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지옥' 한복판... 대통령에게 듣고 싶은 한 마디
[게릴라칼럼] 사람보다 돈이 우선된 메르스 대책... 정부·여당은 뭐하나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메르스 사태를 둘러싸고 정부와 여당이 보인 모습이 그렇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확대됨에도 바이러스보다는 여론 누르기에 바쁜 정권. '덕으로 국가를 다스린다'는 왕도 정치의 희망은 그만두고서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디에 위탁해야 할지 어리둥절한 게 요사이 민심이다.
정부의 예측이나 보수 언론의 진정 국면이라는 확인할 수 없는 기사 내용과는 달리 연일 사망자가 나오고 격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좋지 않는 현상은 이것만이 아니다. 소위 메르스의 청정지역이라고 불리던 대구 등 지방에서 확진 환자가 나오고 있고, 최장 잠복기를 넘긴 사람들이 새롭게 확진 판정을 받은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40대 사망자가 나옴에 따라, 사망자가 '질환을 앓고 있는 고령'일 것이란 정부의 예측도 빗나가고 말았다.
진정 국면이라고, 무슨 근거로?
▲ 메르스 대응 현장 방문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메르스 환자 격리와 치료의 최일선 현장인 국가지정 격리병상을 방문, 메르스 대응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청와대
이런 나쁜 예후들이 넘쳐나지만, 언론은 '감소 추세, 이번 주가 고비'라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내보내며 국민들을 겁쟁이로 몰아세운다. 대통령은 손씻기 등 몇 가지 건강습관만 잘 지키면 메르스는 걱정 없다고 초등학생들 앞에서 연설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3차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받고 있는 병원에서 어떤 보호 장비도 없이 의료진과 포옹하는 여당 대표도 있다.
진실의 은폐와 강변만이 횡횡하는 사회에서 유언비어가 생기고 증폭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유언비어 진원지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 보수 언론이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는 '메르스 관련 관광업계 지원 및 대응 방안'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메르스에 감염되면 여행경비와 치료비는 물론 사망 시 최대 1억 원까지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이없는 발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국민들, 더 나아가 외국관광객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투다. 위험이 해소되지 않는 여행을 1억 원 미끼를 던져 권하는 문체부가 '얼마면 돼?'라며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지폐 다발을 던지는 영화 속 졸부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논란은 이것뿐만 아니다. 관광업계 지원 방안은 과연 관광객을 안심시킬 메르스 종식의 의지나 대책의 실효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부호만 찍게 한다.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경영상 어려움을 저금리 대출로 해결하고, 관광수효의 재창출을 위해 한류 등을 적극 활용하여 국내 여행 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세우기보다 보상이라는 사탕발림으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려는 문체부. 사람의 생명을 앞에 두고 셈법을 우선한 대책은 세계적인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어디 가서 장사 잘 되냐고 묻는 것이 실례라네요. 영업하기 진짜 힘들어요. 말도 못 붙이고 인사만 하면서 돌아 다녀요."
오랫동안 거래를 해 온 거래처 영업 사원의 말이다. 메르스 사태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설상가상의 위기로 대두되고 있다. 경제지를 비롯한 많은 언론들은 항공, 관광, 유통업계는 물론 수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고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오히려 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건 자영업자와 골목 상권, 서민 경제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란 속담을 맹신하진 않지만, 메르스 사태는 수출과 대자본, 대형마트보다는 자영업자와 서민들에게 치명적인 생존의 문제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된 메르스 대책들
▲ 지난 16일 오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메르스에 감염된 98번째 환자가 사흘동안 입원하며 240여명과 접촉한 이유로 서울시가 23일까지 폐쇄 조치를 내린 양천구 메디힐 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을 포옹하며 격려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래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경제 정책은 내수와 자영업자, 서민들에게 맞춰져야 한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내렸다. 메르스 여파로 위축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의도라 할 수 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추가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금리를 낮추면 경기가 살아난다거나, 서민들에게까지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것이라는 '낙숫물' 효과는 몇 번이나 검증된 거짓이다.
1000조 원을 넘어서도 꺾이지 않는 가계 대출의 상승세는 임금으로 호주머니를 채워주기보다는 빚내기 쉬운 경제 구조에 서민들을 몰아넣은 결과다. 기준금리의 인하는 대기업과 수출 기업에 혜택이 집중되고,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메르스 사태 때문에 금리인하를 단행한다는 한국은행. 결국은 메르스 사태를 위한 비용마저도 서민들에게 청구하겠다는 비열한 의도로 읽힌다.
"지금은 우리 모두 정상적으로 외출하고 행사하는 등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애국하는 길이자 국민의 당연한 도리."
18일,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메르스 여파로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며 위축됨 없이 일상생활에 임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소비가 둔화되고 수출과 내수에 동시에 적신호가 켜진 위급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발언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메르스 사태가 이 지경으로 될 때까지 방치한 정부와 여당이 아닌가. 메르스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지금, 국가를 위해서 정상적으로 외출하고 경제활동을 하라니. 정치인으로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는 것인가.
'정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 영화 <감기>의 한 장면. 영화 속 대통령(차인표)는 직접 나서서 분당시민들을 설득한다. 그리고 안심시킨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 (주)아이러브시네마
메르스 사태는 어디를 봐도 진정국면이 아니다. 단지 감기라고? 어떤 감기가 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이 14%에 이른단 말인가? 사람은 죽어나가는데 걱정 말고 여행 다니라니... '한국의 사례는 메르스에 대한 체계적·협력적 질병관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 독일 보건장관의 조롱은 오히려 점잖은 충고에 가깝다.
메르스 사태에서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낙제점이다. 국민은 경제를 위해 메르스 위험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것인가? 국민은 국가의 소모품이 아니다. 그리고 생명은 돈으로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국민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제발 좀 알아 달라는 거다. 잘못된 정치와 정책에 대해서 일말의 부끄러움이라도 가지라는 것이다.
"분당 시민 여러분, 대통령입니다. 정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안심하십시오."
2013년 상영되었던 영화 <감기>에서 대통령(차인표 역)은 죽음과 맞서 싸우는 시민들을 보면서 컨트롤타워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대통령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 말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듣고 싶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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