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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벌금폭탄' 맞은 밀양할매, 탈핵교재로 돕자

[서평] '탈핵·탈송전탑 교재 패키지'를 읽다

등록|2015.07.23 15:17 수정|2015.07.23 15:17
며칠 전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밀양대책위)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보급 운동을 펼치고 있는 '탈핵·탈송전탑 교재 패키지'를 받았다. 탈핵 관련 도서 3권과 교육자료가 담긴 시디 1장으로 구성된 탈핵 자료 묶음이다.

<탈핵으로 그려보는 에너지의 미래>(아래 <탈핵 미래>)는 전라북도교육청(전북교육청)이 2015년 1월 30일 자로 발행한 탈핵 교재다. 공교육 현장에 탈핵 담론을 퍼뜨릴 촉매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념비적'인 자료다.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아래 <탈탈 원정대>)는 밀양 주민들이 전국을 다니며 쓴 '나쁜 전기' 보고서다. "금수강산을 엉망으로 만들고, 후손들에게 어마어마한 위험을 떠넘기는 인간들의 헛소리와 이 나라의 잘못된 전력 정책을 폭로하고 싶"(12쪽)은 바람에서 쓰인 책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쓴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아래 <착한 전기>)는 '팸플릿' 형태의 소책자에 "불편한 진실, 눈물과 이권으로 얼룩진 전기" 이야기를 담았다. 밀양대책위와 탈핵 실천 교사들이 공동 제작한 CD에는 탈핵 관련 동영상과 피피티(PPT)․읽기 자료가 담겨 있다.

'핵발전의 진실' 폭로한 탈핵 교재 패키지

▲ 전북교육청, 교사 7인, 전문가 2인이 함께 만든 탈핵 교재 <탈핵으로 그려보는 에너지의 미래> 표지. ⓒ 전북교육청

나는 <탈핵 미래>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작년 한 해 8명의 교사·전문가와 함께 집필 작업에 참여했다. <탈핵 미래>는 핵발전소 사고, 핵발전의 원리와 구조, 핵발전의 문제점, 전기에너지 현황과 정책, 핵발전의 대안 등으로 짜여 있다. 전체 103쪽에 탈핵과 관련된 주요 쟁점을 모두 포함했다.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했지만, 핵발전소나 탈핵에 문외한인 고등학생이나 일반인도 쉽게 보고 배울 수 있는 교재다.

나는 핵발전의 문제점 중 경제성과 윤리성 부분을 다뤘다. 쉽지 않았다. 핵발전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로 복잡하게 얽힌 쟁점들을 파악하여 체제를 구성하고 학생들 눈높이에 맞게 서술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탈핵 관련 저작들을 꼼꼼히 훑었다. 집필위원들과 함께 초심자의 자세로 하나하나 학습해나갔다. 쟁점들은 전체 토론을 통해 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알고 배우게 된 것이 적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핵발전 산업의 규모를 계속 키워가고 있습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30년대 중반에 40기 이상의 핵발전소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핵발전 산업의 규모를 계속 키워가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른 나라에서는 태양광발전의 발전 규모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2000년에 전 세계의 태양광발전 시설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277메가와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부터 신설 태양광발전의 발전 규모가 해마다 많이 늘어나 2012년에 3만2000메가와트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2년 동안 115배나 증가했고 그 증가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이라는 핵발전은 쇠퇴하고 비경제적이라는 태양광발전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세계적 추세입니다. (<탈핵 미래>, 62쪽)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으나 교재는 예정 시한에 맞춰 발간되었다. 김승환 전북 교육감이 마련한 간행 기념 만찬은 모두에게 특별한 자리였다. '탈핵'이라는 불온한(?) 단어가 들어간 교재를 지역교육청 차원에서 펴냈다는 사실에 보람과 긍지를 느꼈다. 우리는 전북을 포함해 우리나라 교육현장에 탈핵 바람이 불기를 한마음으로 바랐다.

얼마 후 <탈탈 원정대>가 나왔다. '괴물' 765kV 송전탑으로 고통받고 있는 밀양 할매, 할배들이 전국 2900km를 발로 뛰며 쓴 일종의 현장 체험기다. '나쁜 전기' 보고서라는 부제가 책의 성격을 말해준다. 핵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송전탑, 송전선로, 변전소 따위 문제로 삶의 토대가 허물어진 이 땅 곳곳의 또 다른 '밀양'이 그려져 있다.

'지옥 탐방기'면서 동시에 '희망 보고서'인 책

▲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하승수 지음 / 한티재 펴냄 / 2015.01 / 8000원) ⓒ 한티재

밀양 할매, 할배들은 10년을 싸웠다. 이길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졌다. 송전탑은 들어섰고, 한전이 뿌린 돈 때문에 마을 공동체는 깨졌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분하고 억울한 밀양 할매, 할배들이 살아 있는 한 마르지 않을 눈물이다.

싸움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밀양 송전탑 경과지 4개 면에는 아직 한국전력주식회사(한전)의 보상금을 받지 않고 버티고 있는 집이 225세대다. "핵발전소 만들고 팔아먹는 대기업들, 민간발전사 대기업들, 원가보다 싼 산업용 전기로 펑펑 써대는 대기업들, 이 대기업과 그들에게 붙은 공무원, 언론인, 어용학자들"(12쪽) 같은 "진짜 나쁜 놈들"에 굴하지 않고 싶어서라고 한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2900km 여정지에서 직접 본 풍경들은 '지옥'이었다. 수도권 최대 변전소라는 신경기변전소 후보지 중 하나인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삼합리에는 765kV, 345kV 선로와 제2영동고속도로가 동시에 지나간다. 지금은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에 고속도로 건설이 진행 중이다. 송전선과 도로가 동네를 포위한 형국이다.

송전선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밀양 송전탑 문제가 전국 쟁점이 되면서 일명 '밀양법'으로도 불리는 송주법(송·변전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피해를 보상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자파 위해 논란도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송전선로로 인한 전자파(전계) 인체 기준을 833밀리가우스로 삼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건강 피해를 우려해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전자파(자계)가 소아백혈병 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아직 더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므로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 스웨덴은 2밀리가우스, 네덜란드와 스위스, 이스라엘 등은 10밀리가우스를 안전 기준치로 삼고 있다. (<탈탈 원정대> 134쪽)

<탈탈 원정대>는 '지옥' 탐방기인 동시에 연대의 힘을 확인하는 희망 보고서이기도 하다. 점잖은 퇴직 초등교장이었다가 '투사'로 변신한 김길곤 할배는, 국내 최대 송전탑 집결지인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전, 정부와의-기자 주) 싸움은 절대로 못 이긴다"라는 한 주민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꼭 옳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틀린 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우리 재산과 건강권을 지키려고 싸운 게 맞아요.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게 인권의 문제인 것을 알겠더라고. 전기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그런데 한전과 정부는 전기가 먼저라는 식이었어요. 우리 사회 정의를 짓밟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소수자인 약자들이 당하면서 싸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탈탈 원정재> 45쪽)

'착한 전기'의 길... 버틸 힘은 연대뿐이다

▲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 표지사진. ⓒ 한티재

<탈핵 미래>와 <탈탈 원정대>를 관통하는 문제의 핵심에 '전기'가 있다. <착한 전기>는 그 지점을 다뤘다. 변호사였다가 탈핵·탈송전탑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저자 하승수는 원전·전력 마피아와 대기업들의 유착관계를 파헤친다. 이를 통해 송전탑의 진실을 밝히고 '탈핵-탈석탄화력-탈송전탑'으로 이어지는 '착한 전기'의 길을 제안한다.

하승수는 원전이나 송전탑을 안 지으면 전력난이 온다는 것이 완전한 허구라고 단언한다. 그가 보기에 '진실'은 대기업들이 돈을 벌게 하려고 쓸데없는 발전소와 송전탑을 짓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전 세계에서 원전밀집도가 가장 높은 '위험한 화약고'의 나라가 되었다.

얼마 전 밀양 할매, 할배들이 전북 군산을 방문했다. 한전은 지금 군산과 새만금을 잇는 345kV 송전선로를 위한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공사 저지를 위한 농성 과정에서 군산 할매, 할배들이 많이 다쳤다. 밀양 할매, 할배들의 방문은 그들에게 연대의 힘을 전하고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다.

밀양 대책위와 전교조가 추진하고 있는 탈핵·탈송전탑 교재 패키지 보급 운동도 비슷하다. 밀양 어르신들은 지금 2억3000만 원에 이르는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여덟시면 졸려서 텔레비전을 더 볼 수도 없"어서 "한 달에 전기요금 만 원도 안 쓰"(<탈탈 원정대> 12쪽)는 그들의 '죄'는 고향 마을 묵은 집에서 농사지으며 조용히 살게 해 달라고 외친 것이었다.

탈핵·탈송전탑 교재 패키지 판매 수익금은 전액 밀양 할매, 할배들의 벌금 및 법률 비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힘든 처지에 놓인 밀양 할매, 할배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일 수 있다는 점은 4․16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드러났다. 국가가 '괴물'이 될 때 약하고 소심한 우리가 버틸 힘은 연대밖에 없다. 그 길에 동참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탈핵으로 그려보는 에너지의 미래>(김영진 외 지음/ 전라북도교육청/ 2015. 1. 30/ 103쪽)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밀양 할매 할배들 지음/ 한티재/ 2015. 5. 11/ 261쪽/ 1,5000원)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하승수 지음/ 한티재/ 2015. 1. 16/ 127쪽/ 8000원)
덧붙이는 글 '탈핵·탈송전탑 교재 패키지'(탈핵 도서 3권과 탈핵 교육자료 CD 1장을 합해 3만 원) 판매 수익금은 전액 밀양 할매, 할배들이 내야 하는 벌금 2억3000만 원 벌금과 법률 비용으로 쓰인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밀양대책위)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주관하고 있다. 문자 주문(010-9203-0765, 밀양대책위 상황실), 이메일 주문(my765kout@gmail.com)이 가능하다.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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