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중노동시키는 출판사, 이거 참 특이하네?
[서평] 책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표지 ⓒ 어크로스
회사에서 운영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것 같았고, 문장은 마치 <딴지일보>를 읽는 것 같았다. 세련되지 않고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자못 궁금해져 나도 모르게 홈페이지를 여기저기를 둘러 보게 되었다.
분명 다른 출판사와는 달랐다. 독자들에게 말을 걸었는데, 생떼를 부리고 반협박을 하고 같이 놀자고 했다.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렸고 댓글 역시 실시간으로 달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기상천외한 이벤트. 독자를 참여시키고(중노동을 시키고), 독자와 함께 놀고, 독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막무가내처럼 보이는데, 그게 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분히 부담스러워서 참여하지는 않고 구경만 했다. 그러곤 '출판사라면 아무쪼록 책으로 승부를 해야지, 이목 끌기용 이벤트가 왠 말이람?'라며 혀를 차면서 나왔다. 사실 마음 속으로는 '어떻게 저런 이벤트를 생각했지. 생각하기도 힘들겠지만, 도무지 귀찮아서 못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홈페이지의 주인공은 장르 문학 전문 출판사 '북스피어'였다.
우연히 알게 된 출판사, 그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그렇게 알게 된 북스피어 출판사 홈페이지는 심심할 때마다 들러 '구경'하는 사이트가 되었다. 책 구경도 책 구경이지만 이번에는 어떤 이벤트를 하고 있나 하는 궁금증이 크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보다도, 출판사의 책보다도,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보아 하니 그리 크지 않은 출판사 같은데, 그렇다면 한 명이 쓸 가능성이 크다. 대표? 편집부? 영업부? 디자이너? 궁금했다.
그 궁금증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풀렸다. 책이 나왔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어크로스). 북스피어의 모토이자,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의 모토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책은 그의 사상이 담긴 출판 기행문이다. 처음 보는 유의 책인데,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그 문체, 그 느낌, 그 사상 그대로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질감은 없었다. 여담이지만 왜 <딴지일보> 느낌이 나는가 했더니, 전 <딴지일보> 편집장이 공동대표로 있었다.
그들의 기상천외 이벤트, 그리고 출판계의 뒷이야기
책은 먼저 북스피어가 행했던 기상천외하고 황당무계하고 대단한 이벤트들을 보여준다. 어떻게 하게 되었고, 왜 했으며, 무엇을 했는가. 출판계에 회자된 수많은 이벤트들 중에 한 개만 예를 들어 본다. 2012년 미야베 미유키의 <안주> 마케팅을 위해 자그만치 5000만 원에 달하는 독자 펀딩을 기획한 것이다. 일명 '원기옥 이벤트'. 결과는? 대출, 퇴직금, 아버지 수술비용까지 투자한 독자들을 비롯해, 해당 포스팅의 댓글이 350여 개나 달리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래서? 그게 다야? 하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독자일 때는 몰랐던, 알 수 없는 출판계의 일들을 말하는 것이다. 쭉 보면 책이 태어나는 과정이다. 투고, 원고, 마감, 표지, 제목, 기획, 맞춤법, 제작, 파본, 판권, 뜬금없이 공모전까지 읊어준다. 여기부터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제목과 책의 기획 의도에서는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다. 더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읽어가면 갈수록 '이 출판사가 뭘 할지 알 수 없다, 기대된다'는 느낌에서 '이 저자(출판사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기대되긴 하는데 조금 뻔하다'라는 느낌으로 변화한다. 마지막에 가서는 '페어플레이'라는 주제로 한 장을 다루며, 출판계에 퍼져 있는 여러 뒷이야기들과 저자의 출판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꺼낸다. 이 이야기들이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 있는데, 과한 느낌이 없지 않다.
매력 덩어리 출판사에 믿음이 가는 이유
저자와 저자가 운영하는 출판사는 이 힘든 출판계에 꿋꿋이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그러면서도 웬만큼 책이 잘 나가고 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조금 아니 꼬아 보일 수 있겠다. 물론 저자가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한 개도 빠짐없이 옳은 말이지만 말이다. 이런 게 또 저자의 매력이거니와 저자의 출판사 '북스피어'의 매력이기도 하겠는 바, 그가 '북스피어'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독자들 만을 위해 나아가겠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이렇게 출판사의 일급 기밀(!)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벤트의 뒷이야기나 저자 개인의 일신이 걱정되는(!) 출판계의 더러운 뒷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말 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통해 하는 말이면 몰라도,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나온 것이지 않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가 운영하는 출판사에 더 믿음이 간다. 또 한편으로는 다른 출판사를 전적으로 마케팅 시켜주는 책을 낸 이 출판사(어크로스)에게도 믿음의 눈길을 보낸다. 여러모로 보기 좋은 출간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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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김홍민 지음, 어크로스 펴냄, 328쪽, 14000원, 2015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