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기를
[서평]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은 선생님의 감상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에서 일반인 부문 [꿈틀꿈틀상(우수)]을 받은 글입니다. [편집자말]
올해 독서모임에서 처음 읽었던 책이 바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였다. 북유럽 사회에 관심이 많은 신랑이 이미 몇 달 전부터 계속 읽어보라고 권했던 그 책. 평소 소설류를 좋아하던 차였던지라, 너무 부담스러운 주문이라며 차일피일 미루었던 것인데, 그만 독서모임 덕분에 코가 꿰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고백하자면, 독서모임이 있던 당일까지도 나는 그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초반부에 등장하는 웨이터와 택시기사의 이야기에 짜증이 확 일어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열쇠수리공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와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의사나 판검사, 교수의 명성과 연봉도 부럽지 않는다는 택시기사는 이제껏 내가 쌓아 온 삶의 경험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영역이었다.
아니 사실 그대로 말하자면, 익숙함으로 굳어진 나의 사고가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 일으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제껏 내 자신이 꿈꾸었던 사회와 삶의 모습이 그대로 실현된 장면을 눈앞에 두고서도 말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깨뜨리기 싫어서 자신이 일생을 바쳐 꿈꾸어 오던 것도 외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만은 나 자신의 모순조차 깨닫지 못한 채, 저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직업의 귀천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 실업이나 파산을 해도 가정파탄이나 경제적 위기를 겪을 필요가 없는 사회. 성공과 경쟁이라는 채찍질에 시달리며 입시공부에 대한 부담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도대체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비법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행복한 미래 세대를 양성해야 할 주체의 한 축으로서, 그 비결을 찾아 끊임없이 교육적인 고민들을 해왔지만 어쩔 수 없이 덮어두었던 화두였다. 그 화두가 거론되는 것은 마치 딱지 앉은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은 것과 같았다. 어떤 철학서보다도 '행복한 삶'의 정답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해주는 것 같은 그 책(전반부에 단 두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뿐인데) 앞에서 나는 계속 불편한 심기를 누를 길이 없었다. 그래서 책을 덮어버렸다. 책은 먼지가 쌓여가는 채로 책상 한 켠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뫼비우스의 띠는 우리를 좌절하게 한다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겉그림 ⓒ 오마이북
"교육을 바꾸고자 하니, 사회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힘들겠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니 교육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교육과 사회의 관계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아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최 선생님(44세, 남, 17년차)
"책을 읽으면서 덴마크가 행복한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기분만 더 우울해졌습니다. 우리 사회와 덴마크 사회의 격차만 더 뚜렷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우리 사회에 과연 덴마크와 같은 방법이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만 들었습니다." 이 선생님(31세, 남, 7년차)
"덴마크 사람들은 인생학교에서 진로선택에 앞서 충분히 사색하고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자율학기제가 있기는 하지만, 덴마크의 인생학교처럼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는 않으니까요." 하 선생님(44세, 남, 17년차)
"저는 자존감과 연대라는 키워드가 가장 마음에 와 닿더라구요. 요즘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아요. 그래서인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연대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자유로움과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비결이더군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연대와 조직이라는 사회적 시스템이 전무하잖아요.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어요." 남궁 선생님(39세, 여, 10년차)
"덴마크 학생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얼마 전 저희 반 학생이 운동을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학생을 데리고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기왕이면 체육선생님이 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을 하면서도 그런 제 모습에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을 해놓고도, 돌아서서는 금방 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모순. 이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는 생각에 씁쓸합니다." 손 선생님(31세, 여, 3년차)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씁쓸해졌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면서 공감했던 부분을 책을 통해 확인해보고 싶었다. 집에 가자마자 이 책을 꼭 독파하리라. 그로부터 닷새 후 나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완독했노라고 신랑한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다.
개인의 능력부족을 탓할 것인가? 연대와 신뢰를 구축할 것인가?
▲ 교단에 서서 당당하게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들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입시의 부담 따위는 벗어버리고 마음껏 꿈꾸고 행복해지라고. 경쟁에 열을 올리기 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훨씬 값진 것이라고. ⓒ flickr
16년 전, 임용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던 나의 매일 아침기도 제목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처음 교단에 섰을 무렵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아서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침마다 아이들과 함께 교문을 들어서는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하고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그들이 바람직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좋은 교사의 조건은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수하고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 소신을 지키며 살고 싶었지만, 당장 진학에 목숨을 거는 고3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대하면서 교육적 가치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유능한 선생님'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굴복한 나는 능숙하게 입시를 지도하는 선생님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런 내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은, 어느 날 문득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곁에 다가오는 아이들이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진학상담'이란 이름으로 이야기를 나눈 아이들은 내 앞에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죄인이 되어갔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란 고작 헛된 꿈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하라는 것. 그 말의 숨은 뜻은 눈높이를 낮추고 형편에 적절한 대학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꿈을 포기하란 말을 거듭하는 교사에게 어떤 학생이 애정을 품을 수 있겠는가. 그런 교사와 학생에게 소통과 공감이 가당키나 한 것이겠는가?
이후 나는 학교를 전문계로 옮기게 되었다. 학업과 입시에 대한 부담을 훌훌 벗어버리고 내가 꿈꾸었던 교육을 실현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것저것 고군분투하던 나는 결국 만신창이가 된 채, 좋은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결론만 내리게 되었다. 자신이 변하지 않는데, 환경을 바꾼다고 달라질게 있는가라는 좌절감에 시달리며 내 자신의 무능력함에 통렬한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 교직은 더 이상 행복의 조건이 아니었다.
이렇듯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던 나의 일상에 숨구멍을 열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도 읽기 싫어하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였다. '노력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졌던 마음도 추스를 수 있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으면서 내가 깨닫게 된 사실은, 이제껏 고민해왔던 문제의 원인이 나 개인의 능력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연대와 조직의 부재'였던 것.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한 개인, 개인의 노력은 결코 산술적인 합(合)의 결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력의 결실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할 뿐이다.
진정 사회와 환경을 바꾸고 싶다면 한 개인과 개인이 연대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시스템을 조직할 것, 그리고 그 누구도 탈락하지 않도록 안전망을 구축해 줄 것, 그리하여 능력이 탁월한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자기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줄 것.
공동체는 각 개인의 노력의 결과의 합보다 훨씬 더 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교육 문제의 해결방법도 결국은 연대와 신뢰의 문제였던 것인가. 이제껏 내가 추구했던 방법이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이 나에게 던진 화두는 바로 이것이었다. 변화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신뢰를 구축하고 연대하라! 한 개인의 힘은 미약하다. 그러나 연대의 힘은 한 사회를 변화시킬 만큼 충분히 강하다.
나에게도, 출근길 가벼운 발걸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인가부터 나는 젊은 선생님의 열정과 즐거움이 너무나 부러웠었다.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날마다 기대된다는 독서모임의 한 선생님. 아침 출근길에 버스 안에서 만나는 그 선생님의 얼굴에는 항상 환한 미소가 어려 있다. 그런 미소에 끌리기라도 한 것일까? 세 정거장 만에 끝이 날 여정이건만 등교길 버스 안 아이들은 선생님 주변에 모여들어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자신을 어필하기에 바쁘다. 버스 한 켠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나에게도, 출근길 가벼운 발걸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교사라서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단에 서서 당당하게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들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입시의 부담 따위는 벗어버리고 마음껏 꿈꾸고 행복해지라고. 경쟁에 열을 올리기 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훨씬 값진 것이라고. 네가 인생의 행로에서 잠시 멈칫해도 이 사회가 꿈을 다시 찾을 때까지 너를 안전하게 보살펴 줄 거라고.
'너는 이상주의자에 불과해. 항상 잡지도 못할 뜬 구름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지. 현실은 달라. 남보다 앞서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될 뿐이야. 이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사람은 결국 낙오자가 될 뿐이라구. 현실에 출구 따위는 없어. 아이들을 순진한 바보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이런 사실에 대해 똑바로 이야기해. 현실성도 없는 이야기로 아이들 머릿속만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라고 밀어붙이는 현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말이다.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이 현실로부터의 탈출, 상상만으로도 통쾌하다. 출근길 발걸음이 마냥 상쾌해 질 것만 같다.
얼마 전 우리 학교 아이들이 경기도 교육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 아이들은 교육봉사동아리(DUO)의 일원으로 장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교육봉사도 해가며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가고 있는 이 아이들. 진로를 준비하다가, 아마도 교육감님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가 보다.
당돌하고도 유쾌한 이 아이들의 그 행보가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그런데 얼마 후 교육감님이 흔쾌히 우리 학교를 방문하기로 답을 주셨다. 여러 아이들이 도교육청으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덜 번거롭지 않겠느냐며. 뜻밖의 사태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어린 눈빛으로 이 사건의 결말을 지켜보기를 원했었다.
안타깝게도 5월 마지막 주,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교육감님의 방문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건전한 호기심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내가 꿈꾸는 교육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이라면, 권위의 벽이라는 사회적 편견 따위를 초월해버린 이 아이들의 유쾌하고 당돌한 호기심에 그 해답이 있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와 교육의 미래를 만들어 갈 귀한 아이들. 이 아이들이 교단에 섰을 때, 지금 보다는 조금 더 나은 여건에서 교육자로서의 포부를 실현하게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어나 걸어갈 것이다. 덴마크가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거듭났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큰 밑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급하지 않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갈 것이다. 뜻을 모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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