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실 예약했는데, 제주도에서 이런 횡재가!
[30일, 제주를 달리다 ④] 그 셋째 날
▲ 아저씨 낚시하시 모습 걷다가 지쳐 이곳에서 잠시 앉아 쉬었다 갔다. 아저씨 한 분이 낚시를 하고 있다. ⓒ 황보름
어제보다 더 힘들었던 달리기를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차,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네!' 생각해보니 제주도에 도착한 후 지금까지,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혹시 몰라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정말 그랬다.
사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나는 다짐을 하나 했다. 이번 여행은 꼭 글로 기록해두기로. 나중에 글을 보며 여행의 장면,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볼 수 있을 만큼 상세하게. 이번 여행만큼은 더 많은 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주도를 오기 전 지금까지의 여행을 떠올려 봤었다. 매번 큰마음을 먹고 떠난 여행이었고, 어느 여행도 빼놓지 않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아쉬움이 컸었다. 아쉬움이 너무 커 일부러 현실에 조금 더 늦게 눈을 뜨고 싶을 때도 잦았다. 그런데 그랬던 여행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차차 사라져 갔다. 추억하려 해도 추억할 수 없을 만큼.
물론 사진을 보면 여행을 추억하는 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사진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사진과 사진 사이를 추억할 방법이 없었다. 사진과 사진 사이에 난 어떤 길을 지나왔고, 어떤 사람을 만났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기억하고 싶은 데 그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글로 그사이를 기록해 둬야겠다고 생각한 거였다. 이번에도 시간은 흐를 것이고, 기억은 사라질 것이기에.
그런데 너무 이 생각에만 집중했던 나머지 사진 찍는 것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난밤, 과거의 미술학도와 미래의 필라테스 강사가 흑돼지 사진을 찍을 때, 그때라도 뭔가를 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제주 여행의 첫 사진, 한라체육관
▲ 한라체육관멋없는 체육관이지만 그래도 추억이 될 줄 것이 분명하다 ⓒ 황보름
제주에서의 이틀째 아침, 그래서 한라체육관을 이번 여행의 첫 피사체로 선정했다. 도로 한가운데에 무심하게 서 있는 한라체육관은 피사체로서 그리 인상적인 대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시간이 흐르면 이 사진도 분명 멋진 추억이 돼 줄 것이 분명하니까. 이렇게나 멋없는 체육관을 찍은 이유를 기록해둔 글을 통해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사진을 찍은 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시뻘게진 얼굴을 얼른 샤워로 진정시키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와 같이 이곳의 아침도 토스트에 달걀, 커피와 주스로 이루어져 있었다.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시스템, 이 얼마나 좋은가!
이번 제주도 여행에선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도 아주 든든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점심때를 놓치기 쉬운 여행자에겐 아침밥을 사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배부르게 아침을 먹기 전 꼭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 사용한 접시와 컵은 각자 깨끗이 씻어 건조대에 넣어놔야 한다는 사실을.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는 이곳의 시스템 속에서 투숙객들은 그다음에 오는 사람을 위해 사용한 접시와 컵을 깨끗이 씻어놔야 했다. 다른 누군가는 나를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조심스레 서서 고무장갑을 끼고 정성을 다해 설거지를 해야 한다.
사실 처음에 이런 시스템이 조금 꺼림칙했었다.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그들이 씻어 놓은 접시와 컵을 사용한단 말인가. 그래서 처음 얼마간은 티 나지 않게 건조대에서 접시와 컵을 빼 와 다시 물로 한 번 헹군 후 사용했었다.
그런데 나중엔 이러지 않았다. 그냥, 모르는 사람들을 믿기로 했다. 조금 귀찮았던 이유도 사실 있었지만, 그것보단 그냥 믿어도 될 것 같아 그랬다. 나 역시 열심히 빡빡 설거지한 후 가지런히 건조대에 접시와 컵을 올려놓지 않는가.
인생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껏 살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중 하나는 이 세상엔 나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거였다. 그러니 별로 좋은 사람도 아닌 내가 이리도 열심히 빡빡 설거지한다면, 그 좋은 사람들은 분명 훨씬 더 열심히 설거지할 것이 아닌가.
물론, 살면서 더러 나보다 나쁜 사람들도 보긴 했으니, 그러니 그저 바라는 수밖에. 그 나쁜 사람들도 제발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둔갑해 설거지만큼은 제대로 해주기를!
숙소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
▲ 테마거리도로를 하얗게 둘러 친 저 벽에 기대 한참을 서 있었다. 바다를 보며. ⓒ 황보름
과거의 미술학도와 미래의 필라테스 강사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섰고, 체크 아웃 시간에 맞춰 천천히 짐을 챙겼다. 짐을 챙기며 뭔가 분주해 보이는 중국인과 몇 마디 대화도 나눴다. 어젯밤 2층 침대 내 위에서 잠을 잤던 중국인은 제주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는데, 심지어 중국인은 조만간 이 제주 땅 어딘가에서 '페스티벌'이 열릴 것이고 자기는 그 페스티벌에 참가할 거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기를 포함한 많은 중국인은 무려 그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거였다. 그게 도대체 무슨 페스티벌인지 참 궁금했지만, 그것보단 먼저 다른 것 때문에 마음이 조금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껏 이 한국땅에서 페스티벌이란 델 참가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나보다 한발 앞서 한국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뭔가 헛산 느낌을 안고 그게 무슨 페스티벌인지 물었다. 그러자 중국인이 얇은 책자 하나를 건네줬는데, 그 책자엔 한문이 가득했고 읽을 수 있는 건 오직 10km라고 쓰인 숫자와 기호 조합뿐이었다. 중국인이 말하는 페스티벌은 그냥 함께 모여 쭉 걷는 행사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페스티벌이라면 나도 참가를 했던 기억이 있긴 한데… 암튼, 별로 당기진 않는 페스티벌이라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그녀가 너무 분주해 보여 말을 거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내 일을 하면서 살짝살짝 그녀가 뭘 하나 흘긋 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그녀가 뭔가를 물으면(대체로 '이곳에 어떻게 갑니까?' 같은) 길 찾기 앱을 통해 가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녀는 펜을 들고 메모를 해가며 아주 열심히 오늘 갈 곳의 위치를 파악하고 가는 방법을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여행용 가방을 쾅 닫고 침대 밑에 쑥 넣더니 정리하던 것들을 손에 쥐고 인사도 없이 방을 나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좀 섭섭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도 튼 사인데 인사라도 하고 가지.
어제 만난 한국말을 잘하던 대만인은 이 중국인보다 훨씬 더 친절했다. 나갈 때는 잘 있으라는 인사말도 건네줬었고. 그녀는 우리나라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제주는 이번이 세 번째 여행이었는데, 어제는 대만에서 가족들이 제주로 첫 여행을 오는 날이라며 들뜬 표정을 보여 줬었다.
그녀는 제주를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나는 대만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것이 없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떨결에 그녀에게 '리다런'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 버렸다. 리다런? 그녀는 리다런이 뭐냐고 물었고 나는 왜 리다런을 모르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으로 리다런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대만드라마를 검색해 보여주었다.
"대만드라마를 몇 편 봤는데 그중 한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인 리다런을 좋아해"라고 말하자 그녀는 반색하며 천천히 리다런, 하고 발음해 주었다. 리다런? 듣고 리다런, 하고 다시 발음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시 리다런, 했고 나도 다시 리다런, 했다.
역시 착한 그녀는 아무렴 어때하는 표정을 짓고는 내 발음을 고쳐주는 대신 모르던 우리나라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하나 알려주었다. 그렇게나 좋아한 리다런이 나온 그 대만드라마를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해 곧 방영할 거라는 고급 정보였다. 주인공은 하지원과 이진욱이 될 거라는 말까지 해주었다. 대만 소녀의 말은 사실로 드러났다. 제주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 주 하지원과 이진욱이 나오는 드라마가 정말 시작되었다.
대만인도 어제 떠났고, 중국인도 방금 떠났고, 나도 체크아웃을 했다. 여행용 가방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 몇 개를 꺼내 가방에 꽉꽉 눌러 넣은 터라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데도 허리가 지끈했다. 다행히 버스정류장은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있었다.
삼십 분 정도를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짐칸에 짐을 넣어도 되겠느냐고 물었지만 다시 한 번 무시 되었다. 당황하지 않고 여행용 가방을 번쩍(은 아니고 간신히) 들어 올려 당당히 버스에 입성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내가 자리도 잡기 전에 힘차게 엑셀러레이터를 밟았고, 어렵게 중심을 잡으며 자리에 앉았다. 버스 창밖으로 제주 시내가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여행용 가방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준 채 버스 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조금만 더 달리면 바다가 보일 거였다.
숙소 옮기며 4인실 예약했는데... 이런 횡재가!
▲ 제주 바다북제주 바다. 끝이 없다. ⓒ 황보름
어릴 적 꿈은 '저 푸른 바다 앞에 그림 같이 집을 짓고' 사는 거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침마다 산책하며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길 바랐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궁금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바다에 살고 싶을까, 아니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을까.
지난 시절 제주도민들은 어쩌면 저 푸른 초원 위에 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더 높이 벽을 쌓아 올리고, 더 낮게 집을 낮추어야 했던 그들 가슴 속 꿈은 바다에서 더 멀리 떨어진 어딘가, 바람이 조금이라도 덜 미치는 어딘가에 닿아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 시절 높은 벽, 낮은 지붕 등과 같은 사정은 전혀 몰랐기에 그저 바다에 접해 있는 멋진 집을 나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아침 산책을 나서는 그 기분이 어떨지 상상만 해도 행복했었다. 어디 어린 시절뿐일까. 버스를 타고 바다를 향해 달려가며 여전히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바다는 아직도 내게 꿈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으로, 아침 산책으로, 행복으로, 언젠가 이루어질 꿈으로 말이다.
초원 위를 달리는 삶. 바다를 걷는 삶. 사람들이 어느 삶을 더 원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바다를 꿈으로 둔 사람들은 요즘 한창 제주로 몰려들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제주도의 바닷가는 어린 시절 나와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들에 의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기존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그들이 더 많이 몰려올수록 제주는 점점 더 꿈의 섬으로만 각인되어가는 것 같다. 삶은 축소되고 꿈만 거대해지고 있는 제주, 바다에 삶을 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바다에 꿈을 둔 사람들만 점점 늘어가고 있는 제주이다.
바다를 볼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으면서도, 이 생각을 하니 왠지 제주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주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빼앗아버리는 것 같아서. 하지만 곧 이런 마음을 접었다. 나는 그저 바다를 꿈꾸는 여행자일 뿐이지 않나. 제주는 분명 이런 여행자를 기쁜 마음으로 반겨줄 것이다.
파도 소리보다 먼저 바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이틀, 바다를 보지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이 울컥해온다. 지난 이틀의 시간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내게 바다를 더욱 그리워하게 해준 것은 분명했다. 울컥해진 가슴의 기운은 금세 얼굴을 타고 올라와 두 눈 주위에 멈춰 섰다. '아이씨, 주책 맞게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굳은 표정으로 운전하는 기사 아저씨가 혹여나 룸미러를 통해 내 눈을 보게 될 것 같아 여행용 가방을 잡은 손에 힘을 더 꽉 주었다.
▲ 해안도로 어디 쯤덥기도 춥기도 했던 그 날의 제주 ⓒ 황보름
이제 버스의 오른쪽 창밖으로는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이렇게 옆에 두고 달리면서도 버스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무표정하기만 하다. 앱을 실행하고 남은 버스 정류장 개수를 세어봤다. 세 정거장, 두 정거장, 한 정거장, 이제 내려야 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해안도로 어디쯤이다. 지도를 보니 앞으로 내가 4박을 묵을 게스트하우스는 근처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차도를 건너 건물 두, 세 개를 지나자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묵을 게스트하우스는 서쪽으로는 이호테우해변을, 동쪽으로는 용두암을, 북쪽으로는 바다를, 남쪽으로는 제주국제항공을 두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육지에서 제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창밖을 보며 '아, 제주에 다 왔다'하는 순간 보게 되는 북제주 땅 어디쯤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게스트하우스 여사장님이 함께 여행용 가방을 들고 옮겨 주었다. 2층에 짐을 풀러 올라가니 이상한 점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분명 4인실을 예약했는데 도착한 방은 2인실이다. 영문을 몰라 사장님을 쳐다보니 사장님이 빙긋 웃으며 설명해준다. 예약을 한 이후 게스트하우스에서 공용침실을 아예 없애버렸다고. 그리고 그 방을 2인실로 바꾸었다고. 내가 이 혜택을 보게 되는 마지막 손님이라는 말도 기분 좋게 덧붙여 주었다.
'와, 좋네요'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앞으로 4박을 묵을 동안 매일 정말 '와, 좋았'다. 첫날만 빼고 나머지 기간엔 그 2인실도 혼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묵는 동안 나는 북제주에 내 방 하나를 소유하고 있는 부자 여행자였다.
청소하는 사장님께 방해되지 않기 위해 인사를 하고 얼른 방을 나왔다. 신발을 신는 곳까지 따라 나온 사장님이 물어온다. "오늘은 어디를 가실 거에요?" 특별히 갈 곳을 정해놓지 않았던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다가 가장 적절한 대답을 하고 다시 해안도로로 나왔다. "그냥, 걸을 거에요." 오늘은 정말, 그냥 걸을 생각이었다.
'이게 제주 바람이구나' 해안도로를 걸었다
▲ 해안도로 어디 쯤서서히 어두워지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 ⓒ 황보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가 펼쳐져 있었다. 가지고 온 바람막이 점퍼를 가방에 넣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걷기 시작했다. 바다는 이제 내 왼편에 있었다.
해안도로를 걷기 시작하자 '이게 바로 제주 바람이구나' 싶은 바람이 불어왔다. 세찬 바람이 몸을 사정없이 때려온다. 몸이 흔들릴 정도로 거센 바람이다. 머리에 쓴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아 재빠르게 강하게 조여주었다. 햇볕은 뜨거운데 바람이 워낙 세게 불다 보니 몸이 금방 으스스해져 왔다. 얼른 가방에서 점퍼를 꺼내 입었다. 펄럭이는 점퍼의 소리가 바람 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려왔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점퍼를 입었다 벗었다 하며 계속 걸었다. 태양 때문에 벗었고, 바람 때문에 입었다. 풍력발전기 모양의 가로등을 지나, 각종 식당, 카페, 디저트 가게를 지나고, 용두암을 지나 계속 더 걸었다.
승천하고 싶던 용 한 마리가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훔쳐 달아나다가 그만 딱 걸려 떨어진 후 하필이면 용의 머리 모양으로 굳어져 그 유명한 용두암이 되었다는 이야기. 용두암의 슬픈 전설을 조금 더 깊이 음미하며 걷고자 했지만 점점 무릎이 아파지고 발바닥도 뜨거워져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졌다. 지칠 때까지 걷다가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대신 그냥 더 걷기로 했다. 조금만 더.
그렇게 걷다가 귀여운 조개가 여기저기 박혀있는 테마거리에 잠시 서서 몸을 기댄 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여전히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은 계속 불다 말다 했고, 나는 계속 옷을 입었다 벗었다 했다. 춥다 더웠다, 좋다 힘들다가 반복되고 있었다.
바다 앞에선 원래 이렇게 되는 건가. 반복에 반복. 좋았다가 나빴다, 또 나빴다가 좋았다. 이처럼 바다 앞에선 삶을 살다가도 꿈을 꾸게 되고, 꿈을 꾸다가도 삶을 살게 되는 건지도 몰랐다. 꿈을 따라 제주에 온 사람들도 결국은 삶을 살게 될 터였고, 제주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도 때론 꿈을 꾸게 될 터였다. 그러니 제주는 결코 꿈을 실현해주는 섬은 아닐 것이다. 다만, 꿈도 꿀 수 있게 해주는 섬일 뿐.
이렇게 생각하니 바다가 더 좋아졌다. 바다 앞에선 삶과 꿈이 반복될 수 있는 거라면, 그렇다면 바다 앞에선 꿈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 아닌가. 꿈을 계속 꿀 수만 있다면 이 거센 바람도, 아픈 무릎도, 뜨거운 발바닥도 다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엔 이런 낭만적인 생각도 다 날아가 버릴 만큼 너무 힘이 들었지만.
4일간 유일한 룸메이트였던 그녀는 밤 10시가 되어 도착했다. 퇴근 후 바로 날아온 거라던 그녀의 제주 여행 목적은 페스티벌 참가라고 했다. 여기도 페스티벌이라고? 속으로 매우 신이 났다. 인사도 안 하고 떠난 그녀와 방금 인사를 나눈 그녀는 며칠 뒤 함께 제주 어느 해안가에서 페스티벌을 즐기게 될 거였다. 그것도, 마라톤 페스티벌을. 부디, 즐거운 축제가 되길(중국인이 말한 그 페스티벌은 제주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제주 국제관광마라톤'축제'라고 했다).
덧붙이는 글
<30일, 제주를 달리다> 연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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