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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로 사라지는 족보? 그 속에 답이 있다

홍익인간 네트워크... 부천족보전문도서관을 찾아서

등록|2015.06.24 12:06 수정|2015.06.25 11:20

▲ 김원준 원장 ⓒ 라영수


30년 동안 족보 연구에 매달려온 김원준(65) 관장이 2명의 자원봉사자와 꾸려가고 있는 '부천족보전문도서관'. 그곳을 지난 13일에 다녀왔다.

아무도 족보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김 원장은 족보야말로 우리 민족의 실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갈수록 훼손, 망실되는 족보를 보고 그냥 둘 수 없어 잠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족보 수집과 연구에 매달렸다. 땔감 불쏘시개로, 아이들은 재기 만드는 종이로 사라지는 족보를 누군가가 수집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에 달려들었으나 주위의 눈길은 곱지 않았다. 대부분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젊은이가 족보에 매달려 세월을 낭비(?)한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는 족보 연구를 거듭할수록 그 뜻이 심오해지며, 더구나 오늘날도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지금은 그 시행 방법을 연구 중이다. 족보는 하나에서 출발했으므로, 우리 민족이 추구한 조상님들의 뜻에 따른다면  현안인 남남 갈등, 남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도 족보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들의 뿌리를 알아내는 노력이 바로 조상님들이 추구했던 이상 세계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 각종 족보가 정리된 서가이다. 서가가 모자라 일부 족보는 바닥에서 대기 중이다. ⓒ 라영수


김 원장은 KBS 한민족방송에 출연해 성씨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3개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방송을 들은 해외 동포들이 자신의 족보를 찾아달라고 수십 통씩 사연을 우편으로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최선을 다해 족보를 찾아 답신을 해줬으나, 어설픈 문의 내용으로는 원하는 답을 찾아주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3명의 봉사자로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는 조사 작업이 수반돼야 했기 때문에 난처한 일이 됐다.
 
만약 한 성씨에 한 명이라도 연구원이 전담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3명이 모두인 부천족보전문도서관으로서는 불가능한 업무였다. 해외 동포의 갈증을 풀어주기는커녕 조국을 원망하는 계기를 줄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방송을 중단하는 게 상책일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뿌리를 찾고자하는 조국을 방문하는 해외 동포의 다수가 김 관장을 찾아온다고 했다. 김 관장을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호적, 족보 관련 국립 및 시립도서관을 찾은 재외 동포들이 담당 공무원과 상담하면 김 관장을 찾아가라는 답변을 듣곤 한다고 한다.

족보도서관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없이 김 관장의 사비로 운영하는 민간 기구다. 우리 정부나 사회가 족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바로 서 있지 못한 것은 김 관장이 족보 연구를 시작하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른 변화가 없다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다.

70평으로는 좁아 기존의 족보 자료도 서가에 다 꽂히지 못해 바닥에서 대기 중인 자료가 많다.
최근 신아무개씨로부터 인수 받은 자료는 아예 사무실 밖 빈 사무실을 임시로 빌려 쌓아놔야 할 정도다. 신씨는 우리나라 족보의 대가인 선배 족보 학자로서 옛날 남대문 도서관 시절부터 족보를 연구하고 필요한 분들게 만들어 드리던 분이다. 신씨가 작고하자 자손들이 신 선생의 자료를 보관할 길이 없어 김 관장에게 보관을 의뢰한 것이다. 김 관장에게는 귀중한 자료다.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여건이 되면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기념 연구실을 장만할 예정이다.

▲ 작고하신 선배 족보전문가가 신 선생이 남긴 자료들 ⓒ 라영수


그가 30년 동안 일궈온 꿈은 봄날 햇살보다 더 화창하다. 전국 모든 문중 및 관련 기관 단체들과 연대해 족보 클러스터인 '족보 문화 단지'를 건립할 계획도 있다. 족보수집연구소, 족보학회, 족보발간소, 전문가 연대, 족보의 데이터베이스화, 해외 제공용 족보 콘텐츠, '우리 민족 뿌리 찾아주기' 본부, 대학 족보학과 신설 및 족보학, 제례, 관향학, 풍수지리 등 학과로 구성된 대학 설립 등 김 관장은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지켜가는 힘이 바로 꿈꾸는 노인 김 관장으로부터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저기 거미줄처럼 촘촘히 짜여있는 홍익인간 네트워크, 대한민국의 꿈은 푸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안산 <참좋은신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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