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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현실...'설탕'에 열광하는 이유는?

[TV리뷰] 탐식의 시대, '걸진' 밥상에 빠지다

등록|2015.06.26 18:48 수정|2015.06.26 18:48

▲ 지난 5월 tvN <집밥 백선생> 제작발표회 당시 백종원 ⓒ 이정민


지인이 한식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이를 위해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식을 배우기 시작한 지인이 가장 놀란 것은 뜻밖에도 요리에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설탕이었다. 설탕이라면 서양 요리나 빵 같은데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한식에도 설탕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단다. 설탕 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백선생' 백종원이다.  

설탕, 자신의 정체성을 떳떳이 주장하다.

요즘 '백종원 레시피'가 유행이다. 백종원표 된장찌개에 만능 간장까지. 그가 요리 프로그램에서 하는 레시피마다 화제다. 그뿐만이 아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그가 요리에 즐겨쓰는 설탕 역시 관심을 받고 있다. 그의 말대로 요리가 맛이 없을 때 넣으면 웬만해선 맛이 없지 않도록 만드는 재료의 대명사로 설탕이 등장했다.

설탕은 조리 과정에 들어가는 조미료 중 하나다. 그러나 설탕으로 상징되는 '단맛'은 하나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25일 방송된 <썰전>에 등장한 최진기의 분석처럼 단맛은 이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설탕은 비만과 인스턴트 음식의 대명사였다. 그래서 설탕을 뺀 다이어트 콜라가 유행했고, 설탕의 대용품이 등장했다. 설탕 대신 매실액을 쓰는 것이 건강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사람들은 음식을 더 맛있게 하려고 설탕을 마구 투여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세프 전성 시대의 '걸진' 음식들

▲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샘 킴 셰프와 그가 만든 요리 ⓒ JTBC


이렇게 더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게 된 시대의 상징이 바로 셰프들이다. 셰프는 갖가지 식재료를 가공하여 요리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셰프가 트렌드의 중심에 서면서 보다 맛있는 요리가 TV를 채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대표적이다. 셰프들은 갖가지 재료로 출연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굳이 대결 방식의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기존의 요리 방식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제공하기 위한 '비법'이 강조된다. 그나마 소박했던 <삼시세끼>조차도 '차줌마' 차승원이 등장하면서 자꾸 '요리'를 한다.

지난 22일 방송된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셰프 샘 킴은 소녀시대 써니를 위해 오겹살 요리를 했다. 오겹살에 갖가지 양념을 발라 조리하고, 거기에 다시 달콤한 소스를 끼얹는다. 오겹살을 이미 그 자체로도 맛있는 재료다. 하지만 세프들은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재료에 맛을 더한다.

어디 재료뿐이랴. 흥건하게 사용되는 부재료는 설탕만이 아니다. 버터도 지천이다. 한때는 콜레스테롤의 대명사였던 버터가 요리에 한 주걱씩 들어간다. TV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요리는 이미 맛이 보장된 재료에 갖가지 양념을 더하고, 조리 과정을 거쳐 미각을 홀리는 완성품이 된다. 백주부의 된장찌개나 만능 간장 역시 '고기'를 빼놓고는 설명이 안된다.

<한식대첩>에서는 각 지역의 요리 경연자들이 자기 지역의 뽐낼 만한 재료를 들고 나온다. 종종 살아 움직이는 오리, 오골계, 퍼득이는 물고기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시청자는 펄떡이는 생명을 보고 생명의 외경심이나 살생의 아득함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저 얼마나 맛있는 재료가 될 것인가에만 골몰한다.

살아있는 생명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요리 프로그램. 식재료에 과한 양념을 더하는 과정에 대한 탐닉. 그리고 더 맛있는 요리를 향한 레이스로 점철된 각종 요리 경연 프로그램. 여기서 '고기 없는 월요일'이 상징하는 생명에 대한 외경, 지구를 나누어 쓰는 한 세대의 겸손함은 찾을 수 없다. 심지어 한때 유행하던 자연식이나 건강식조차 발을 들이밀 여지가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TV 속 탐닉의 극치가 현실의 역반응이라는 점이다. 최진기가 현실의 쓸쓸함을 잊기 위한 달콤함이 트렌드라고 지적하듯, 현실의 사람들은 한 끼의 밥조차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다.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맛집을 찾아갈 형편이 안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TV 속 요리에 대리만족한다. 아프리카 TV의 먹방을 보며 편의점에서 한 끼를 때우던 그 시간의 연장으로 백종원 레시피에 열광한다. 최현석, 샘 킴의 레스토랑은 비싸서 찾지 못하지만 <냉장고를 부탁해> 속 그들의 경연을 평하며 그들의 요리를 맛본 듯 만족감을 느낀다. 삶의 팍팍함과 TV 속 요리의 화려함은 반비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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