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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고 '공개적 학생 칭찬'을 그만두었다

[서평] 고교 교사가 읽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등록|2015.07.19 09:12 수정|2015.07.21 16:45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에서 일반인 부문 [꿈틀꿈틀상(우수)]을 받은 글입니다. [편집자말]
내가 재직하고 있는 곳은 대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이다. 7월 3일부터 2회고사가 있는 관계로 학생들은 정신없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번 시험 결과가 1학기 내신 등급 산출에 무척 영향이 크게 미치기 때문이다. 4일간 본 시험 결과는 대부분 교실에 과목별로 게시된다. 그러면 학생들은 일일이 나와서 자기의 성적이 제대로 나왔는지 확인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성적을 게시해서 확인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금까지 거의 다 교실에 성적일람표를 갖고 들어가서 학생들을 번호순으로 나오라고 해서 확인하게 했다. 그것은 그동안 여러 번 충격적인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언젠가 교실에 들어갔더니 시험 성적이 있는 일람표가 곳곳에 검정색 사인펜으로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던 것이다. 성적이 매우 낮은 학생들이 자기 성적이 남에게 공개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못 보게 색칠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한 과목만이 아니었다. 여러 과목이 그러했다.

어떤 과목은 평균이 몇 점 미만이면 무조건 일정한 벌을 받는다고 했다. 또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은 담당 교사가 학생을 일으켜 세워서 칭찬을 하며 손뼉을 쳐주라고 했다. 나도 그동안 90점 이상을 받은 학생들은 그런 방법으로 칭찬을 했다. 성적이 낮은 학생은 공개하면 안 되지만 잘하는 학생들은 그들의 노력에 대해 칭찬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성적으로 나눈 교실, "신분 상승" 말하는 학생들

수능시험수능시험을 보고 나오는 학생, 누가 우리 아이들을 저 입시지옥이라는 올가미에 가둬놓는가? ⓒ 김민수


재작년의 일이다. 우리 학교도 다른 학교처럼 정규수업이 끝나고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에 최상위층, 상위층은 각자 따로 학습실을 정해서 하고, 일반 학생들은 교실에서 하고 있다. 어느 날 상위층에서 공부했던 남학생이 성적이 올라가서 최상위층이 하는 학습실로 옮겨가게 되었다.

우연히 복도에서 그를 만났는데 나에게 "선생님, 이번에 제가 최상위층 반으로 이동하게 됐는데 어쩐지 신분이 상승된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신분 상승'이란 낱말이 순간 나의 가슴을 퍽 아프게 만들었다. 그건 학생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 분위기에 그 학생도 젖어서 아무 생각 없이 평범하게 말했던 것이다.

또한 과목 가운데 수학과 영어는 성적에 따라 정규수업을 우수 반, 보통 반으로 나눠서 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얼마나 학습효과를 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수 반 학생들은 공부를 잘한다는 우월감에, 보통 반 학생들은 공부를 못한다는 열등감에 자신도 모르게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으면서 나는 특히 덴마크의 교육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솔직히 처음에는 한숨만 푹푹 나왔다. 그동안 이런 저런 소식과 책을 보고 들으면서 대강은 책 내용을 짐작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면서 이렇게 교육이 180도로 다를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느낌은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사람들 대부분의 느낌일 것이리라.

초등학교 9년 과정 중에서 7학년까지 시험이 없다. 당연히 석차가 없다. 8학년부터 시험을 봐도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성적이 좋다고 특별히 칭찬을 하지 않는다. 학과 우수상을 따로 주지 않는다. 학생들 개개인을 골고루 관찰해서 그들 각자 갖고 있는 특기와 취미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고등학교 입학 전 인생학교를 통해서 자신의 진로를 확실하게 알아본다. 이처럼 도저히 다 나열할 수 없는 덴마크의 교육제도가 한없이 부러웠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덴마크의 이러한 교육제도가 부럽다는 것은 바로 그 나라의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일상적인 삶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에 든 느낌이었다. 이 책의 글쓴이도 수없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나라의 다양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지금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불행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오히려 불행한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고개를 안으로 돌려봤다. 학생들을 봤다. 동료 교사들을 봤다. 그리고 학부모들도 봤다. 오지선다형 문제에 익숙한 교사와 학생들, 성적 1점에 아등바등하는 학생들, 급우를 경쟁상대로 봐야 하는 학생들, 성적과 업무로 인한 교사들 간의 갈등, 밤 9시까지 혹은 10시까지 학교에서 하는 야간자율학습, 수업료와 급식비를 내지 못해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담임들, 1년 동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거의 의사소통이 없는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 등이 머리에 떠올랐다.

학교 그만두겠다는 아들... 정면돌파를 택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보는 눈은 소수라는 점이다. 대다수는 현재의 교육제도에 대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불명예스러운 청소년 자살률 세계 제1위가 아닌가.

정말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고치기 힘든 중병을 앓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으면 지금보다도 더 악화될 것이다. 글쓴이가 지적했듯이 지금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분석해서, 지금 여기에서 바로 우리 자신들이 바람직한 교육제도의 정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7년 전인 2008년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학교를 가기 싫다고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나라로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들어봤더니 집에서 쉬는 토요일인데도 강제로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라고 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또 하나는 우수 반에 편성되어 자율학습을 하는데 그 분위기가 자신에게는 맞지 않아 그냥 교실에서 하겠다고 했더니 심하게 꾸중을 한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학생들의 자율권이 지나치게 침해당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아들과 이야기하는 게 힘들었다. 그 문제는 내가 직접 현장에서 숱하게 겪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아들의 생각에 공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학교를 그만둔다거나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비록 속 시원한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과 그 문제에 대해 대화했다. 우리가 문제를 알고 있으니 그 문제 해결도 우리가 해야 된다고,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현실적으로 고칠 수 있는 가장 조그만 것부터 해야 된다고 했다.

아들에게 말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말하는 것과 같았다. 문제점 많은 교육 현실을 탓만 하지 말자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회피하지 말자고 했다. 고통스럽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희망적인 열매를 하나도 따지 못할지라도 정면 돌파하자고 했다. 그랬을 때에 그나마 희망이 우리 곁을 찾아올 거라고 말했다. 간신히 아들이 마음은 돌렸지만 나의 당부를 잘 알아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학교 그만두는 것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생각을 접고 학교생활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맞춰서 졸업까지 하게 됐을 것이다.

그 당시 아들에게 했던 말은 나에게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것은 다른 누가 아니라 이 땅에서 숨 쉬며 희로애락을 겪는 우리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교육 현장의 제1선에서 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 나 자신부터 동료와 함께 힘써 노력해서 덴마크의 교육에서 부러운 것을 조그만 것부터 실천해나가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교육 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겉그림 ⓒ 오마이북


우선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걸 끊도록 할 생각이다. 공부는 학생들이 잘하는 다양한 것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특히 무엇을 잘하는지 눈여겨 볼 것이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모든 학생들을 한 가지 이상 칭찬하도록 할 것이다. 공부도 부진한 학생들은 그가 실현 가능한 목표치를 정해서 그가 그것을 달성하면 많이 칭찬하도록 할 생각이다.

그다음은 수업시간에 남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에 대해서 자주 강조할 생각이다. 그전부터 이것은 계속 해왔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비록 수학과 영어를 성적에 따라 나눠 수업하고, 방과 후에 자율학습을 성적에 따라 학습실을 따로 정해서 하는 학교 방침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학생들에게 그것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자기보다 못한 친구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돕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역설할 것이다. 이 책에서 가슴에 와 닿는 수많은 구절 가운데 다음 부분이 그래서 가장 큰 감동을 주었다.

"어느 방면에서든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난 학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그 학생에게 '네가 최고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다른 친구를 좀 도와주렴' 이렇게 하죠."

이것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훈계 형식으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지도하는 나에게 확고한 교육철학이 있을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정규수업에 정해진 진도를 충실히 나가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만족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 혁신학교의 사례들을 시간 나는 대로 꼼꼼하게 살펴서 내가 들어가는 교실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목표도 다함께 사는 시민공동체 의식의 함양이다. 비록 사소한 것에 불과하겠지만 세월호 사건에 대해,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에 대해, 4대강과 원전 등에 대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것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위에 나의 실천사항으로 내세운 것들은 현실의 암담한 교육 풍토를 희망찬 분위기로 바꾸는 데에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미미하지만 변화는 확실히 일어났다는 점이다.

한 기자가 인도의 캘커타에서 자선행위를 하는 마더 데레사 수녀에게 캘커타에서 빈민들을 구제해봤자 그것은 태평양에서 물 한 컵 뜨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수녀는 그에게 "기자 양반 맞아요. 물 한 컵에 불과해요. 하지만 물 한 컵 분량만큼 태평양의 물은 줄어들었잖아요. 이 사실을 확인하고 여기저기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 것, 여기에 저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도 마더 데레사 수녀의 마음으로 이 땅의 교육을 올바로 바람직하게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다. 그리하여 그 일이 나는 물론이고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같이 일하는 동료 교사들, 그리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이 시간에도 동분서주하는 학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지금보다는 행복하게 해준다면 교사로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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