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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서 땅 밟기까지 길기만 했던 5시간30분

최장기 굴뚝농성 벌인 차광호씨 408일만에 내려와... 체포영장 발부

등록|2015.07.08 22:46 수정|2015.07.08 22:46

▲ 8일 오후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안의 45m 굴뚝에서 408일만에 내려온 해고노동자 차광호씨가 부인과 얼싸안고 있다. ⓒ 조정훈


408일간의 굴뚝농성을 마친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가 8일 오후 당초 내려오기로 한 시간보다 5시간 30분이나 지난 오후 7시 30분 대형 크레인을 타고 내려왔다. 하지만 밑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에게 5시간 30분은 408일 만큼이나 긴 시간이었다.

가랑비가 내리는 오후 차광호씨의 부인 이현실(44)씨와 아버지 차창수(78), 어머니 오정자(74)씨는 서로 손을 잡은 채 스타케미칼 정문 앞에서 굳게 닫힌 출입문을 주시하며 내려올 시간만 기다렸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과 시민단체, 구미지역 노동자 등 600여 명은 차광호씨가 무사히 내려오도록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려오지 못하자 경찰을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와 금속노조는 차씨가 내려올 경우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응급차를 이용해 노조가 지정한 병원으로 옮겼다가 경찰에 출두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찰이 마련한 크레인 대신 노조가 마련한 크레인을 타고 내려와 노조원들과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이 이를 거부하면서 내려오지 못했다.

결국 노조가 마련한 대형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는 대신 가족들과 잠시 만난 뒤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것으로 합의한 뒤에야 내려올 수 있었다. 75m짜리 대형 크레인은 전규석 금속노조위원장과 성정미 헤아림숲치유센터 대표를 태우고 올라갔고 차씨는 크레인이 올라간 뒤 30여 분이 지나서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차씨는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기 전 자신을 지지해준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향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고 굴뚝위로 올라갔었다"며 "마지막 내려갈 때까지도 자본의 하수인들이 동지들을 가로막고 멀리서만 보도록 했다"고 격분했다.

차씨는 자신이 고공농성을 벌이면서 힘든 시간이 많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차씨는 "농성에 들어간 지 한달째 됐을 때 장모님이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 3월 자신의 부모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고민이 되었다고 말했다.

▲ 구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의 아버지 차창수(78)씨가 408일동안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오는 아들을 지켜보다 초조한 듯 연신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다. ⓒ 조정훈


▲ 8일 오후 스타케미칼 공장에서 408일동안고공농성을 벌이던 차광호씨가 내려오기로 하자 부인과 어머니가 차씨가 있는 굴뚝을 바라보고 있다. ⓒ 조정훈


▲ 차광호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부인이 서로 손을 잡고 408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오는 구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를 기다리고 있다. ⓒ 조정훈


차씨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버지 차창수씨는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차씨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픈 나날들이었다"며 "개인 이득을 보려고 올라간 것도 아니라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처벌을 받을게 있으면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오랫동안 고공농성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쳤을 것"이라며 "다만 1주일이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배려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어머니 오정자씨는 "나는 집에서 따뜻한 밥 먹었지만 아들이 걱정할까봐 별로 전화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씨는 이어 "차광호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을만큼 감사하다"며 "앞으로 그 분들에게 보답하면서 살도록 하겠다"고 감사해했다.

차씨가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어머니와 부인은 손을 흔들고 빨리 내려오라는 손짓을 하기도 했다. 차씨는 크레인에서 내리기 전 잠시 울먹이다 내리자마자 어머니를 힘껏 끌어안았다. 이어 부인을 끌어안고 아버지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 8일 오후 408일동안 고공농성을 벌여온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를 내리기 위해 75m 대형크레인이 굴뚝 위로 올라가 있다. ⓒ 조정훈


▲ 408일동안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의 45m 굴뚝에서 농성을 벌이다 사측과 합의하고 8일 오후 대형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던 차광호씨와 전규석 금속노조위원장이 팔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조정훈


차씨가 가족들과의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경찰은 차씨에게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며 업무방해와 건조물 침입죄 등을 들어 영장을 집행했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 법률원 소속 김유정 변호사가 직접 영장을 확인하겠다며 고함을 지르다 경찰에 제지당했다.

차씨는 경찰이 마련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 건강을 체크한 뒤 구속될 예정이다. 차씨를 태운 구급차가 공장 밖으로 나가자 차씨의 부모와 부인은 허탈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한편 차광호씨는 스타플렉스의 자회사인 스타케미칼이 지난해 폐업을 하고 매각 절차에 들어가자 5월 27일 45m의 굴뚝에 올라가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왔다. 이후 여러차례의 협상을 거쳐 지난 6일 해고자 11명 전원 고용 등에 합의했다.

합의안의 내용은 스타케미칼 모회사인 스타플렉스에서 신규법인을 설립해 아산지역에 공장을 지어 전원 고용을 보장하고 11월 말까지 공장과 기계 도입을 완료한 후 내년 1월부터 정상 가동하기로 했다. 또한 회사와 해고노동자들과의 민형사상 소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하고 8일 오후 굴뚝에서 내려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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