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만 쌓는 요즘 대학생? 누군 하고 싶어 하나요
[채용제도, 청년 멍들인다] ① 일자리 못 늘린다면, 채용 제도라도 바꾸자
한 중소기업의 재무담당 최고책임자인 김병진(47)씨는 대기업에 취업했던 적이 있다. 주목할 부분은 취직 배경이다. 김씨는 '식사 한 끼'로 대기업에 입사했다. 졸업한 선배와의 저녁 식사에서 권유를 받아 지원서를 쓰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취직한 것이다. 그는 "당시 대학교에 회사 직원들이 와서 학생들에게 지원서를 나눠주고, 밥을 사주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는 대부분 취업이 잘 되었고,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 그런 시기는 아니었다.
취업을 위한 사교육이 '필수'가 된 시대
'선배와의 저녁식사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급속한 경제 성장기에는 일할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성장 정체로 인해 청년들의 고용 전망이 어둡다. 통계청이 지난 6월에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 실업률은 9.3%로 전 연령대 실업률(3.8%)보다 약 2.5배 정도 높았다. 청년 실업자는 40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현실에서 '선배와 저녁을 같이 먹었더니 취직이 되었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고용시장 상황이 너무 어려워 청년들은 사교육을 받게 되고, 취업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4년제 대졸자의 취업 사교육 기간 및 비용' 자료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은 평균 511만원을 취업 사교육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젊은이들을 보며 많은 기성세대가 하는 말이다. 청년들이 개성도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만 따라가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고용시장과 채용제도가 변화했다는 구조의 문제를 성급하게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태도다.
요즘은 서울권 4년제 대학 졸업생들, 심지어 서울대 학생들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두 과목을 신청한 뒤 9학기, 10학기를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 중인 서울대 학부생 비율(전체 졸업생 가운데 학기를 연장한 학생 비율)은 2011년 각각 51.9%와 26.0%에서 2013년 59.7%, 34.1%로 높아졌다. 서울대 졸업생 3명 중 1명이 10학기 이상을 등록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 사교육이 과열되고 취업준비생들이 여기에만 매달리는 문제는 청년 개인들만을 탓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채용제도나 취업사교육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선택을 하는 청년 개개인을 탓하기보다는, 대신 청년들이 취업 사교육 시장의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도록 만든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히려 과잉 투자 부추기는 정부 정책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 정책은 오히려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사교육을 비롯 취업을 위한 학습에 돈과 시간을 과잉 투자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금융3종 세트(증권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펀드투자상담사)'를 폐지한 것을 어긋난 정책의 예로 들 수 있다.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금융 3종 세트 대신 훨씬 더 고도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AFPK(Associate Financial Planner Korea) 또는 CFP(Certified Financial Planner)를 준비해야 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청년들의 부담이 늘어난 꼴이 된 것이다.
실제로 AFPK와 CFP는 필요한 기간이나 비용적인 면에서 이전의 3종 세트보다 훨씬 더 부담이 된다. 금융 3종 세트는 이 시험을 주관한 한국금융투자협회(금융투자교육원)에서 만든 수험서(전 과정 약 14만원)를 사면 3~4개월 정도라는 시간 안에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AFPK는 한국FPSB에서 인증한 교육기관에서 AFPK 과정을 이수해야만 시험 응시를 할 수 있다. 5만원의 응시료와 함께 시험을 보고, 시험에 합격하면(100점 만점 중70점 이상) 3년 이내에 자격인증을 신청해야 한다. 이 때 라이선스 비용은 10만원이다.
AFPK 자격증을 갖고 나서야 CFP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CFP 자격증을 얻으려면 6개월간 준비를 해야 한다.) AFPK와 마찬가지로 한국FPSB에서 인증한 교육기관에서 CFP 교육을 다 이수한 후,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긴다. 게다가 이 시험은 이틀에 걸쳐 이루어진다.
박기웅(27, 가명) 씨는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금융 3종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무용지물이 된 경우다. 그는 "금융 3종이 취업 면접 때 보니까 자격증 축에도 못 끼게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게 딴 금융 3종 자격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AFPK와 CFP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CFP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재무설계사 자격증이다. 반면, AFPK는 호주와 아시아의 몇 국가 등에서만 효력을 발휘하는 CFP의 전 단계 자격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CFP를 따기 위해 먼저 AFPK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박씨와 같은 금융권 취업준비생들은 할 일이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채용 제도와 사교육 시장에 개입 필요
1980년대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병서(51)씨는 '과열된 구직 전쟁'을 취업 사교육이 생겨난 배경으로 본다. "지원하는 직군과 상관없이 공인어학성적과 여러 종류의 자격증을 준비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구직 시장을 과열시켰다"는 것이다.
김씨는 "1980년대에도 취업 사교육은 있었지만, 그러나 이 시기에는 취업을 위한 경쟁이 지금만큼 치열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영어와 같은 어학 시험이 지금과 같이 의무(소위 '스펙')가 아니었고 또 모든 부문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이때는 영어가 부족한 학생이 해외업무 관련 일을 하기 위해 영어를 학원에 가서 배운다는 정도로만 사교육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채용 제도와 이를 대비하는 취업용 사교육은 정도를 넘어 확실히 과열되어 있다. 많은 취업 준비생들은 자신들이 '취준' 과정에서 느끼는 부당함과 불편함을 문제로 제시하는 것 자체를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취업 사교육 시장에 자신 스스로를 내몰고 있다. 이러한 청년들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일테다. 그러나 만약 일자리 자체의 증가가 당장은 어렵다면, 적어도 채용 사교육 시장이나 채용제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청년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채용제도, 청년 멍들인다] 기획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취업준비생들이 과도한 취업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원인이 기업들의 채용 절차에 있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각 꼭지마다 자기소개서 대필, 면접 사교육, 인적성검사, 탈 스펙 채용 등 복잡한 채용 절차에 의해 비대해지는 취업 사교육 시장을 조명하고 채용 절차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취업을 위한 사교육이 '필수'가 된 시대
'선배와의 저녁식사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급속한 경제 성장기에는 일할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성장 정체로 인해 청년들의 고용 전망이 어둡다. 통계청이 지난 6월에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 실업률은 9.3%로 전 연령대 실업률(3.8%)보다 약 2.5배 정도 높았다. 청년 실업자는 40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현실에서 '선배와 저녁을 같이 먹었더니 취직이 되었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고용시장 상황이 너무 어려워 청년들은 사교육을 받게 되고, 취업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4년제 대졸자의 취업 사교육 기간 및 비용' 자료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은 평균 511만원을 취업 사교육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젊은이들을 보며 많은 기성세대가 하는 말이다. 청년들이 개성도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만 따라가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고용시장과 채용제도가 변화했다는 구조의 문제를 성급하게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태도다.
요즘은 서울권 4년제 대학 졸업생들, 심지어 서울대 학생들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두 과목을 신청한 뒤 9학기, 10학기를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 중인 서울대 학부생 비율(전체 졸업생 가운데 학기를 연장한 학생 비율)은 2011년 각각 51.9%와 26.0%에서 2013년 59.7%, 34.1%로 높아졌다. 서울대 졸업생 3명 중 1명이 10학기 이상을 등록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 사교육이 과열되고 취업준비생들이 여기에만 매달리는 문제는 청년 개인들만을 탓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채용제도나 취업사교육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선택을 하는 청년 개개인을 탓하기보다는, 대신 청년들이 취업 사교육 시장의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도록 만든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히려 과잉 투자 부추기는 정부 정책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 정책은 오히려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사교육을 비롯 취업을 위한 학습에 돈과 시간을 과잉 투자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금융3종 세트(증권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펀드투자상담사)'를 폐지한 것을 어긋난 정책의 예로 들 수 있다.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금융 3종 세트 대신 훨씬 더 고도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AFPK(Associate Financial Planner Korea) 또는 CFP(Certified Financial Planner)를 준비해야 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청년들의 부담이 늘어난 꼴이 된 것이다.
실제로 AFPK와 CFP는 필요한 기간이나 비용적인 면에서 이전의 3종 세트보다 훨씬 더 부담이 된다. 금융 3종 세트는 이 시험을 주관한 한국금융투자협회(금융투자교육원)에서 만든 수험서(전 과정 약 14만원)를 사면 3~4개월 정도라는 시간 안에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AFPK는 한국FPSB에서 인증한 교육기관에서 AFPK 과정을 이수해야만 시험 응시를 할 수 있다. 5만원의 응시료와 함께 시험을 보고, 시험에 합격하면(100점 만점 중70점 이상) 3년 이내에 자격인증을 신청해야 한다. 이 때 라이선스 비용은 10만원이다.
AFPK 자격증을 갖고 나서야 CFP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CFP 자격증을 얻으려면 6개월간 준비를 해야 한다.) AFPK와 마찬가지로 한국FPSB에서 인증한 교육기관에서 CFP 교육을 다 이수한 후,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긴다. 게다가 이 시험은 이틀에 걸쳐 이루어진다.
박기웅(27, 가명) 씨는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금융 3종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무용지물이 된 경우다. 그는 "금융 3종이 취업 면접 때 보니까 자격증 축에도 못 끼게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게 딴 금융 3종 자격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AFPK와 CFP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CFP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재무설계사 자격증이다. 반면, AFPK는 호주와 아시아의 몇 국가 등에서만 효력을 발휘하는 CFP의 전 단계 자격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CFP를 따기 위해 먼저 AFPK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박씨와 같은 금융권 취업준비생들은 할 일이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채용 제도와 사교육 시장에 개입 필요
1980년대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병서(51)씨는 '과열된 구직 전쟁'을 취업 사교육이 생겨난 배경으로 본다. "지원하는 직군과 상관없이 공인어학성적과 여러 종류의 자격증을 준비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구직 시장을 과열시켰다"는 것이다.
김씨는 "1980년대에도 취업 사교육은 있었지만, 그러나 이 시기에는 취업을 위한 경쟁이 지금만큼 치열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영어와 같은 어학 시험이 지금과 같이 의무(소위 '스펙')가 아니었고 또 모든 부문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이때는 영어가 부족한 학생이 해외업무 관련 일을 하기 위해 영어를 학원에 가서 배운다는 정도로만 사교육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채용 제도와 이를 대비하는 취업용 사교육은 정도를 넘어 확실히 과열되어 있다. 많은 취업 준비생들은 자신들이 '취준' 과정에서 느끼는 부당함과 불편함을 문제로 제시하는 것 자체를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취업 사교육 시장에 자신 스스로를 내몰고 있다. 이러한 청년들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일테다. 그러나 만약 일자리 자체의 증가가 당장은 어렵다면, 적어도 채용 사교육 시장이나 채용제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청년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채용제도, 청년 멍들인다] 기획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취업준비생들이 과도한 취업 사교육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원인이 기업들의 채용 절차에 있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각 꼭지마다 자기소개서 대필, 면접 사교육, 인적성검사, 탈 스펙 채용 등 복잡한 채용 절차에 의해 비대해지는 취업 사교육 시장을 조명하고 채용 절차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김지연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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