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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씻김굿'으로 변모한 고전 오페라의 재해석

[리뷰] 서울오페라앙상블 글럭 탄생 기념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등록|2015.06.29 21:53 수정|2015.06.29 21:53

▲ 서울오페라앙상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1막.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한국판 씻김굿으로 글룩의 고전오페라를 명쾌하게 재해석했다. ⓒ 서울오페라앙상블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연출 장수동)이 글럭(Gluck) 탄생 300주년 기념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했다.

바로크시대 독일작곡가로 오페라개혁을 이룬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명확한 내용과 간결하고 힘있는 음악이지만 국내에서 흔히 공연되는 레퍼토리는 아니다. 2007년 경남오페라단의 국내 초연 이후, 2010년 5월 국립오페라단이 제1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장수동 연출의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제12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개막작으로 각각 공연해 화제가 되었다. 이어 서울오페라앙상블은 2014년 11월 충무아트홀에서 공연하고 이번에 또 관객을 찾아왔다.

지난해 11월 공연이 세월호 유족들을 위한 한국판 씻김굿 버전이었다면, 올해는 메르스 사태로 인한 희생자들을 위한 의미가 더해졌다.

이번 공연은 소극장의 이점으로 공연에의 몰입도가 좋았으며, 세련되고 심플한 무대디자인과 주역 가수들의 훌륭한 노래와 연기, 정금련 지휘의 서울바로크플레이어즈의 생생한 반주와 서울오페라앙상블합창단의 탄탄한 합창으로 글룩 오페라 합창의 특징을 잘 살려냈다. 또한 그루포 디 단짜(서재민, 이빛나, 김다솔)의 3인조 발레가 극 흐름을 살려주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끝없이 도시를 횡단하는 지하철 영상이 보인다. 극장을 가득 채우는 서울바로크플레이어즈 14명 앙상블의 역동적인 반주가 관객 바로 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내 막이 오르고, 큰 원형에 배모양 배경과 배모양을 형상화한 양 옆 계단에 검정옷의 합창단이 노래한다. 흰색 상복 상의와 상모를 쓴 오르페오(메조 소프라노 김정미)가 아내 에우리디체를 잃은 슬픔을 애절하게 노래한다.

슬픔은 독창과 합창, 발레의 간결한 서술로 관객의 공감을 얻는다. 아모르(테너 장신권)가 나타나 에우리디체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단, 그녀에게 오르페오의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다.

테너 장신권은 검정 옷에 붉은칠, 머리에도 붉은 칠을 하고, 한쪽 입이 슬쩍 올라가 익살스러우면서도 괴기스럽고 흡사 저승사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설득력 있는 연기와 노래를 펼쳤다. 무대 가운데 큰 원과 양 옆 기둥 스크린에 배, 구름, 지옥 등 장면별 영상이 분위기를 자아낸다.

▲ 서울오페라앙상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 서울오페라앙상블


2막, 아모르와 합창단, 오르페오는 망태기를 입고 손에는 붉은 목장갑을 끼고 손전등을 비추며 붉은 레테의 강을 건너고, 드디어 에우리디체(소프라노 이효진)를 만난다. 만남의 기쁨을 노래한 듀엣이 아름답다.

3막에서 에우리디체는 왜 계속해 자신을 쳐다보지 않느냐 추궁하고 결국 오르페오가 그녀를 쳐다보자 모든 것은 산산히 부서지고 폐허가 된다. 그녀는 다시 죽게 된다.이 때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 "에우리디체 없이 어떻게 하나?(Che faro senza Euridice?)"에서 메조소프라노 김정미는 성심을 다한 노래와 연기로 박수를 받았다.

상심한 오르페오가 자살하려고 하자, 아모르가 막으며 다시 에우리디체를 살려내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셋의 삼중창이 즐겁고 아름답게 울려퍼진다. 소극장에서 더욱 가깝고 친숙하게 만난, 작년과 올해의 큰 사건과 영혼을 위로하는 레퀴엠이자 씻김굿으로 찾아온 '고전 중의 고전' 오페라로 음악을 듣고 보는 즐거움이 다시 한번 살아난 밤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2015 밀라노세계EXPO' 기간 중에 '한국문화주간'에 메인 공연으로 7월 12일 밀라노 팔라치나 리베르티홀 (Palazzina Liberty Auditorium)에서 공연한다. 한국판 씻김굿으로 변모한 클래식 오페라, 오페라 본고장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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