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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무형문화재 지정, 원칙은 뭔가

"타지서 활동하다 인천서 신청... 지역성·역사성 없어"

등록|2015.07.15 11:18 수정|2015.07.31 11:18
[기사 수정 : 7월 31일 오전 11시 14분]

인천시 무형문화재 지정이 역사성과 지역성이 결여된 채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천시 무형문화재 1호는 '삼현육각(三鉉六角)'으로 1985년 10월 지정됐다. 삼현육각은 조선시대 궁중무용과 행악, 지방관아의 연회, 높은 관리나 귀인의 행차, 향교의 제향이나 각 지방에서 신에게 제사 지낼 때 두루 쓰이던 악기 편성을 뜻한다.

삼현육각 외에 인천시 무형문화재로는 ▲ 단소장 ▲ 인천 근해 갯가노래 뱃노래 ▲ 강화 외포리 곶창굿 ▲ 강화 용두레질 소리 ▲ 인천 수륙재 ▲ 서곳 들노래 ▲ 판소리고법 ▲ 경기12잡가 ▲ 부평두레놀이 등 28개가 지정돼있다.

인천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보유자에게 전승 지원금 월 100만 원이 지원된다. 보유자는 전수 조교와 전수 장학생을 둘 수 있는데 장학금으로 각각 50만 원과 20만 원이 지급된다. 또한 기능 종목 보유자에겐 매달 재료구입비 30만 원도 보조된다.

인천시는 무형문화재 관련 예산을 2010년부터 매해 15억 원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이중 전승 지원금은 약 7억 원을 차지한다.

인천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인천뿐 아니라 전국에서 초청된다. 국가와 지방정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문화인으로 평가되는 만큼, 무형문화재 지정은 문화인들에게 꽤 소중한 기회다.

▲ 판소리 장면. 해당 사진은 이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한만송


'판소리 불모지' 인천에 등장한 소리꾼들

그런데 인천시 무형문화재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인천에 판소리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판소리 불모지와 다름없는 인천에 판소리 명창들이 나타난 것이다.

인천시는 2013년 4월 A씨를 판소리고법(鼓法)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판소리고법은 판소리가 정착한 조선 중기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판소리에 맞춰 고수(鼓手:북치는 사람)가 북으로 장단을 쳐 반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 인천에 판소리 무형문화재가 없는 상황에서 고법 무형문화재를 지정했다는 이유로 당시 논란이 일었다. 앞뒤가 바뀌었다는 평가였다. 이에 대해 "당시 당당히 시험을 통과해서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논란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판소리 명창 몇 사람이 최근 인천시 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 인천시는 지난 6일 '무형문화재 종목 지정 및 보유자 등의 인정 심의 대상'을 공고했다. 이 공고를 보면, 모두 8건의 무형문화재 종목 지정·보유자 등의 인정이 예고됐다. 이중 판소리 관련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자는 3명이었다. 여기다 소도입창·서도소리 등 소리 관련자가 4명이었다.

이번 신청자 중엔 40대 중반의 판소리 명창도 몇 명 있다. 이중 B씨는 인천과 특별한 연고가 없는 사람이다. 전남 담양이 고향인 그는 다섯 살 때부터 판소리 '심청가' '경기민요' '진도아리랑' 등을 따라 부르며 소리를 익히다 광주의 안채봉 명창을 사사하면서 판소리에 입문했다. 안숙선 명창 등 이름난 명창에게 판소리 다섯 바탕(심청가·춘향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을 배웠고 모두 완창을 했다.

C씨도 40대 중반으로 인천과 아무런 연고가 없을 뿐더러, 인천이 주된 활동 무대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몇 년 전까지 서울과 경기에 거주했다. 사무실도 서울 등지에 뒀다.

D씨는 최근 몇 년간 인천에서 활동했지만, 주요 활동 무대는 서울과 부산이었다. 몇 년 전 인천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인천시 무형문화재 지정을 몇 차례 신청했지만 탈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시 무형문화재 지정자 중 한 명은 "며칠 전 서울에 심사하러갔는데, 인천시 무형문화재 지정과 관련해 '원칙도 없고, 지역성과 역사성이 없다'는 쓴 소리가 나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 무형문화재라면 최소한 지역성에 근거한 역사성·대중성을 가져야하는 것 아니냐?"며 "다른 지역에서 무형문화재 지정이 어렵다보니 인천으로 몰려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인천지역 판소리 분야 복수의 관계자는 "인천이 판소리 불모지인 것은 안타깝지만, 이런 식으로 갑자기 인천으로 주소지를 옮겨 신청하는 과정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이들은 "소리꾼의 나이 40대는 소리가 완성됐다기보다 기량을 더욱 갈고 닦아 정진할 때이지, 문화재를 자처할 때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전국적으로 소리 관련 무형문화재는 대부분 고령층이다. 40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무형문화재로 한번 지정되면 죽을 때까지 전승 지원금 등을 지급받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판소리 전수자는 "인천엔 판소리하는 분이 많지 않지만, 우리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을 못하고 있는데, 외지에서 이름 좀 있다는 사람이 와서 신청해 허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형문화재 지정 제도 보완 시급

이에 따라 인천시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 관련 조례를 정비하는 등, 제도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 현행 '본인 신청' 방식이 아니라 '추천' 방식의 도입과 나이나 거주지 규정을 보다 엄격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인천시 관계자는 '지금은 의견수렴(시보 공고) 단계인 만큼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무형문화재 지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무형문화재 지정 시 지역성을 점수 항목에 신규로 넣거나 가점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인천시는 최근 무형문화재 지정 조사 시 개인의 경우 지역성(30점) 점수를 두 배로 늘렸다. 단체의 경우엔 지역성 점수를 신설했다. 여기다 전승 활동 점수도 신규로 넣었다.

한편, 인천시 문화재 담당공무원이 무형문화재 지정 절차를 무시한 채 인증서를 허위로 발급한 것이 지난 3월 적발됐다. 인천시 감사 결과를 보면, 문화재과 6급 공무원 E씨는 2014년 1월 국악인 F씨 등에게 허위로 만든 무형문화재 지정 증서를 전달하는 등, 2013년부터 2년간 네 차례 걸쳐 가짜 무형문화재 인증서 61건을 배부했다.

금품수수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E씨가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자들에게 아무런 근거 없이 편의를 제공했다는 것을 이해하긴 어렵다. 인천시 감사관은 허위로 지정한 무형문화재 61건을 모두 취소 처분하고, 금품수수 여부를 확인해달라며 검찰에 E씨를 고발했다. 허위 인증서를 받은 한 무형문화재 신청자는 축하 현수막을 게시하고 잔치까지 벌였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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