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순간
[그림책이 건네는 세상살이 이야기 18] 김재홍의 <동강의 아이들>
▲ <동강의 아이들> 표지사진. ⓒ 길벗 어린이
인간은 늘 자연을 엄마 품처럼 편안하게 느낍니다. 골치 아프고 힘든 일이 있으면 자연을 만나러 가고, 몸이 아파 쉬어야 할 때도 자연을 찾아 갑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본질적 근원을 찾아가는 셈입니다.
초록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 김재홍의 <동강의 아이들>을 만나면 눈도 마음도 힐링타임이 시작 됩니다. 그림책의 앞표지에서 뒤표지까지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득 자연이 그리워지는데 밀린 일들이 자연으로의 회귀를 막는다면 <동강의 아이들>을 만나면 됩니다. 공간 이동의 마술처럼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마술을 만나게 됩니다.
김재홍은 자신의 작품 <동강의 아이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물과 숲의 아름다움에 반해 동강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던 어느 날, 평소에는 '있는 모습 그대로'로만 보이던 바위며 산이며 물이 모두 새롭게 보였습니다. 어쩌면 저 바위는 오랫동안 물 위에 누워 누군가가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든 순간 그 바위는 착한 아기곰이 되어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큰새가 물을 차고 날아오르고 있었지요.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웠는지..."
<동강의 아이들>의 주인공은 시골아이 순이와 오빠 동이입니다. 어머니는 장터에 깨도 팔고 콩도 팔러 가셨습니다.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동강에서 놉니다. 큰새에게 엄마가 어디쯤 오셨는지도 묻고, 아기곰에게 엄마가 색연필을 사셨는지도 묻습니다. 힘들어하는 순이를 오빠 동이가 업어주기도 하고, 탄광에 돈 벌러 가신 아빠 생각도 하며 엄마를 기다립니다. 그러다 멀찌감치 오시는 엄마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갑니다.
이야기는 이게 전부인데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그 순간은 어디서 볼 수 있는 걸까요? 그림책의 그림은 아이들이 노는 바로 그 곳에 숨은 그림처럼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을 숨겨놓았습니다.
동강의 바위들과 물그림자가 함께 만들어낸 장면이 장에 가는 엄마도 되고, 큰새도 되고, 아기곰도 됩니다. 동이가 순이를 업어주자 바위와 강물도 동생을 업은 동이를 보여줍니다. 탄광에 간 아빠 모습도 장에 갔다 돌아오시는 엄마 모습도 모두 자연 속에 있습니다. 자연이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동강의 아이들이 이야기하면 모두 다 거기, 자연속에 있습니다.
이렇게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으로 동강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본래 인간과 자연은 하나였다고, 다만 인간이 자연을 떠나 그 사실을 잊어버렸노라고.
시인 정지용은 노래합니다. '꿈엔들 잊힐 리야'라구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인간과 자연과의 합일이 우리 인간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고향 같은 것이라구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런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돌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향수 / 정지용
덧붙이는 글
<동강의 아이들> (김재홍 글·그림/ 길벗 어린이/ 2000.6.30/ 9500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