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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았던 때'를 기억하는 이유

[서평]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고

등록|2015.07.21 11:57 수정|2015.07.21 16:51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에서 청소년 부문 [꿈틀상(가작)]을 받은 글입니다. [편집자말]

'망각은 망국이다'세월호참사 336일째인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농성장에 '망각은 망국이다'는 글이 적힌 노란리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 권우성


토머스 무어가 쓴 '유토피아'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세계가 등장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필요한 만큼의 재화를 가져다 쓰고, 또 이외의 시간에는 온전히 자유를 지니는 세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묘사된 덴마크라는 나라가 마치 나에게는 무어가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던 유토피아같이 느껴졌다. 특히 3부 '행복한 학교'에 등장하는 덴마크 학교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지금 나의 상황과 비교하게 되면서 '내가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지금 이 모습이었을까?' 하는 고민이 들게 했다.

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진학하는 공립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안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나는 교과목에 대한 지식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배웠다. 선생님들은 함께 사는 공동체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강조하셨다.

기억이란 퇴색되고 내 멋대로 왜곡하는 짜깁기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행복하지 않은 환경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행복을 바랄만큼 불행한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에도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염두에 두고 특목고에 간 것이 아니었다. 언어를 좋아하고 인생을 살면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겪어보고 싶은 마음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은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하루 종일 움직일 시간이라곤 일주일에 1~2시수인 체육뿐이었고, 나머지는 온통 '학교에서 원하는 공부'로 채워졌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기숙사 생활에 힘들어했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친구들을 멀뚱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야간자율학습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그렇게 한 달여를 학교가 정해놓은 시간표에 쫓기듯 꾸역꾸역 살았다. 그나마 그 당시 꿈이었던 기자를 목적으로 계속해서 학생기자 활동을 했던 1학년은 조금 나았다. 2학년이 되어서는 기자라는 꿈조차도 정말 스스로 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고, 절대 대학만을 위해서는 공부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무런 목적 없이 치열하게 내신 혹은 모의고사를 준비하고 있는 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매순간,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1년을 보내던 중 만난 책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였다. 읽는 내내 마음속은 온통 부러움으로 가득 찼다. 직업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곳, 치열한 경쟁보다는 스스로 성찰하는 길을 안내해주는 학교, 노동자와 고용주가 행복한 나라.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모두 갖추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이 거짓말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이 너무도 부러워서 처음에는 그곳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덴마크와 우리나라의 실태를 더 비교하게 되면서 내가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 나라에 태어난 탓이라는 불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서 이런 내 생각이 옳지 않은 해결책이라는 걸 깨달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한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이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사회가 행복한 개인을 만들지만, 그 사회 또한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나간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행복한 사회로 간다고 해도, 그 사회에 나 같은 사람들로만 가득 차게 된다면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이 사회 속에서 내가 무슨 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회의감으로 가득 찼지만 오랜 고민 끝에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자!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귀기울여주는 날이 오게 될 테고 그 때가 되면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사회에 대해서, 또 행복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야겠지만.

어느새 나는 사람들이 취업 다음으로 고생이라고 하는 고3이 되었다. 그동안 왜 이렇게 불행한 사회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지 울기도 많이 울었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많이 울고 또 원망한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2년 반 동안 뼈저리게 느껴왔다.

앞으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지금 이때를 결코 잊거나 외면하지 않겠다. 이 고생의 시간들을 온전히 기억하고 마음속에 새기려고 한다. 더 이상 아이들이 이토록 힘든 교육 환경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나의 긴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망각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한때는 전국을 슬픔으로 뒤엎었던 세월호 사건이 남긴 그 상흔들도 어느새 사람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들의 일상을 살아간다.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때를 잊지 말자."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목표이다. 이후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순간들이 오지 않기를, 그리고 그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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