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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가 아픈 게 내 탓이래요"

[말없는 약속 20년 27] 말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든다

등록|2015.07.02 11:12 수정|2015.07.02 11:12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만일 어떤 사람이 말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며 온몸도 굴레 씌울 수 있습니다."-야고보 3:2

나는 '아프다', '어렵다', '힘들다', 그리고 '돈 없다'란 말을 못하고 살아오고 있다. 혹시라도 내가 그런 말을 하게 되면 내 스스로 버틸 힘이 약해질까 하는 염려에서다. 아마도 이런 내 심정과 유사한 분들이 계실 것이다. 맡은 책임은 이행해야 하고, 그 이행 과정에서 어렵고 힘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했을 때 그 결과가 차라리 말을 안 하니만 못하다는 생각에서 혼자 끌어안고 살아오는 사람들.

나는 아침에 조깅 대신 산책을 하며 덕이가 조깅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침 공기는 내가 숨 쉴 때마다 마치 온 몸에 세포가 살아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좋다. 산을 끼고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덕이가 조깅을 마치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한다.

덕 : "고모 많이 아파?"
고모 : "지금은 안 아파."
덕 : "고모 많이 아프대."
고모 : "응? 누가 그래?"
덕 : "다~ 그래."
고모 : "다~그래?"
덕 : "응."

풀이 죽은 듯 고개를 숙이는 덕이가 아무래도 주위 사람들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물어본다.

고모 : "혹시 누가 고모 아픈 것이 덕이 돌보다가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니?"
덕 : (기다렸다는 듯이)"응, 많아."
고모 : "에구, 그랬구나,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그런 말을 들을 때 덕이가 괜히 나한테 미안해지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겠는데?"
덕 : "응."
고모 : "혹시 나한테 미안하고 그런 거야?"
덕 : (말이 없다)

그래서 그랬었구나. 그렇지 않아도 요즘 덕이가 잠을 푹 잘자지 못하고 뭔가 시무룩해있고 내 눈치를 자주 살피는 것을 느끼곤 하였다. 물어보려다가 아마도 내가 아프니까 걱정되어서 그러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내가 옆에 있는데 덕이에게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모가 조카를 키운다고 주위 사람들은 쉽게 덕이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너 고모한테 잘해!"

좋은 말도 한두 번이라고 했던가.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되는 덕이로서는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고모가 너를 돌보느라 아프다"라는 말은 쉽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남들은 관심을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지 그런 말들을 한다. 사실 이런 말들은 안 하니만 못한 말들인데...

덕이는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이다. 덕이가 점점 숫자 개념을 이해하고 자기가 필요한 만화책, 아이스크림, 과자, 학교에서 필요한 얼마, 장남감을 사려면 얼마가 필요한지도 잘 아는 정도가 되었다. 장난감 중에 조립하는 자동차(고등학교 때까지 이런 장난감을 좋아했다)를 사고 싶었던지 소파에 잠시 누워있던 나에게 말했다.

덕 : "고모 3천 원 주세요."
고모 : "응, 그러렴. 식탁 위에 내 지갑에서 꺼내가렴."

가끔 덕이에게 직접 내 지갑에서 꺼내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식탁 앞에서 내 지갑을 열어보더니 꺼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고모 : "덕아, 왜 그래~ 3천 원 가지고 가렴."
덕 : "고모 지갑에 3천 원 있어."
고모 : "가지고 가."
덕 : "고모도 써야하잖아~~"

그러면서 천 원을 남겨두고 2천 원을 꺼내갔다. 중2 때부터 그랬다.

고모 : "덕아, 고모는 괜찮으니까 3천 원 다 가지고 가도 돼."

이렇게 말해도 다 가져가지 않고 늘 지갑에 얼마를 남겨두었다. 이런 덕이의 마음 씀씀이와 태도는 나를 감동하게 했다. 

하물며 아프다는 덕이도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필요에 관심을 보이며 말을 하는데, 겉은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로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면 과연 누가 더 건강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말은 우리에게 좋게든 나쁘게든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잘 가려서 하면 좋겠다. 때로는 말로 하지 않더라도 친절한 태도만으로도 사람은 감동받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친절은 귀 먼 사람이 들을 수 있고 눈 먼 사람이 볼 수 있는 언어"라는 말이 있나보다.

고모 : "덕아~ 나라면 '고모가 덕이 때문에 아프다'느니, '고모한테 잘해라'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무겁고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덕이는 어떠니?"
덕 : "싫어."(기운없이 말한다)
고모 : "나도 그런 말 싫을 것 같아."
덕 : "응, 싫어."
고모 : "앞으로 그런 말을 듣게 되면 덕이는 어떻게 할거야?"
덕 : "몰라."
고모 : "고모라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야기 해줄까?"
덕 : "응."
고모 : "누가 덕이에게 '고모한테 잘해라'라고 하면 덕이가 이렇게 말하면 좋을 것 같아. '고모는 건강하고 행복할 거예요'라고. 사실은 그분들도 고모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서 그런 말을 할 거니까~ 한번 고모 따라서 말해볼래? '고모는 건강하고 행복할 거예요'."
덕 : "고모는 건강하고 행복할 거예요."

우선은 나와 덕이만이라도 혀를 제어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중하는 태도를 나타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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