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건 사고와 더불어 IMF 때문에 최악의 시대 중 하나로 기억될 법했던 1990년대를 '추억의 시대'로 끄집어 낸 건 TV였다. 2012년 <응답하라 1997>은 IMF가 터진 1997을 겨냥한 듯이, 그때는 오로지 IMF만으로 기억되는 건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1990년대의 또 다른 한 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2013년 <응답하라 1994>가 방점을 찍고, 2015년 새해에 <무한도전-토토가 스페셜>이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는 그 전후로 수많은 1990년대 영화들이 재개봉을 하며 기대 이상의 흥행 몰이를 하기도 했다. 너무 많이 해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간략히 나열하자면, 한·미·일을 대표하는 1990년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타이타닉>, <러브레터>. 어느 순간부터 1990년대는 팍팍한 현실에서 등을 돌려 돌아가고 싶은 시대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접속 1990>(한겨레출판)이라는 영화 <접속>을 연상시키는 제목에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이라는 부제까지 달고 나온 책은, 이 분위기를 이어 가려는 기획에서 나왔을 거라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한 꼭지 정도를 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본 꼭지가 '낙동강의 페놀은 이제 대학가로 흐르는가'라는 제목의 '두산 페놀 사태'를 다룬 꼭지였다. 충격이었다.
정작 1990년대를 상징하는 건 'PC통신'
그야말로 이 책의 이 꼭지 하나로 1990년대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인지했던 '사건 사고'가 난무하고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변화'가 지배했던 그 시대를 몸소 느끼게 된 것이다. 30대 초반만 되어도 1990년대 당시를 오롯이 인지하지는 못할 게 분명하다. 당시를 오롯이 느끼고 인지하는 가장 적합한 위치는 대학생이 아닐까? 저자는 1990년대를 대학생으로, 군인으로, 신입사원으로 살아냈다고 한다. 거기에 PD였기에 느끼는 바가 남달랐을 거였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1990년대 하면 제일 생각나는 게 IMF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1990년대를 상징하는 건 다른 데 있다고 본다. 다름 아닌 PC통신의 출현이다. 저자도 말했듯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제작팀이 제일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당시를 재연하는 데 필요한 소품들을 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1990년대는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던 '변화의 시대'였고, 시작에 'PC통신'이 있었다.
PC통신이 변화를 주도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PC통신으로 문화계가 바뀌었다는 사실. PC통신에서 연재 형식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판타지 소설들이 책으로 출판되어 국내 문학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드래곤 라자>, <퇴마록> 등이 그것인데 이런 소설의 등장은 국내 문학계에서 1990년대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기이다. 이들은 훗날 게임, 영화 등에 까지 영향을 끼친다. 한편 PC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들도 있다. <접속>, <엽기적인 그녀> 등이 그것인데 특히 <접속>은 한국 로맨스 영화의 새로운 틀을 이룩해 냈다는 평을 받았다.
온 나라를 소용돌이치게 한 사건 사고들
개인적인 생각으로 1990년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는 무지막지한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그 어느 시절이라고 사건·사고가 없었던 때가 있었던가. 하지만 유독 1990년대가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건, 그것들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고 그 상상을 초월한 사건·사고들이 연이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저자의 입을 빌려 그 연쇄적인 대형 사고 퍼레이드를 읊어본다.
최초의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시작된 1993년 1월 청주에서 화재가 발생해 28명이 죽고 사상자가 76명에 달했다. 3월에는 구포역에서 무궁화호가 전복 되어 78명이 죽고 부상자는 198명에 이르렀다. 7월에는 목포공항에서 뜬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해 66명이 죽고 40명이 다쳤다. 10월에는 서해훼리호가 뒤집어져 292명이 죽고 70명만 구조되었다. 이 모든 사고가 1993년에 있었다.
1994년 10월에는 그 유명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32명이 죽었고 12월에는 아현동 가스 폭발 사고로 12명이 죽었다. 1995년에는? 한국 역사에 남을 초대형 사고가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501명이 죽었고 부상자만 937명이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사고 행렬이었다. 이런 사건·사고의 행렬은 이미 한국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로부터 2년 후에 한국 사회를 덮칠 IMF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떠나지 않는 망령이다.
그럼에도 1990년대를 그리워하는 이유
이런 것들은 결코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이 아니다. 삐삐, 휴대전화, 금 모으기 운동, 박세리와 박찬호, 김광석, 서태지와 아이들 등에 열광했을 지 몰라도, 이런 것들은 1990년대에서도 그리고 책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1990년대를 그리워할까. 단순히 언론의 힘인가? 드라마의 힘인가? 예능 프로그램의 힘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결코. 그만큼 2010년대의 지금이 힘들다는 반증이다. 차라리 그때 그 시절에 힘들고 좌절하고 슬펐던 일들이 더 나아 보이는 것이다. 격동과 전환이 살아 숨 쉬는 그때가, 정체 되어 있고 숨 쉬지 않은 것 같은 지금보다 살기 좋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왜 못 사냐고 책망하는 대신, 차라리 그때가 낫다고 현재를 체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안타깝다. 안쓰럽다. 그런 날을 그리워하고 있는 우리가.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현재는 생각조차 하기 싫고, 과거는 최악의 그때를 생각하고 있는 우리가. 책을 읽고 손을 놓으니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마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는 그 전후로 수많은 1990년대 영화들이 재개봉을 하며 기대 이상의 흥행 몰이를 하기도 했다. 너무 많이 해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간략히 나열하자면, 한·미·일을 대표하는 1990년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타이타닉>, <러브레터>. 어느 순간부터 1990년대는 팍팍한 현실에서 등을 돌려 돌아가고 싶은 시대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접속 1990>(한겨레출판)이라는 영화 <접속>을 연상시키는 제목에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이라는 부제까지 달고 나온 책은, 이 분위기를 이어 가려는 기획에서 나왔을 거라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한 꼭지 정도를 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본 꼭지가 '낙동강의 페놀은 이제 대학가로 흐르는가'라는 제목의 '두산 페놀 사태'를 다룬 꼭지였다. 충격이었다.
정작 1990년대를 상징하는 건 'PC통신'
▲ <접속 1990> 표지 ⓒ 한겨레출판
위에서도 언급했듯 1990년대 하면 제일 생각나는 게 IMF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1990년대를 상징하는 건 다른 데 있다고 본다. 다름 아닌 PC통신의 출현이다. 저자도 말했듯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제작팀이 제일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당시를 재연하는 데 필요한 소품들을 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1990년대는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던 '변화의 시대'였고, 시작에 'PC통신'이 있었다.
PC통신이 변화를 주도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PC통신으로 문화계가 바뀌었다는 사실. PC통신에서 연재 형식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판타지 소설들이 책으로 출판되어 국내 문학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드래곤 라자>, <퇴마록> 등이 그것인데 이런 소설의 등장은 국내 문학계에서 1990년대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기이다. 이들은 훗날 게임, 영화 등에 까지 영향을 끼친다. 한편 PC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들도 있다. <접속>, <엽기적인 그녀> 등이 그것인데 특히 <접속>은 한국 로맨스 영화의 새로운 틀을 이룩해 냈다는 평을 받았다.
온 나라를 소용돌이치게 한 사건 사고들
개인적인 생각으로 1990년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는 무지막지한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그 어느 시절이라고 사건·사고가 없었던 때가 있었던가. 하지만 유독 1990년대가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건, 그것들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고 그 상상을 초월한 사건·사고들이 연이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저자의 입을 빌려 그 연쇄적인 대형 사고 퍼레이드를 읊어본다.
최초의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시작된 1993년 1월 청주에서 화재가 발생해 28명이 죽고 사상자가 76명에 달했다. 3월에는 구포역에서 무궁화호가 전복 되어 78명이 죽고 부상자는 198명에 이르렀다. 7월에는 목포공항에서 뜬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해 66명이 죽고 40명이 다쳤다. 10월에는 서해훼리호가 뒤집어져 292명이 죽고 70명만 구조되었다. 이 모든 사고가 1993년에 있었다.
1994년 10월에는 그 유명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32명이 죽었고 12월에는 아현동 가스 폭발 사고로 12명이 죽었다. 1995년에는? 한국 역사에 남을 초대형 사고가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501명이 죽었고 부상자만 937명이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사고 행렬이었다. 이런 사건·사고의 행렬은 이미 한국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로부터 2년 후에 한국 사회를 덮칠 IMF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떠나지 않는 망령이다.
그럼에도 1990년대를 그리워하는 이유
이런 것들은 결코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이 아니다. 삐삐, 휴대전화, 금 모으기 운동, 박세리와 박찬호, 김광석, 서태지와 아이들 등에 열광했을 지 몰라도, 이런 것들은 1990년대에서도 그리고 책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1990년대를 그리워할까. 단순히 언론의 힘인가? 드라마의 힘인가? 예능 프로그램의 힘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결코. 그만큼 2010년대의 지금이 힘들다는 반증이다. 차라리 그때 그 시절에 힘들고 좌절하고 슬펐던 일들이 더 나아 보이는 것이다. 격동과 전환이 살아 숨 쉬는 그때가, 정체 되어 있고 숨 쉬지 않은 것 같은 지금보다 살기 좋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왜 못 사냐고 책망하는 대신, 차라리 그때가 낫다고 현재를 체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안타깝다. 안쓰럽다. 그런 날을 그리워하고 있는 우리가.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현재는 생각조차 하기 싫고, 과거는 최악의 그때를 생각하고 있는 우리가. 책을 읽고 손을 놓으니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마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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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1990>, (김형민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320쪽, 14000원, 201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