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나무에는 유자꽃이 하얗게 핍니다. 작고 하얀 유자꽃이 지면 굵고 누르스름한 유자알이 천천히 맺힙니다. 모과나무에는 모과꽃이 발그스름하게 핍니다. 작고 발그스름한 모과꽃이 지면 굵고 단단하며 푸르스름한 모과알이 천천히 맺습니다.
먼저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먼저 곱게 피어 맑은 내음을 두루 나누어 주고 나서야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없는 열매는 없습니다.
포도나무에는 포도꽃이 피고, 귤나무에는 귤꽃이 핍니다. 감나무에는 감꽃이 피고, 배나무에는 배꽃이 핍니다. 앵두알처럼 작은 열매는 꽃이 진 뒤 한 달쯤 뒤면 무르익고, 모과나 감처럼 굵은 열매는 꽃이 진 뒤 서너 달이 흘러야 비로소 무르익습니다.
집집마다 나무를 손수 심어서 기르고 돌보던 지난날에는 꽃하고 열매를 누구나 알았을 텐데, 나무를 심을 만한 마당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에는 꽃하고 열매를 함께 헤아리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이 험한 자연을 뚫고 철도를 놓겠다는 비전은 얼마나 대담한가. 그리고 위정자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 노동자들, 특히 19세기 말 스위스의 부족한 건설 노동력을 메우며 각 터널과 철도 공사장에서 맹활약한 이탈리아 이주노동자들의 고생이란 얼마나 극심했으며,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랐을까. (23쪽)
최악의 경우 나치독일이 스위스를 강점하고 미그로의 재산을 몰수하게 되면, 자기 한 사람이 소유한 재산보다는 수십만 조합원이 조금씩 나눠 가진 재산을 빼앗기가 훨씬 더 어려우리라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바꿔 말해 미그로의 조합 전환은 나치독일의 스위스 위협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창립자가 고안해낸 업체 생존전략이었다. (64쪽)
노시내 님이 쓴 <스위스 방명록>(마티,2015)을 읽습니다. '방명록'은 어느 곳을 찾아가거나 어떤 일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려고 이름을 남기는 꾸러미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스위스 방명록"이라고 한다면, 스위스라고 하는 나라에서 눈부시게 꽃을 피웠다고 할 만한 사람들을 다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라는 나라에서 삶을 눈부시게 꽃피운 사람들이 남긴 열매를 오늘날에 이르러 두루 누리는 이야기를 함께 헤아리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베른 주민들이 내는 지방세가 파울 클레 센터를 지탱하고 있었던 거다. 관광객 유치도 중요하지만, 지역민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오고 시설을 애용하는 것이 재정 문제 해결의 열쇠인데 많은 이들이 파울 클레 센터를 '클레'라는 한 가지 테마만 취급하는 곳, 따라서 한 번 가 봤으면 그만인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97쪽)
긴 세월 내내 헤세는 문제의 1914년 호소문에서 스스로 역설한 것처럼 어느 한 이념이나 사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판단을 흐리는 일을 경계했으며, 그래서 때때로 양편의 비판을 한꺼번에 받는 일을 초래하면서도 지식인의 중립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126쪽)
노시내 님이 <스위스 방명록>이라는 책에서 다루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사람은 '스위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습니다. 스위스를 삶터나 일터나 사랑터나 꿈터로 삼은 사람들 이야기를 담습니다.
'고향'은 대수로울 수 있으나 안 대수로울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기에 서울을 잘 알거나 사랑하지 않고, 서울에서 안 태어났기에 서울을 잘 모르거나 안 사랑하지 않습니다. 스위스에서 나고 자랐어도 다른 나라로 가서 삶을 꽃피울 수 있고, 러시아나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랐어도 스위스로 가서 삶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삶을 꽃피우든 다 아름답습니다. 삶을 꽃피우려고 온힘을 쏟아서 하루하루 기쁘게 땀흘리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니체, 두트바일러, 슈타이너, 클레, 헤세, 뷔히너, 레닌, 에밀리, 슈피리, 바그너 같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눈길과 눈빛으로 스위스를 사랑하거나 아끼면서 이녁 꿈을 펼칩니다. 눈부신 멧자락과 들을 보면서 꿈을 펼치기도 하고, 갑갑하거나 답답한 굴레를 깨려고 용쓰면서 꿈을 짓기도 합니다.
피곤함은커녕 머리가 맑고 기운이 났다. 목에 걸고 다닐 증명서 따위는 필요없었다. 산을 걷는 동안 망막에 박혀 그날 밤 꿈에서 또렷이 재현된 웅장한 경치, 그리고 옅은 대기가 자극하던 강렬한 오감의 기억은 "내가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 나와 함께 땅에 묻힐" 터다. (184쪽)
뷔히너가 이장될 당시 무렵 바로 뒤에 보리수가 한 그루 있었다. 150살을 훌쩍 넘긴 탐스러운 이 나무는 안타깝게도 2012년 폭풍에 꺾여 넘어졌다. 취리히 시는 2013년 뷔히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일 아침 같은 자리에 어린 보리수를 심었다. (223∼224쪽)
감 한 알을 얻기까지 숱한 풋감이 떨어집니다. 풋감으로 굵기 앞서 숱한 감꽃이 떨어집니다. 매화나무도 매화알(매실)을 맺기까지 숱한 매화꽃을 떨구고, 조그마한 풋알을 수없이 떨굽니다. 때로는 가지가 꺾이거나 부러집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 가지가 꺾이고, 거위벌레가 잎을 갉아먹다가 가지가 잘려서 툭 떨어집니다. 나비나 나방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다가 가지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하늘소가 나무 속을 파고들면서 나무가 힘을 잃기도 하고, 외려 더 힘을 내기도 합니다.
가게에서 열매만 사다가 먹을 적에는 열매 맛만 알 수 있습니다. 열매 한 알을 얻기까지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알뜰히 열매 한 알을 나뭇가지에 붙잡고서 돌보았는가 하는 대목을 알기 어렵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 적에도 열매를 떨구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무입니다. 햇볕이 내리쬘 적에 햇볕을 듬뿍 먹고, 멧새가 찾아와서 노래할 적에 멧새 노랫소리를 고요히 듣는 나무입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듣고, 어른들이 농약을 치는 냄새를 맡는 나무입니다.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짙푸른 들을 아우르는 나무입니다.
열매 한 알에는 나무 한 그루가 살아온 숨결이 깃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위스라는 나라에서 저마다 꽃피우면서 아름답게 열매를 맺은 사람들 발자국마다 넓고 깊은 숨결이 깃듭니다. 이런 책이 있고 저런 노래가 있기 앞서, 이런 웃음과 저런 눈물이 있습니다. 이런 기념관과 저런 추모사업으로 기리기 앞서, 이런 땀방울과 저런 주름살이 있습니다.
레닌은 스위스의 꼼꼼하고 정확한 문화를 좋아했다. 특히 어딜 가나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레닌에게 스위스의 도서관이 제공하는 공간과 도서대여 시스템은 편리한 자원이었다. (291쪽)
1971년 2월 7일,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여성참정권을 인정했다 … 더욱 흥미롭고 역설적인 사실은 스위스가 유럽 다른 곳에 비해 여성에게 일찌감치 대학 교육의 문을 연 진취적인 곳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305, 307쪽)
스위스는 어떤 나라일까요? 스위스는 스위스입니다. 페터 빅셀 님이 "스위스인의 스위스"라는 글을 쓰기도 했듯이, 스위스는 스위스입니다. 스위스는 러시아가 아니고, 스위스는 이탈리아가 아니며, 스위스는 프랑스가 아닙니다. 러시아도 스위스가 아닌 러시아이며, 이탈리아도 스위스가 아닌 이탈리아요, 프랑스도 스위스가 아닌 프랑스입니다.
그러나 모든 스위스사람이 똑같지 않습니다. 모든 스위스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똑같지요. 모두 밥을 먹고, 누구나 똥을 눕니다. 모두 숨을 쉬고, 누구나 잠을 잡니다. 그러니 시골에서 흙을 부치는 사람이 어느 나라에나 똑같이 있어야 합니다. 시골 일꾼이 많다고 해서 '전원국가'나 '농업국가'이지 않습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과학이나 이런저런 것이 발돋움했다고 해서 시골일을 안 해도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골이 없이는 삶을 버틸 수 없습니다.
<스위스 방명록>이라는 책에서 첫머리부터 다루는 '철도 노동자'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깎아지를 듯이 가파른 멧자락 사이에 다리를 놓고 기나긴 구멍을 뚫어서 철길을 놓은 노동자가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스위스는 없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1971년에 이르러서야 여성참정권을 받아들인 스위스라는데, 스위스에서도 집일이나 밥짓기는 여성이 으레 도맡았을 테지요. 역사책이나 문학책에 이름 한 줄 안 실릴 터이나, 집에서 빵을 굽고 옷을 빨며 아이를 돌보던 수많은 어머니(여성)가 없이는 어떤 문화도 정치도 경제도 예술도 꽃피울 수 없습니다.
19세기 후반의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상대적으로 아직 가난한 편에 속했고 산업화와 근대화에 집중하던 스위스 엘리트들은 전근대적이고 촌스러운 '전원국가'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던 중이었으니 기존의 인상을 강화하는 작품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390쪽)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명록'이 있는 줄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면서 우쭐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명록'은 거들떠보지 않고 제 한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갖 사람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고장을 이루며, 나라를 이룹니다. 수많은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림을 북돋우고, 사랑을 살찌우며, 꿈을 펼칩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스위스에서 꿈을 꽃피웠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모레도 스위스에서 꿈을 꽃피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작은 나라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꽃피울 만할까요. 이 작은 나라는 꿈을 꽃피울 만큼 아름다운 나라일까요, 아니면 이 작은 나라는 꿈을 꽃피우기에 너무 작거나 갑갑한 터전일까요. 아름다운 나라이든 갑갑한 터전이든, 가슴속에 꿈씨를 한 톨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먼저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먼저 곱게 피어 맑은 내음을 두루 나누어 주고 나서야 열매를 맺습니다. 꽃이 없는 열매는 없습니다.
▲ 겉그림 ⓒ 마티
집집마다 나무를 손수 심어서 기르고 돌보던 지난날에는 꽃하고 열매를 누구나 알았을 텐데, 나무를 심을 만한 마당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에는 꽃하고 열매를 함께 헤아리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이 험한 자연을 뚫고 철도를 놓겠다는 비전은 얼마나 대담한가. 그리고 위정자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 노동자들, 특히 19세기 말 스위스의 부족한 건설 노동력을 메우며 각 터널과 철도 공사장에서 맹활약한 이탈리아 이주노동자들의 고생이란 얼마나 극심했으며,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랐을까. (23쪽)
최악의 경우 나치독일이 스위스를 강점하고 미그로의 재산을 몰수하게 되면, 자기 한 사람이 소유한 재산보다는 수십만 조합원이 조금씩 나눠 가진 재산을 빼앗기가 훨씬 더 어려우리라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바꿔 말해 미그로의 조합 전환은 나치독일의 스위스 위협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창립자가 고안해낸 업체 생존전략이었다. (64쪽)
노시내 님이 쓴 <스위스 방명록>(마티,2015)을 읽습니다. '방명록'은 어느 곳을 찾아가거나 어떤 일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려고 이름을 남기는 꾸러미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스위스 방명록"이라고 한다면, 스위스라고 하는 나라에서 눈부시게 꽃을 피웠다고 할 만한 사람들을 다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라는 나라에서 삶을 눈부시게 꽃피운 사람들이 남긴 열매를 오늘날에 이르러 두루 누리는 이야기를 함께 헤아리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 수많은 '이주노동' 철도 노동자 피땀으로 선 철길 가운데 하나. ⓒ 노시내/마티
긴 세월 내내 헤세는 문제의 1914년 호소문에서 스스로 역설한 것처럼 어느 한 이념이나 사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판단을 흐리는 일을 경계했으며, 그래서 때때로 양편의 비판을 한꺼번에 받는 일을 초래하면서도 지식인의 중립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126쪽)
노시내 님이 <스위스 방명록>이라는 책에서 다루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사람은 '스위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습니다. 스위스를 삶터나 일터나 사랑터나 꿈터로 삼은 사람들 이야기를 담습니다.
'고향'은 대수로울 수 있으나 안 대수로울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기에 서울을 잘 알거나 사랑하지 않고, 서울에서 안 태어났기에 서울을 잘 모르거나 안 사랑하지 않습니다. 스위스에서 나고 자랐어도 다른 나라로 가서 삶을 꽃피울 수 있고, 러시아나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랐어도 스위스로 가서 삶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삶을 꽃피우든 다 아름답습니다. 삶을 꽃피우려고 온힘을 쏟아서 하루하루 기쁘게 땀흘리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니체, 두트바일러, 슈타이너, 클레, 헤세, 뷔히너, 레닌, 에밀리, 슈피리, 바그너 같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눈길과 눈빛으로 스위스를 사랑하거나 아끼면서 이녁 꿈을 펼칩니다. 눈부신 멧자락과 들을 보면서 꿈을 펼치기도 하고, 갑갑하거나 답답한 굴레를 깨려고 용쓰면서 꿈을 짓기도 합니다.
▲ 파울 클레 무덤에 놓인 빗돌. ⓒ 노시내/마티
뷔히너가 이장될 당시 무렵 바로 뒤에 보리수가 한 그루 있었다. 150살을 훌쩍 넘긴 탐스러운 이 나무는 안타깝게도 2012년 폭풍에 꺾여 넘어졌다. 취리히 시는 2013년 뷔히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일 아침 같은 자리에 어린 보리수를 심었다. (223∼224쪽)
감 한 알을 얻기까지 숱한 풋감이 떨어집니다. 풋감으로 굵기 앞서 숱한 감꽃이 떨어집니다. 매화나무도 매화알(매실)을 맺기까지 숱한 매화꽃을 떨구고, 조그마한 풋알을 수없이 떨굽니다. 때로는 가지가 꺾이거나 부러집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 가지가 꺾이고, 거위벌레가 잎을 갉아먹다가 가지가 잘려서 툭 떨어집니다. 나비나 나방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다가 가지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하늘소가 나무 속을 파고들면서 나무가 힘을 잃기도 하고, 외려 더 힘을 내기도 합니다.
가게에서 열매만 사다가 먹을 적에는 열매 맛만 알 수 있습니다. 열매 한 알을 얻기까지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알뜰히 열매 한 알을 나뭇가지에 붙잡고서 돌보았는가 하는 대목을 알기 어렵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 적에도 열매를 떨구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무입니다. 햇볕이 내리쬘 적에 햇볕을 듬뿍 먹고, 멧새가 찾아와서 노래할 적에 멧새 노랫소리를 고요히 듣는 나무입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듣고, 어른들이 농약을 치는 냄새를 맡는 나무입니다.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짙푸른 들을 아우르는 나무입니다.
열매 한 알에는 나무 한 그루가 살아온 숨결이 깃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위스라는 나라에서 저마다 꽃피우면서 아름답게 열매를 맺은 사람들 발자국마다 넓고 깊은 숨결이 깃듭니다. 이런 책이 있고 저런 노래가 있기 앞서, 이런 웃음과 저런 눈물이 있습니다. 이런 기념관과 저런 추모사업으로 기리기 앞서, 이런 땀방울과 저런 주름살이 있습니다.
▲ 스위스에서 니체가 지냈다고 하는 방 ⓒ 노시내/마티
1971년 2월 7일,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여성참정권을 인정했다 … 더욱 흥미롭고 역설적인 사실은 스위스가 유럽 다른 곳에 비해 여성에게 일찌감치 대학 교육의 문을 연 진취적인 곳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305, 307쪽)
스위스는 어떤 나라일까요? 스위스는 스위스입니다. 페터 빅셀 님이 "스위스인의 스위스"라는 글을 쓰기도 했듯이, 스위스는 스위스입니다. 스위스는 러시아가 아니고, 스위스는 이탈리아가 아니며, 스위스는 프랑스가 아닙니다. 러시아도 스위스가 아닌 러시아이며, 이탈리아도 스위스가 아닌 이탈리아요, 프랑스도 스위스가 아닌 프랑스입니다.
그러나 모든 스위스사람이 똑같지 않습니다. 모든 스위스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똑같지요. 모두 밥을 먹고, 누구나 똥을 눕니다. 모두 숨을 쉬고, 누구나 잠을 잡니다. 그러니 시골에서 흙을 부치는 사람이 어느 나라에나 똑같이 있어야 합니다. 시골 일꾼이 많다고 해서 '전원국가'나 '농업국가'이지 않습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과학이나 이런저런 것이 발돋움했다고 해서 시골일을 안 해도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골이 없이는 삶을 버틸 수 없습니다.
▲ 스위스 첫 여성 법학자이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 에밀리 켐핀 슈피리. 1886년에 스위스 법정에서 "모든 스위스인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말했으나, 판사는 "거기 스위스 여성에 대한 얘기는 없잖습니까?" 하고 대꾸했다고 한다. 1888년에 스위스를 떠나 미국으로 간다. ⓒ 에밀리 켐핀 슈피리
19세기 후반의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상대적으로 아직 가난한 편에 속했고 산업화와 근대화에 집중하던 스위스 엘리트들은 전근대적이고 촌스러운 '전원국가'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던 중이었으니 기존의 인상을 강화하는 작품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390쪽)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명록'이 있는 줄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면서 우쭐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명록'은 거들떠보지 않고 제 한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갖 사람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고장을 이루며, 나라를 이룹니다. 수많은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림을 북돋우고, 사랑을 살찌우며, 꿈을 펼칩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스위스에서 꿈을 꽃피웠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모레도 스위스에서 꿈을 꽃피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작은 나라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꽃피울 만할까요. 이 작은 나라는 꿈을 꽃피울 만큼 아름다운 나라일까요, 아니면 이 작은 나라는 꿈을 꽃피우기에 너무 작거나 갑갑한 터전일까요. 아름다운 나라이든 갑갑한 터전이든, 가슴속에 꿈씨를 한 톨 심을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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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름 : 스위스 방명록
노시내 글·사진
마티 펴냄, 20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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