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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시궁창인데, 나보고 자꾸 멋있대요"

[젊은 예술가의 눈물⑤] 비전공자 연극배우와의 인터뷰

등록|2015.07.13 16:44 수정|2015.07.13 17:23
누구나 예술을 한다. 이 말이 당연시되기 전엔 예술을 만드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은 명확히 달랐다. 예술은 예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하던 것이었다. 아무나 못하는 예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제도권 예술 교육 바깥의 사람들(아래 비전공자 예술가)도 예술가로 인정받는다. 특히나 젊은 예술가들 중 비전공자 예술가들은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그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젊은 비전공자 예술가들의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는지 관심 갖지 않는다. 막연하게 힘들겠다고는 생각하지만 무엇 때문에 힘든지, 어떤 게 어려운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예술가라서가 아니라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젊은' 예술가라서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 보스턴 대학을 자퇴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평소 하고 싶던 연극을 하고 있는 정훈탁(가명)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도권 바깥의 젊은 예술가들이 겪는 고민의 결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었다.

"힘들다고 말하기 힘들어요... 배부른 소리한다고 할까봐"

▲ 루브르에서 그림을 그리는 비전공자 화가 ⓒ 이지원


- 어떻게 뒤늦게나마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원래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다 했었는데, 다들 그런 거 있잖아요. 부모님이 '좋은 대학가면 너 하고 싶은 대로 내비둬줄게.' 그 말만 믿고 그냥 시키는 대로 살아온 거죠. 근데 막상 고등학교를 나오니까 뭘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죠.

저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게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대충 점수 맞춰서 대학을 들어가는 거고. 근데 대학생이 돼서 머리가 좀 커지니까 그때부터 자각하고 깨고 나가는 거죠. 그래서 저 같은 비전공자들이 뒤늦게 예술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서글픈 얘기죠 사실."

- 처음 연기를 시작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처음에 어려웠던 건 정보를 찾는 거였어요. 아무래도 연기를 전부터 배워온 사람들은 전문적인 교수님에게 배우고, 건너 건너 소개받을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같은 학생들끼리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기회도 많잖아요. 그에 비해서 저는 연극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조차 잘 몰랐어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뭘 해야 되는지. 극단에 들어가야 하는지, 오디션을 봐야하는지, 오디션 본다고 해도 자유연기가 뭐고 뭘 준비해 가야 되는지도 몰랐죠.

지금은 흘러 흘러서 극단에 오게 된 건데, 처음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특히 제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기가 어려워요.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 친구들은 커리큘럼에 맞게 차근차근 배워가지만, 비전공자는 그러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지금 맞게 하고 있는 건지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거 같아요.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까."

- 시작이 늦어 좀 더 힘든 점이 있나요?
"시간적으로 힘들기도 해요. 비전공자들은 전공자들이 전문적인 예술 교육을 받는 동안 다른 걸 공부한 거잖아요. 시간도 돈도 노력도 2배가 드는 거죠. 전공자들과 비슷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선 짧은 시간동안 그만큼 더 노력을 해야 해요. 저 같은 경우도 맨날 밤에 극단 사무실에서 자주 자요. 그냥 할 거 없으면 거기서 대본 읽고 있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못 쫓아가요. 더 많은 시간, 노력 그리고 체력이 필요한 거죠. 이런 게 전공자들보다 좀 더 힘들죠."

- 예술 활동을 하면서 비전공자라서 어려운 게 있나요?
"사실 가장 힘든 건 돈이에요. 이건 전공자, 비전공자 상관없이 예술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예술로 버는 돈은 대부분 불규칙적이고,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먹고살기 빠듯한 경우가 많거든요. 어떤 공연은 한 달에 5만 원, 어떤 공연은 보름해서 30만 원 뭐 이런 식이죠. 편차가 되게 심해요.

그래서 예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티칭(teaching)으로 돈을 벌어요. 커리어가 될 만한 게 아니긴 한데, 전공을 살려서 돈을 버는 거긴 하니까. 특히나 경력이 많이 없는 젊은 예술가들은 이렇게들 많이 먹고 살아요. 근데 비전공자들은 아무래도 이런 티칭 기회도 얻기 쉽지 않죠. 그쪽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니까 뭐 공식적으로 내가 이걸 가르칠 수 있다고 증명할 게 없잖아요. 아무래도 꺼려할 수밖에 없겠죠. 마냥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니 젊고 경력 없는 사람이라도 상관없겠지'라고 생각하긴 쉽지 않을 거예요, 사실."

- 주위에선 뭐라 그래요?
"친구들 입장에서는 꿈을 위해서 이렇게 좇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대요. 아, 참 듣기 싫은 말이에요, 멋있다는 말. 현실은 시궁창인데 나보고 자꾸 멋있대요. 들으면 좋긴 한데, 현실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잖아요. 본인들은 못 하니까 자꾸 그렇게 말하는 거겠죠. 안정적인 길을 버리고 바닥부터 새로 시작하는 게 엄두가 안 나니까.

또 조금 나이 있으신 분들은 '네가 선택한 길이니 그 정도 고생은 이겨낼 수 있어야지'라는 식으로 말씀하시기도 해요. 근데 우리가 고생하려고 예술하는 건 아니잖아요? 좋으니까 하고 싶은 것 뿐인데 그런 식의 인식 때문에 어디 가서 '힘들다'라고 말하기 힘들어요. 배부른 소리한다고 할까봐."

뒤늦게 자신의 길을 찾아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비전공자 예술가들은 입 모아 말한다. 진로를 탐색해야 하는 시기에 '좋은 대학교만 가면 뭐든 다 할 수 있어' 하며 무조건 명문대 입학만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들은 꿈조차 없는 세대라 질책한다. 그러나 마냥 꿈을 위해 살아가기에는 현실이 탐탁치 못하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한 돈이 또 다시 필요하고, 늦은 시작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꿈을 따라 살기 쉽지 않다. 정보가 없기 때문에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어 더욱 힘들다.

연극계는 그나마 젊은 비전공자 예술가들이 겪는 불편이 덜한 장르 중 하나다. 연기를 전공하지 않아도 실력을 인정받은 많은 배우들이 있기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연기를 하는 데 전공이 무엇인지 크게 중요치 않은 것을 안다. 하지만 다른 예술 장르, 특히 대중예술이 아닌 경우에는 젊은 비전공자 예술가들에겐 넘어야 하는 높은 장벽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 사람들에겐 위에서 말한 고통이 더욱 극심할 뿐만 아니라, 비전공자라는 이유만으로 하고 싶은 예술을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기도 한다.

결국 이건 뒤늦게 시작하는 어떤 개인 혼자만의 어려움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다. 모든 걸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늦게나마 꿈을 찾아 나서는 모든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전히 우리는 아무나 꿈을 좇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이지원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청정넷은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열리는 서울청년주간(http://youthweek.kr/)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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