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서평] 늦깎이 대학생이 읽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에서 일반인 부문 [꿈틀상(가작)]을 받은 글입니다. [편집자말]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30대 중후반 노처녀가 한의대를 가겠다고 수능 책을 끼고 도서관에 틀어박히자 주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출했다. 대부분은 그냥 시집이나 가지 왜 그런 고생을 사서하냐고 하거나, 아직 철이 덜 들었다거나, 끌끌 혀를 찼다.
그런 용기가 부럽다며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신기함 내지 대리만족이었지 '공감'은 아니었다. 그 시절 나의 고민과 외로움은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어떤 누군가와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최대한 숨어서 혼자 견뎌야 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나이의 대학 졸업' 후 내가 선택했던 그 길은 기대와는 다른 풍경만을 자꾸 보여주고 있었고, '한번뿐인 인생이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에 선택한 결정, 또는 떠밀린 결정에 의해 결판나버리는 것이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대로 앞으로만 갈 수는 없었다. 난 내 인생이기 때문에 내가 언제든 다시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뿐인데, 멍이 많이 들었다. 많이 외로웠다.
하지만 막상 합격을 하니 주변의 반응은 "자랑스럽다. 부럽다. 대단하다"고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이런 삶을 살아온 나이기에,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기 전까지는, 나는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사람이며, 남과 다르게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주변 시선에 상처는 받을지언정 궁극적으로 그것에 매여 살지는 않는다고 자신했다.
잘못 생각했던 '평등'의 개념, 덴마크를 보고 깨닫다
현재 난 인생을 즐기고 있으며, 내가 선택한 삶에 만족하고 있고, 이웃을 도울 마음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소중하다는 '평등'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비록 아직은 '준비기간'이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지만, 노숙자분들이나 독거노인분들에 대한 내 시선이 일반 사람들보다는 뜨겁다고 자부해왔다. 게다가 한의학에 대한 신념과 봉사를 하며 살겠다는 이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 한의학에 대한 신념과 봉사하는 삶에 대한 열망의 이면에는 존경받는 직업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그 이면을 들켜버린 것이다.
난 웨이터를 하며 열쇠수리공 아들을 자랑하는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열쇠수리공이 필요한 것은 알지만, 내가 열쇠수리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 자식이, 내 조카가 열쇠수리공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이 말하는 '평등'과 내가 자부하는 내 속의 '평등'은 너무 다르다. 또 덴마크인들의 이웃에 대한 신뢰 또한 내가 말하는 이웃사랑, 생명 사랑과는 사뭇 다르다. 난 베풀 준비는 되어 있지만, 받을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단히 거만하고 어쭙잖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힘들었던 역사로 인해 잘못 꿰어진 단추 때문이고, 특정 누군가 바로 그 사람 때문이고, TV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저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 당장의 자기 밥그릇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좁은 시야를 가진 대다수 사회구성원 때문이며, 자기들은 공부하지 않았으면서 아이들의 정서는 고려하지 않고 공부만 부르짖는 멍청한 엄마들 때문이기도 하고, 명품 숍 앞에 길게 늘어선 철학 없는 사람들, 저 위에 늘어선 휴전선 때문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원흉들 중에 내가 포함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아직 예과생인 탓에 한의학의 진수를 맛보지는 못했지만, '양생' 즉 생을 기르는 방법 중의 하나가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사는 것임은 잘 알고 있다. 대다수 덴마크인들은 그런 정신적 양생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경쟁적 사회 분위기... 교육으로 고리를 끊어야
▲ 2010년 8월 9일 밤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도 남보다 우수하고자하는 인간 본연의 감정은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행복지수 1위라는 '등수'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경쟁 상대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 밖에 존재한다는 데 그 차이점이 있다. 나라 안에서는 서로가 경쟁상대가 아닌, 동지이자 형제인 것이다. 잘 짜인 사회시스템과 교육이 그런 정신양생을 가능케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린 그런 복지시스템을 견딜만한 정서적 자산이 없다. 학교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을 배우고 사회에서는 졸부들의 성공신화를 직접 보고 체험한다. 심지어 덴마크인들에게는 복지시스템에도 느슨해지지 않을 정신적 토대가 되어주는 그들의 종교가 (물론 계파는 다를 지라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높고 큰 건물이 되어 한국판 중세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세뇌된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난 성인이고 이제 가해자가 될 위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삶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초등학교에서부터의 교육, 정신적 교육임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과거 몸이 많이 아팠을 때, 온갖 병원을 다 돌아다녀도 정상이라는 말만 듣던 시절, 한의학은 내 병을 찾아내고 치료해주었다. 경험에 의해 한의학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학교에서 처음 한의학의 기초이론과 동양철학을 접했을 때 엄청난 혼란을 느껴야 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지난 대학교에서 배웠던 가치체계 등의 사고방식과는 완전 달랐던 것이다.
한의학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없었다면 과연 그 시절의 학문적 충격을 견딜 수 있었을까? 그 뒤 초등학교에서부터의 동양철학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목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부터의 교육의 힘을 강조한 이 책의 분석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경쟁관계에 찌들어버린 가치관, 이 책으로 돌아보다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표지사진. ⓒ 오마이북
우리가 초등학교에서부터 더불어 함께, 주체적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는 현인을 알아볼 줄 아는 일반 대중이 필요하다. 그들을 이 책에서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뒤늦은 결혼으로 내년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 그 아이를 깨어있는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벌써부터 신랑과 참 많은 대화를 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설정했던 그 아이의 위치 또한 '베푸는 자'이지 진정한 '더불어 사는 자'는 아이었음을 느낀다.
이미 경쟁관계에 찌들어버린 내 가치관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 것인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병도 진단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병의 진단이 끝났으니 이제 처방만이 남은 셈이다.
하지만 그 처방과 치료는 더디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많은 고민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참으로 고통스러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해자가 될 뻔 했던 내 인생에 브레이크가 되어준 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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