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태뢰의 소가 되게 할 순 없지 않은가?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41] 牛
▲ 牛소 우(牛)는 정면에서 바라본 소머리의 모습이다. 갑골문에서 가운데 획은 머리, 양옆은 뿔이고, 아래는 귀를 형상화한 것이다. ⓒ 漢典
고대로 집에서 기르던 대표적인 가축인 육축(六畜)은 소, 말, 돼지, 양, 개, 닭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소는 말과 함께 가장 크고 귀하게 여기던 가축이었다. 그래서 소는 고대부터 제사에 쓰이는 대표적인 제수였다. 신에게 소를 바쳐 소원을 빈다는 의미의 고(告)나 희생(犧牲)이라는 단어에 모두 소 우(牛)가 들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고대 제후들이 맹약을 맺을 때 소의 귀를 잘라 주판 위에 올리고 맹주가 동맹국의 군주들에게 그 피를 입에 칠하도록 했는데(執牛耳), 이는 소가 인간과 신, 사람과 사람간의 긴밀한 관계를 맺는 중요한 매개체였음을 알 수 있다.
제례에 쓸 가축을 기르는 우리인 '뢰(牢)'자에도 역시 소가 들어 있다. 황제의 제례를 태뢰(太牢)라 하는데, 소, 양, 돼지의 세 가지 희생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큰 우리의 가축이 필요해 생긴 이름이다. 제후의 제례에는 양과 돼지만 희생으로 바쳐지기 때문에 작은 우리, 즉 소뢰(小牢)라 한다.
태뢰에서 길러지는 소는 골격이 장대하고 뿔이 곧고 털은 단색으로 고와야 한다. 그리고 콩과 풀을 섞여 먹이고 제사를 앞두고는 비단까지 몸에 두른다. 호사를 누리던 태뢰의 소는 백정의 도끼가 정수리에 떨어져야 비로소 슬퍼 운다. 태뢰의 소는 위험이 닥치는 줄 모르고 희희낙락하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려서야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는 어리석음을 일컬을 때 쓰인다.
소 우(牛, niú)는 정면에서 바라본 소머리의 모습이다. 갑골문에서 가운데 획은 머리, 양옆은 뿔이고, 아래는 귀를 형상화한 것이다. 현대 중국어에서 소의 성질이 반영된 때문인지 고집이 세다, 거만하다, 대단하다 등의 형용사적 의미로도 쓰인다. 재건축 공사장에서 끝까지 저항하며 홀로 절벽에 남은 집이 중국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데 사진의 제목이 한결같이 '牛'이다. 고집스러움을 나타낸다.
중국 지식인 중에 가장 '牛한' 사람으로 루쉰을 꼽는다. 루쉰은 <자소(自嘲)>라는 산문집에서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매서운 눈초리로 대하겠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머리 숙여 기꺼이 소가 되겠다(横眉冷对千夫指,俯首甘为孺子牛)"고 말하고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食人) 전통에 끊임없이 수술의 칼날을 들이댔던 루쉰은 죽기 직전까지도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테니, 누구도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렇게 꼬장꼬장하고 황소고집의 루쉰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럽다. 그것은 그의 문학의 지향점이 중국의 민족혼을 일깨워 더 나은 미래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겠다는 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의 아이들을 태뢰의 소가 되도록 할 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늙은 소가 송아지를 혀로 핥는 것(老牛舐犢)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처럼 루쉰은 봉건적 전통을 깨뜨리는 것으로 중국의 미래 세대를 감싸 안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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