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에 단비 내리듯 시원한 시집 두 권
두 노동자 시인의 출판기념회를 다녀와서
나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시를 써본 적은 더욱 없다. 그런데 보름 전에 2002년부터 진보넷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사람 두 명이 시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소식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한 명은 이미 1997년에 전태일 문학상 시 부문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곽장영이라는 사람이다. '삶은 단순하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예나, 지금이나 "단순하게 살자, 좀"을 외치며 블로그에 글을 썼던 그는 '산오리'로 통했다.
다른 한 명은 '감비'라는 닉네임을 썼던 이성우라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투덜이) 스머프'로 불렀다. 이 둘은 현재 공공연구노조에서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숫자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젋지도 않은 이 사람들이 아직도 현장에 남아 노조 전임자를 하고 있다는 게 고맙고 사실은 좀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소통했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블로그를 운영할 때는 하루의 1/5이라는 꽤 긴 시간을 그곳에 할애하며 살았다. 마땅히 털어 놓을 곳이 없는 이야기와 세상살이의 불만을 배설하듯 내뱉기도 했다. 때로는 조용히 반성하는 글도 쓰고 아이 키우는 후일담을 쓰면 같은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이 달아주는 댓글로부터 동지애를 느끼고 격려와 지지를 받고는 안심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블로그에 쓰는 글이 줄었지만 10년이 넘도록 온라인에 쏟아놓은 내 글을 본 사람들은 나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지만 나는 왜 그 때 '신비감'이라는 카드를 쓸 줄 몰랐을까? 덕분에 이리도 돈독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여전히 나에게 무기이다. "오늘 막걸리 번개나 칠까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그 번개의 위력(?)을 알면서도 기꺼이 맞았던 이들이 위에서 말한 '산오리'와아 '감비'였다.
드디어 이 두 사람의 출판기념회가 지난 6월 26일 강서양천 '민중의 집'에서 열렸다. "꼭, 갈게요"라는 언질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퇴근 후 부랴부랴 달려갔다. 기다리던 날이었으니까. 특히, 이성우 위원장은 종종 페이스북에 그의 심경을 시로 쓰기도 했는데 시를 잘 읽지 않는 나에게도 시를 읽게 하는 재미를 알게 해줬다.
약대를 나와 대학원에 다닐 때 서울적십자병원에서 1년 반쯤 근무하고 신약 개발하겠다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들어간 이성우씨는 정작 연구원 노릇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로지 돈 되는 연구만 하라는 정부 정책에 발끈하여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삶이 시가 되게 하라>라는 표제작으로 출간된 그의 첫 번째 시집에는 평등하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보려다 먼저 저세상으로 간 열사들을 추모하는 시가 여러 편 있다.
고교 시절, 혼자 자취를 하며 한여름엔 석유곤로, 겨울에는 연탄아궁이에서 밥을 지으며 그 옆에서 쪼그려 앉아 책을 읽었다고 한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부뚜막에서는 문제 풀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거기서 '시'를 만났다고 한다. 시집 맨 마지막에 쓴 <시와 나>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적에 대한 남들의 관심 말고는 변화 없는 자취생의 일상으로 시가 야금야금 파고들었다, 시는 사랑이었고 시는 죽음이었고 시는 구원이었다"라고.
저자는 4.19와 5.18을 겪으면서 비로소 교과서 밖의 시들을 만났다고 한다. <아직도 니네 나라에서는>이라는 시에서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직도 니네 나라에서는
아직도 니네 나라
검찰은
사람을 때려죽인다지.
아직도 니네 나라
경찰은
모든 국민을 적군으로 여긴다지.
천하무적 상권불패!
아직도 니네 나라
국회라는 것이
조폭보다도 더 나와바리에 미쳐 날뛴다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직도 니네 나라
백성들은
그런 놈들한테 날마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숨이 붙어 있기는 하다지.
그래, 이놈아.
서른 창창한 나이에 근골격계 시름으로 자살하고
환갑 넘은 노점상 형님이 단속에 노하여 분신하고
농민 할배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농약을 마시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 년에 3,000명 노동자가 산재로 죽어가는 나라에서
절통하고 분통하여
우리가 어째 쉬 죽을 수 있겠느냐.
감옥에 끌려간들 대수랴.
방패에 찍히는 것이 아프랴.
수십 바늘 꿰맨다고 흔적이나 남으랴.
더 밀릴 곳도 없는 벼랑 끝에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간다면 어디로 가겠어?
공대를 나와 27년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다니고 있으면서 홍보 업무가 주 임무였지만 홍보 업무보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더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곽장영씨의 이번 시집은 <가끔은 물어본다>라는 표지 제목으로 출간됐다.
언제나 복잡한 건 딱 질색이라면서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그의 시를 읽어보니 삶에서는 단순함을 읊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걸 <상처가 삶이다>라는 시에서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다.
상처가 삶이다
팔다리 잘라 내고
뿌리까지 토막 쳐 버려져도
나무들은 다시 뿌리를 내리고
삶의 팔다리를 살려 내듯이
가슴을 찢어 할퀴고
심장을 잘라서 난도질하더라도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을 보듬고
또 다른 심장을 만들어 갈 것을
잘려 나간 팔다리를 붙여 주겠다고
몸과 마음을 후벼 판 상처를 힐링해 주겠다고
거짓으로 애쓰는 너희들의 허파나 챙기고'탐욕에 썩어
문드러진 당신들 몸뚱이나 잘라서 버려라
살아 있다는 것은
진한 외로움이 아니다
살이 있다는 것은
어설픈 사랑도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하략)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건강한 두 노동자를 시에 눈뜨게 하고 광풍이 몰아치는 이 세상을 바로 잡고자 투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시인이 되게 했다. 그리고 나처럼 시를 읽지 않는 사람도 시를 읽게 했다. 가뜩이나 가뭄 때문에 시름 깊어가는 땅에 '단비'가 내려준 듯 시원한 시집 두 권을 만났으니 올여름은 좀 덜 덥기를 바라본다.
한 명은 이미 1997년에 전태일 문학상 시 부문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곽장영이라는 사람이다. '삶은 단순하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예나, 지금이나 "단순하게 살자, 좀"을 외치며 블로그에 글을 썼던 그는 '산오리'로 통했다.
다른 한 명은 '감비'라는 닉네임을 썼던 이성우라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투덜이) 스머프'로 불렀다. 이 둘은 현재 공공연구노조에서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숫자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젋지도 않은 이 사람들이 아직도 현장에 남아 노조 전임자를 하고 있다는 게 고맙고 사실은 좀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소통했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블로그를 운영할 때는 하루의 1/5이라는 꽤 긴 시간을 그곳에 할애하며 살았다. 마땅히 털어 놓을 곳이 없는 이야기와 세상살이의 불만을 배설하듯 내뱉기도 했다. 때로는 조용히 반성하는 글도 쓰고 아이 키우는 후일담을 쓰면 같은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이 달아주는 댓글로부터 동지애를 느끼고 격려와 지지를 받고는 안심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블로그에 쓰는 글이 줄었지만 10년이 넘도록 온라인에 쏟아놓은 내 글을 본 사람들은 나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지만 나는 왜 그 때 '신비감'이라는 카드를 쓸 줄 몰랐을까? 덕분에 이리도 돈독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여전히 나에게 무기이다. "오늘 막걸리 번개나 칠까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그 번개의 위력(?)을 알면서도 기꺼이 맞았던 이들이 위에서 말한 '산오리'와아 '감비'였다.
드디어 이 두 사람의 출판기념회가 지난 6월 26일 강서양천 '민중의 집'에서 열렸다. "꼭, 갈게요"라는 언질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퇴근 후 부랴부랴 달려갔다. 기다리던 날이었으니까. 특히, 이성우 위원장은 종종 페이스북에 그의 심경을 시로 쓰기도 했는데 시를 잘 읽지 않는 나에게도 시를 읽게 하는 재미를 알게 해줬다.
▲ 이성우 시인출판기념회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문세경
약대를 나와 대학원에 다닐 때 서울적십자병원에서 1년 반쯤 근무하고 신약 개발하겠다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들어간 이성우씨는 정작 연구원 노릇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로지 돈 되는 연구만 하라는 정부 정책에 발끈하여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삶이 시가 되게 하라>라는 표제작으로 출간된 그의 첫 번째 시집에는 평등하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보려다 먼저 저세상으로 간 열사들을 추모하는 시가 여러 편 있다.
고교 시절, 혼자 자취를 하며 한여름엔 석유곤로, 겨울에는 연탄아궁이에서 밥을 지으며 그 옆에서 쪼그려 앉아 책을 읽었다고 한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부뚜막에서는 문제 풀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거기서 '시'를 만났다고 한다. 시집 맨 마지막에 쓴 <시와 나>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적에 대한 남들의 관심 말고는 변화 없는 자취생의 일상으로 시가 야금야금 파고들었다, 시는 사랑이었고 시는 죽음이었고 시는 구원이었다"라고.
저자는 4.19와 5.18을 겪으면서 비로소 교과서 밖의 시들을 만났다고 한다. <아직도 니네 나라에서는>이라는 시에서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직도 니네 나라에서는
아직도 니네 나라
검찰은
사람을 때려죽인다지.
아직도 니네 나라
경찰은
모든 국민을 적군으로 여긴다지.
천하무적 상권불패!
아직도 니네 나라
국회라는 것이
조폭보다도 더 나와바리에 미쳐 날뛴다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직도 니네 나라
백성들은
그런 놈들한테 날마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숨이 붙어 있기는 하다지.
그래, 이놈아.
서른 창창한 나이에 근골격계 시름으로 자살하고
환갑 넘은 노점상 형님이 단속에 노하여 분신하고
농민 할배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농약을 마시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 년에 3,000명 노동자가 산재로 죽어가는 나라에서
절통하고 분통하여
우리가 어째 쉬 죽을 수 있겠느냐.
감옥에 끌려간들 대수랴.
방패에 찍히는 것이 아프랴.
수십 바늘 꿰맨다고 흔적이나 남으랴.
더 밀릴 곳도 없는 벼랑 끝에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간다면 어디로 가겠어?
▲ 곽장영 시인출판 기념회때 소감을 말하고 있다. ⓒ 문세경
공대를 나와 27년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다니고 있으면서 홍보 업무가 주 임무였지만 홍보 업무보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더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곽장영씨의 이번 시집은 <가끔은 물어본다>라는 표지 제목으로 출간됐다.
언제나 복잡한 건 딱 질색이라면서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그의 시를 읽어보니 삶에서는 단순함을 읊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걸 <상처가 삶이다>라는 시에서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다.
상처가 삶이다
팔다리 잘라 내고
뿌리까지 토막 쳐 버려져도
나무들은 다시 뿌리를 내리고
삶의 팔다리를 살려 내듯이
가슴을 찢어 할퀴고
심장을 잘라서 난도질하더라도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을 보듬고
또 다른 심장을 만들어 갈 것을
잘려 나간 팔다리를 붙여 주겠다고
몸과 마음을 후벼 판 상처를 힐링해 주겠다고
거짓으로 애쓰는 너희들의 허파나 챙기고'탐욕에 썩어
문드러진 당신들 몸뚱이나 잘라서 버려라
살아 있다는 것은
진한 외로움이 아니다
살이 있다는 것은
어설픈 사랑도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하략)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건강한 두 노동자를 시에 눈뜨게 하고 광풍이 몰아치는 이 세상을 바로 잡고자 투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시인이 되게 했다. 그리고 나처럼 시를 읽지 않는 사람도 시를 읽게 했다. 가뜩이나 가뭄 때문에 시름 깊어가는 땅에 '단비'가 내려준 듯 시원한 시집 두 권을 만났으니 올여름은 좀 덜 덥기를 바라본다.
▲ 두 사람의 시집레디앙 출판사에서 <일하며 부르는 노래> 시리즈로 위 두 사람의 시집을 출간했다. ⓒ 문세경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