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정년퇴직 뒤 하루 세 번 출근하는 남자

공무원 정년퇴직 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등록|2015.08.20 17:41 수정|2015.08.21 10:21

재래시장 전경내가 근무하는 전통시장인 마천중앙시장 전경입니다. ⓒ 양동정


나는 1976년 서울시 ㅅ구에서 서울시 지방 행정9급(당시는 행정5급을류)으로 시작하여 2012년 12월 31일에 행정5급(임용당식 직급으로는 3급을)으로 정년 퇴직을 했다. 그러나 공무원 출신이라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처지다. 공무원 연금이 논란이 된 이후 전직 공무원들은 질시의 대상이요, 중죄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공무원 생활을 처음 시작한 1976년도에 은행다니던 친구들 봉급이 15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5만 원 정도를 받고 있었지만, '공무원은 봉급도 적고 퇴직금이 없지만, 퇴직 후 국가에서 연금을 준다고 하니까...'라는 이야기만 굳게 믿고 여러 유혹을 뿌리쳤다. 그렇게 36년을 버티다 정년까지 와서 연금을 받게 된 것이 국민들에게 죄 아닌 죄가 되버린 것 같아, 억울하기까지 하다.

한 직장에서 36년을 근무했지만, 그만두면서 퇴직수당 500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첫 번째 공무원연금 282만 원. 하지만 아이들 학자금 대출 3600만 원을 3년간 갚기로 한 터라, 매월 100만 원씩 공제하고 나니, 수중에 남는 건 182만 원이었다. 기초생활 수급자 이하의 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배부른 소리 한다고 야단 맞을지 모르지만... 그냥 놀기에는 너무나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있어 무엇인가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행정직공무원으로 배운 행정경력을 쓸 곳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초등학교 보안관, 시나 구의 주차단속원자리 밖에 없는 것 같아 20여 군데에 지원서를 냈지만, 허사였다.

약 1년 반 동안 일자리를 구하면서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땄다. 결국 사회복지사 2급과 체육실기교사, 생활체육지도사, 행정사, 스포츠마사지사, 자전거문화강사, 조경기능사 등등 기억도 다 못 할 정도의 자격증을 땄지만... 갈 곳은 없었다. 60세가 넘은 행정공무원 출신은 아무 곳에도 쓸 데가 없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일자리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던 차에 지인을 통해 재래시장 상인회 사무실 행정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장상인회 사무실이 나의 두 번째 일자리가 되었다.

근무처여기서 ⓒ 양동정


나의 하루, 첫번째 출근은 테니스장으로...

동호회원들과 아침운동을...집 근처 오륜 테니스장에서 아침운동을 한지 25년 째 된다. 하루 일과중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 양동정


내가 처음으로 테니스라켓을 잡은 것은 70년도 쯤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으로 테니스부에 들어간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 이후 군대 생활하고, 직장에 들어간 뒤 약 5년간 조기축구회에 나간 기간을 제외하고는 약 35년 동안 매일 아침 테니스장에 가는 테니스 애호가다. 그 덕에 요즘 가장 신나는 시간이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테니스장 가는 시간이다.

매일 만나는 동호회원들과 편을 갈라 두 게임 정도 하면 1시간 20분 남짓 걸린다.  전날 과음을 했을 때도 테니스로 땀을 흠뻑내는 것이 숙취해소에 최고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테니스를 배운 것이 내 인생에 가장 잘 한 일"이라고.

8시쯤 집에 와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내가 근무하는 재래시장 사무실에 도착한다. 내가 하는 일은 행정공무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살려 시장상인회 사무실에서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전통시장 활성화에 관한 각종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고, 상인회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상인회 매니저 겸 관리소장이다.

컴퓨터를 잘 못 해 힘에 부치지만 볼펜으로 직접 써서 주민등록 등초본을 발급하던 우리세대에 비하면 나는 잘하는 편이라 생각도 든다. 또 나이가 들수록 약간의 긴장과 스트레스는 가지고 살아야  늙어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여 고마운 마음으로 근무를 하고있다.

조경 기술 수업중한 밤중에 동부 기술교육원에서 나무식재 및 지주목 세우기 실습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 양동정


오후 다섯시 반쯤 되면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고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동부 기술교육원으로 등원한다. 그곳 조경관리과에서 밤 9시 30분까지 조경기술 공부를 하는 것이 세 번째 출근인 셈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밤 열시 반 정도가 된다.

조경은 평소 내가 배워보고 싶었던 분야였고, 교육비도 무료여서 지원했더니 다행히 합격했다. 현재 6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고 있는데 8월 24일이 수료식을 하는 날이다. 교육과정중에 조경기능사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도 따게 되었다. 이제 다시 밤에 교육받을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

이렇게 64세인 나의 하루일과는 아침 5시 30분에 시작하여 밤 열시가 되어야 끝난다. 무엇보다도 밤 늦게까지 술 먹을 일이 없어 자동적으로 다이어트도 되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