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울 때, 바로 여기
[포토에세이] 메르스 여진과 폭염으로 한산했던 모란 오일장
▲ 모란 오일장서울 근교에 자리하고 있어 규모 최대의 오일장으로 자리잡은 모란장도 가뭄과 폭염과 메르스 한파를 넘지 못한 듯 한가하다. ⓒ 김민수
무릇 사람 사는 맛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느끼는 법이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고 투박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그곳은 바로 오일장이다. 닷새에 한 번씩 열리는 장이지만,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열리기에 오일장이 열리지 않는 날은 없다.
나는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울 때면 오일장을 찾아간다.
아직 살아나지 않은 지역경제, 오일장에도 여파
▲ 모란 오일장물건을 두고 흥정을 하기도 하고,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들 속에서 사람살이가 느껴진다. ⓒ 김민수
▲ 모란 오일장건어물과 생선을 파는 골목, 오일장에서는 사람 냄새와 더불어 다양한 냄새들이 공존한다. ⓒ 김민수
이번에 찾은 장은 경기도 성남에 있는 모란 오일장(4·9 오일장)이다. 서울 근교에 자리하고 있기에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해도 될 오일장이다.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사람들이 북적이던 곳은 직격탄을 맞았다. 환자가 며칠째 발생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불안한 모양이다. 전염병에 더해 가뭄과 마른장마가 이어지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민망하고, 그사이 곤두박질친 지역경제는 곧바로 오일장에 영향을 끼쳤다.
최근에 다녀온 괴산 오일장, 용문 오일장뿐 아니라 14일에 찾은 모란 오일장도 예전에 비하면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메르스 공포도 조금은 사라졌고, 긴 가뭄 끝에 비도 내렸고, 태풍의 영향으로 제법 바람도 선선하건만 장을 찾은 이들은 이전만 못해 보였다.
▲ 모란 오일장오일장에 정식으로 좌판을 펼치지 못한 이들이지만, 오일장다운 모습은 이런 모습들로 더 오일장다워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김민수
오일장은 장사가 잘 될 때 흥겹다.
상인들도 그곳을 찾은 손님도 장사가 잘 되면 흥겨움에 시장이 흥얼거린다. 기분들이 좋아서 물건값을 물어보고 물건을 사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고, 불쑥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 한 장' 사인을 보내기만 하면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그러나 장사가 되지 않을 때는 흥겨움이 사라지면서 장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장 분위기에 사진을 찍겠다고 들이댔다가는 타박받기에 십상이다. 14일이 딱 그런 날이었다.
좁은 골목에서 간신히 찾은 '북적거림'
▲ 모란 오일장오일장에서는 구제용품들도 좋은 상품이고, 잘 고르면 어디에도 없는 귀한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다. ⓒ 김민수
▲ 모란 오일장각종 전기와 철물등의 구제물품들이 그득하다. 저기에서 필요한 물건을 골라내는 눈썰미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 김민수
그래도 골목에 좌판을 펼친 이들과 좁은 골목이라 이내 사람들이 북적거림이 느껴지는 곳으로부터의 흥겨움이 점점 장으로 퍼져나간다.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에 서면 나는 상인들의 부지런함에 놀라고 투박한 손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들의 곱지 않은 손이 예뻐 보인다. 거친 손만큼 삶의 여정도 만만치 않았을 터이고, 그런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 삶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적인 대화가 오간다.
몇 마디 나누다 보면 '득도를 한 분들이 여기 있구나!' 싶다.
꾸미지 않고, 솔직담백하고, 조금 과장이 들어있어도 전혀 상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구수한 양념 같은 이야기들, 그들은 화술의 달인들이다.
▲ 모란 오일장삶이란 때론 의도하지 않은 바대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것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 김민수
지금은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오래된 물건들인데, 그것이 장에 나오고 용케도 그중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눈썰미를 보면, 상인이나 손님이나 재활용이 대가들이다.
오일장에서는 모든 것을 다 상품으로 내놓고 팔 수 있다.
이미 상품으로서 수명을 다했다고 사형선고를 받은 것들조차도 이곳에서는 당당하게 팔려나간다. 그래서 오일장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 인생의 축소판이기에 사람 사는 냄새도 진하게 나는 것이리라.
이런 모습을 보면 아프다.
지금도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 도대체 육체적인 아픔을 가진 것도 서러운데, 왜 우리는 그 모든 아픔을 개인이 감당해야만 하는가?
향기롭지만은 않은 시장 냄새, 사람을 닮았다
▲ 모란 오일장흔들려버린 삶, 비틀어진 삶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 김민수
▲ 모란 오일장장 한구석에 앉아 쉬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속에서 노년의 삶의 고단함을 보기도 하지만, 우여곡절을 다 겪으면서도 끝내 살아온 삶의 저력도 본다. ⓒ 김민수
괜스레 국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소위 국가의 살림을 맡아 하는 이들은 알뜰살뜰 사용해도 모자랄 판에 가진 자들과 권력을 쥔 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편법을 넘어서 불법적인 행태를 자행한다. 그리하여 국민과 국가 간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려 버렸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육신의 힘만 남아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제 몫을 하려는 것, 그것이 인생다운 인생이고 삶이다. 그래서 때론, 보기 불편하기도 한 아픈 모습이지만 거기에서도 나는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다.
▲ 모란 오일장금강산도 식후경, 서민들이 먹는 음식들을 표시한 광고물이 정겹다. ⓒ 김민수
사람 사는 냄새가 어찌 향기로운 향수 같은 냄새만 나겠는가?
모란시장은 간혹 동물학대적인 측면이 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단고기뿐만 아니라 오리, 닭, 흑염소 등 살아있는 것들을 즉석에서 도축하고 판매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뿜어내는 냄새뿐만 아니라 다양한 냄새들이 뒤엉키면서 때론 역겨운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서 시장이 아닐까?
사람살이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어찌 이 세상 살면서 사람 같은 사람만 만나고 살아갈 수 있으며, 향기로운 사람만 만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런저런 사람 어우러져 살아가니 세상이려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사람 사는 냄새가 왜 좋고, 그리운 것인지 외로워 보면 안다. 사람 사는 냄새를 그리워하는 분들에게 사람 사는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을 추천하라면 나는 '오일장'을 추천하고 싶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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