님 때문에 죄책감이 들었다. 19일 만에 멘도사로 돌아가 보니 이 형님 하시는 말씀이 실종 신고를 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딱 만나는 순간 나 혼자 올라간 게 잘한 일인가란 회의가 밀려들었다. 도전이 중요한 건지,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한 건지 갈등이 많았다. 결국 여행 매너리즘에 빠져버렸다."
- 왜, 성공한 사람이 매너리즘에 빠지나?
"이 도전(7대륙 최고봉 도전)을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 아니,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똑같으면 어떻게 하나(웃음).
"혼자 정상에 섰다는... 죄책감이 진짜 많이 들었다. 그때까진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유지하는 것보다 내 일이 항상 우선이었다. 여자 친구 만날 때도 그랬다. 지금까지 내가 무척 이기적인 나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결론적으로 아콩카구아가 내 인생에서 최고 경험이 됐다."
- (아콩카구아는) 나에게도 최고의 산이었다. 이 산을 다녀오고 삶의 변화가 생겼나?
"여행 뒤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졌다. 특별한 사람이란 느낌...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좀 염세적으로 바뀌었다. 여행이 인생을 바꿔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복학해 보니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엔 책을 써서 이름을 알리고, 인세로 도전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아니더라. 즐거워서 시작한 여행이 나중엔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 여행이 많은 걸 가르쳐 준거다. 이건 염세적인 게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 거다.
"궁금한 게 있다. 대학 때 세계 일주를 하면 포기해야 할 게 없는데, 직장 그만두고 떠나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 지난 책에 이렇게 썼다. '갔다 와서 어떻게 살 건지 생각하는 순간 세계 일주는 내 것이 아니다.' 지금을 살아야 한다. 내려놓고 보니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한쪽만 보던 인생을 이제는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게 됐다. 여행이 포기한 만큼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게 먼저다. 나머지(미래)는 하늘에 맡기고, 지금을 즐기면 된다. 긍정적으로…. 그런데 여행하면서 좀 아쉬웠던 건 없었나?
"7대륙 최고봉 등정 못한 게 제일 아쉽지만...(웃음) 사실 등산복만 입고 다닌 게 제일 후회된다. 기분 좀 내고 싶고, 클럽에도 좀 가고 싶고, 좋은 레스토랑 가서 밥도 좀 먹고 싶은데 매번 꿀렸다. 옷을 좀 살까도 생각했는데, 짐이 될까 봐 꾹 참았다."
- 트레커는 100g에 목숨 거는 사람들 아닌가. 나도 그랬다. 100% 공감. 자! 자! 자! 우리 2차 갑시다~
극지 마라토너와 트레커의 대화
파타고니아 여행 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김상현(29)씨를 만났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은 동생이었다.
상현이는 극지 마라토너다. 극지 마라톤은 중국 고비사막, 이집트 사하라 사막, 칠레 아타카마 사막 그리고 남극 등 4곳에서 각각 250km, 총 1000km를 뛰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말한다.
4개 코스를 완주하면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상현이는 마지막으로 남극 마라톤을 남겨두고 있었다. 난 이번 여행 최고 도전이 될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 산행을 앞두고 있었다. 상현이와 같은 방을 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동우가 묻고 상현이 답한 내용이다.
- (남극) 무섭지 않니?
"네, 무서워요. 형은요?"
- 나도 (아콩카구아) 무서워. 그래도 할 거잖아?
"네."
- 뛸 때 무슨 생각 하니? 난 힘든 산에 오를 때 아무 생각 안 들어, 그냥 어서 이 길이 끝났으면 하는데.
"저도 그래요.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생각을 해요."
- 그래도 끝나고 나면 또 하고 싶지?
"(웃음) 맞아요. 형, 힘들어도 끝나고 나서 생각하면 좋지 않아요?"
- 그 맛에 하는 거지. 그런데 넌 어떤 장비 갖고 뛰니?
"장비요! 돈이 없어서 무거운 게 많아요."
극지 마라톤도 트레킹처럼 장비가 중요하다고 했다. 짐을 메고 뛰기 때문에 경량 장비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지만 상현이는 좋은 장비를 갖춘 서양인의 2배에 달하는 무게를 짊어졌다. 내가 봐도 상현이의 장비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당시 상현이와 난 시체처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화책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 상현아, 우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잘 먹고 잘 쉬자.
"며칠 쉬니까 아픈 무릎도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사실 나도 그랬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발목이 좋지 않아 3,4일은 거의 나다니질 못했다.
- 상현아, 너 그랜드슬램하고 나면 다음 계획은 뭐니?
"글쎄요."
- 세계 3대 마라톤 있잖아. 보스턴·런던 마라톤... 그런 거 해봐.
"아~ 형 꼬시지 마세요(웃음). 일단은 그랜드슬램하고 나면 당분간 아무것도 안 하려고요."
- 쉬다 보면 또 하고 싶어질 걸(웃음). 넌 마라톤 왜 시작했니?
"그냥 뛰는 사람이 멋져 보여 시작했는데 해보니까 매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빠졌죠. 뛸 때는 힘든데 뛰고 나면 기분 좋잖아요."
- 근데 사람들이 너한테 특이하다고 하지?
"네."
- 그 말 듣기 싫지?
"그쵸! 그 말 짱나요!"
- 나도 여행하면서 산만 타고 다니니 그 소리 많이 들었거든. 근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특이한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게 다른 거잖아.
"진짜 그래요! 그거죠."
- 마라톤하고 산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 본인이 잘 모르고 안 해본 거 하면 특이한 건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의 인생 경험이 부족해 그렇게 보이는 거지. 산, 마라톤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한테 특이하다는 표현 대신 부럽다고 하지. 이건 취향의 문제일 뿐인데 말이지.
"맞아요! 맞아!"
상현이는 내가 아콩카구아 산행을 떠난 뒤 남극까지 완주하며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여기다 1년 안에 4개 대회를 모두 완주해 한국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여름 대구에서 상현이를 만나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와 그날 녹음 파일을 텍스트로 정리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인터뷰 파일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이 한마디에 계속 눈길이 머물렀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랜드슬램, 명예의 전당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어요."
산이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김일영(28)씨는 2011년 10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세계 일주를 했다. 그의 여행은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란 내 여행 콘셉트와 정확히 일치했다. 김씨가 지나온 여행길은 한국에서 인도·탄자니아·남아공을 거쳐서 아르헨티나·콜롬비아와 미국까지였다. 좀 더 무모하고, 좀 더 용기가 있어야 하고, 좀 더 치열한 길이었다.
특히 탄자니아에선 킬리만자로에 올랐고, 아르헨티나에선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 정상을 혼자서 밟는 감격을 누렸다. 또 미국 여행에선 자전거로 1400km를 여행하기도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김씨의 블로그를 알게 됐고, 그의 여행길을 짚어가며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우린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블로그를 통해 소통을 이어나갔다.
목적이 같았기 때문에 우린 쉽게 친해졌다. 내가 아콩카구아 등정에 실패했을 때 가장 슬퍼하고 안타까워 한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꼭 소주잔을 기울이자며 약속했다. 지난해 가을의 문턱 거제도에서 실패자가 성공자를 만났다.
세계일주, 남극탐험대에 에베레스트 트레킹까지
▲ 아콩카구아. ⓒ 김동우
다음은 동우가 묻고 일영이 답한 내용이다.
- 산이 좋아 떠난 건가?
"'K2 오지 탐사대'를 계기로 산과 인연을 맺었다. 7대륙 최고봉을 한 번에 다 오르려고 여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체력·재정적으로 안 되는 일이었다. 세계일주 후엔 'KB(국민은행) 남극 탐험대'에 선발됐고, 새터민 대학 후배랑 에베레스트 트레킹도 다녀왔다."
- 남극 탐험대는 재미있었나?
"솔직히 너무 재미없었다. 처음에는 남극점 찍으러 가는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까 등산을 한 번도 안 해본 친구가 많았다. 그냥 크루즈(유람선) 여행하는 수준이었다."
- 아콩카구아에 올랐던 사람이 크루즈를 타고 있으니 얼마나 몸이 근질거렸겠나.
"진짜 몸이 근질거렸다. 좀 더 큰 도전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세계 일주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처음 가보는 나라가 많아서, 가는 곳보다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돌아와 보니 이거보다 힘든 일이 있겠나 싶었다."
- 여행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에콰도르에서 제대로 짐을 털렸다. 여권·돈·신용카드·캠코더·카메라 등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미국에 가야 했는데 이 사건 때문에 한국에서 여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도착해 보니 많은 사람이 내게 도움을 줬다. 미국에선 자전거로 여행했는데 현지인 집에서 자고, 밥도 얻어먹고 그러다 어느 교민 집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때 그분이 "미안해하지 말고 지금 받은 도움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고 하셨다. 이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
여행에서 돌아와 새터민 동생을 데리고 네팔 트레킹을 다녀왔다. 대학 신입생 동생이었는데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휴학을 했다. 수소문해보니 룸살롱 웨이터를 하고 있었다. 여행을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 후배를 이용하려고 했다. 새터민 출신이란 걸로 이슈를 만들고 다음 도전 동력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사람 마음이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더라. 여행을 통해 그 후배가 변한 걸 보면 가장 뿌듯하다."
- 사람은 본능적으로 앞에 사람이 진심을 다하고 있는지 느끼지 않나. 트레킹 후에 후배는 어떻게 변했나?
"트레킹이 4000m를 넘어섰을 때 그 후배가 나한테 화를 냈다. '얼어붙은 두만강을 수영해 목숨 걸고 탈출했는데 왜 나를 이런 곳에 데려와 고생시키느냐! 형이, 우리 부모님과 내 마음을 아느냐'고 했다. 그 길로 하산했다. 그리고 그 후배는 학교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목표 포기한 것, 그때가 처음이었다"
▲ 김일영씨의 모습. ⓒ 김동우
- 후배 혼자 내려갔나?
"난 칼라파타르(5500m)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길로 같이 산에서 내려왔다. 누군가를 위해서 내 목표를 포기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 아콩카구아는 둘이서 시작해 혼자 성공하지 않았나?
"네팔에서 그때를 많이 떠올렸다. 아콩카구아에선 내려갈 사람 내려가고, 올라갈 사람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팔에선 내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동생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여행을 통해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건가?
"그런 것 같다."
- 실패한 사람으로서 아콩카구아 산행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다. 니도캠프(C2. 5400m)에서 한 번에 정상에 서지 않았나. 그것도 10만 원도 안 되는 텐트를 가지고.
"18일 만에 정상에 섰는데, 그날 이상하게 새벽 3시쯤 눈이 떠졌다. 사실 니도캠프부터는 바람 펄럭이는 소리가 불안해 귀마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바람도 없고, 눈도 없는 게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별이 너무 반짝여 '이거다' 싶었다. 침낭 주머니에 행동식만 챙겨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몸이 무척 가벼웠다. 잠시도 쉬지 않고 행동식을 먹으며 올라갔는데 운 좋게 정상에 서게 됐다."
▲ 김일영씨의 모습. ⓒ 김동우
- 고산증은?
"없었다."
- 정상에 서는 순간 어땠나?
"정상에 꽂혀 있는 십자가를 보는 순간 가슴이 사무치면서 포기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면 되는구나. 그리고 빨리 내려 가야겠다는 생각(웃음). 하산하면서는 함께 도전했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멘도사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형님 때문에 죄책감이 들었다. 19일 만에 멘도사로 돌아가 보니 이 형님 하시는 말씀이 실종 신고를 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딱 만나는 순간 나 혼자 올라간 게 잘한 일인가란 회의가 밀려들었다. 도전이 중요한 건지,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한 건지 갈등이 많았다. 결국 여행 매너리즘에 빠져버렸다."
- 왜, 성공한 사람이 매너리즘에 빠지나?
"이 도전(7대륙 최고봉 도전)을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 아니,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똑같으면 어떻게 하나(웃음).
"혼자 정상에 섰다는... 죄책감이 진짜 많이 들었다. 그때까진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유지하는 것보다 내 일이 항상 우선이었다. 여자 친구 만날 때도 그랬다. 지금까지 내가 무척 이기적인 나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결론적으로 아콩카구아가 내 인생에서 최고 경험이 됐다."
- (아콩카구아는) 나에게도 최고의 산이었다. 이 산을 다녀오고 삶의 변화가 생겼나?
"여행 뒤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졌다. 특별한 사람이란 느낌...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좀 염세적으로 바뀌었다. 여행이 인생을 바꿔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복학해 보니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엔 책을 써서 이름을 알리고, 인세로 도전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아니더라. 즐거워서 시작한 여행이 나중엔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 여행이 많은 걸 가르쳐 준거다. 이건 염세적인 게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 거다.
"궁금한 게 있다. 대학 때 세계 일주를 하면 포기해야 할 게 없는데, 직장 그만두고 떠나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 지난 책에 이렇게 썼다. '갔다 와서 어떻게 살 건지 생각하는 순간 세계 일주는 내 것이 아니다.' 지금을 살아야 한다. 내려놓고 보니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한쪽만 보던 인생을 이제는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게 됐다. 여행이 포기한 만큼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게 먼저다. 나머지(미래)는 하늘에 맡기고, 지금을 즐기면 된다. 긍정적으로…. 그런데 여행하면서 좀 아쉬웠던 건 없었나?
"7대륙 최고봉 등정 못한 게 제일 아쉽지만...(웃음) 사실 등산복만 입고 다닌 게 제일 후회된다. 기분 좀 내고 싶고, 클럽에도 좀 가고 싶고, 좋은 레스토랑 가서 밥도 좀 먹고 싶은데 매번 꿀렸다. 옷을 좀 살까도 생각했는데, 짐이 될까 봐 꾹 참았다."
- 트레커는 100g에 목숨 거는 사람들 아닌가. 나도 그랬다. 100% 공감. 자! 자! 자! 우리 2차 갑시다~
극지 마라토너와 트레커의 대화
파타고니아 여행 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김상현(29)씨를 만났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은 동생이었다.
상현이는 극지 마라토너다. 극지 마라톤은 중국 고비사막, 이집트 사하라 사막, 칠레 아타카마 사막 그리고 남극 등 4곳에서 각각 250km, 총 1000km를 뛰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말한다.
▲ 김상현씨의 모습. ⓒ 김동우
4개 코스를 완주하면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상현이는 마지막으로 남극 마라톤을 남겨두고 있었다. 난 이번 여행 최고 도전이 될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 산행을 앞두고 있었다. 상현이와 같은 방을 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동우가 묻고 상현이 답한 내용이다.
- (남극) 무섭지 않니?
"네, 무서워요. 형은요?"
- 나도 (아콩카구아) 무서워. 그래도 할 거잖아?
"네."
- 뛸 때 무슨 생각 하니? 난 힘든 산에 오를 때 아무 생각 안 들어, 그냥 어서 이 길이 끝났으면 하는데.
"저도 그래요.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생각을 해요."
- 그래도 끝나고 나면 또 하고 싶지?
"(웃음) 맞아요. 형, 힘들어도 끝나고 나서 생각하면 좋지 않아요?"
- 그 맛에 하는 거지. 그런데 넌 어떤 장비 갖고 뛰니?
"장비요! 돈이 없어서 무거운 게 많아요."
극지 마라톤도 트레킹처럼 장비가 중요하다고 했다. 짐을 메고 뛰기 때문에 경량 장비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지만 상현이는 좋은 장비를 갖춘 서양인의 2배에 달하는 무게를 짊어졌다. 내가 봐도 상현이의 장비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 김상현씨의 모습. ⓒ 김동우
당시 상현이와 난 시체처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화책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 상현아, 우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잘 먹고 잘 쉬자.
"며칠 쉬니까 아픈 무릎도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사실 나도 그랬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발목이 좋지 않아 3,4일은 거의 나다니질 못했다.
- 상현아, 너 그랜드슬램하고 나면 다음 계획은 뭐니?
"글쎄요."
- 세계 3대 마라톤 있잖아. 보스턴·런던 마라톤... 그런 거 해봐.
"아~ 형 꼬시지 마세요(웃음). 일단은 그랜드슬램하고 나면 당분간 아무것도 안 하려고요."
- 쉬다 보면 또 하고 싶어질 걸(웃음). 넌 마라톤 왜 시작했니?
"그냥 뛰는 사람이 멋져 보여 시작했는데 해보니까 매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빠졌죠. 뛸 때는 힘든데 뛰고 나면 기분 좋잖아요."
- 근데 사람들이 너한테 특이하다고 하지?
"네."
- 그 말 듣기 싫지?
"그쵸! 그 말 짱나요!"
- 나도 여행하면서 산만 타고 다니니 그 소리 많이 들었거든. 근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특이한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게 다른 거잖아.
"진짜 그래요! 그거죠."
- 마라톤하고 산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 본인이 잘 모르고 안 해본 거 하면 특이한 건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의 인생 경험이 부족해 그렇게 보이는 거지. 산, 마라톤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한테 특이하다는 표현 대신 부럽다고 하지. 이건 취향의 문제일 뿐인데 말이지.
"맞아요! 맞아!"
▲ 김상현씨의 모습. ⓒ 김동우
상현이는 내가 아콩카구아 산행을 떠난 뒤 남극까지 완주하며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여기다 1년 안에 4개 대회를 모두 완주해 한국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여름 대구에서 상현이를 만나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와 그날 녹음 파일을 텍스트로 정리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인터뷰 파일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이 한마디에 계속 눈길이 머물렀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랜드슬램, 명예의 전당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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