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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의 '복·붙'... 수학여행 안전 뚫렸다

허술한 정부 전자입찰 역이용한 버스 업체 무더기 적발

등록|2015.07.22 16:05 수정|2015.07.22 16:05

▲ 수학여행 버스 용역 계약시 자동차등록증 원본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해 차량연식을 변조해 수학여행단 수송에 이용해 온 버스업체 대표 등 46명이 22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이 정상적인 자동차등록증 원본에서 신차의 차량 출고일자를 오래된 차량에 오려 붙이는 방법을 재연하고 있다. ⓒ 부산지방경찰청


안녕, 나는 1998년생 버스야. 호랑이띠지. 요즘 사람들은 10대들 보고 무섭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못 비할 거 같아. 사실 나는 벌써 폐차가 됐어야 할 차거든. 나 같은 전세버스는 최대 11년까지 운행 후 폐차가 돼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어. 왜냐면 서류상으로 내 나이는 아직 출고 5년이 안 된 혈기왕성한 '신차'였거든.

그렇게 나는 나이를 속인 채 또래의 학생들을 한가득 태우고 제주도를 누볐어. 내 자동차 등록증을 바꾼 건 내 주인님이야. 버스회사를 운영하는 주인님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내 호적을 바꿔치기했지. 정상적인 어린 버스(5년 미만)의 자동차 등록증에서 연식을 가위로 오려 내 자동차 등록증에 풀로 붙이면 끝. 컴퓨터로 치면 Ctrl+C(복사하기) 후 Ctrl+V(붙여넣기) 같은 거였지.

종이접기를 잘하는 김영만 아저씨의 말대로라면 '코딱지들도 잘할 수 있는' 정도의 아주 초보적인 방법이었어. 그런데 여기 속아 넘어간 게 어딘지 알아? 대한민국 조달청의 전자입찰 시스템인 나라장터였어. 왜냐면 조달청 나라장터는 자동차등록증 원본은 확인하지 않거든. 그렇게 무서운 10대 학생을 태운 더 무서운 '10대 버스'는 전국을 누볐지. 

그렇다고 우리 주인님만 욕을 먹을 필요는 없을 거 같아. 많은 버스의 주인님들이 이 방법을 애용해왔거든. 22일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자동차관리법 위반과 공문서 위·변조 혐의로 딱 걸린 버스회사 주인님과 직원분들만 46명이 넘는다고 하더군. 업체로 치면 25개 업체야.

5년 이하 차량 조건 맞추려 안전 내팽개쳐

그럼 이쯤에서 궁금해질 거야. 왜 버스업체 주인님들이 버스들의 나이를 속였을지 말이지. 수학여행을 가려는 학교는 아까 말한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와 있는 업체들을 선정해 계약을 맺어.

근데 나라장터에 입찰을 공고하려면 차량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5년이었던 거지. 물론 5년을 초과할 경우 6개월 이내 점검한 종합검사 점검표를 제출하면 됐지만 '복사하기' '붙여넣기'는 훨씬 더 쉬운 방법이었거든.  

이런 식으로 변조한 공문서를 통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오래된 버스를 300번이나 이용했어. 사람들 중에선 '사고만 안 나면 됐지 뭐가 그리 큰일이냐'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거 같아. 그런 사람들은 2008년과 2012년 제주도와 강원도에서 나처럼 오래된 버스를 타고 가던 학생들이 사고를 당해 각각 4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해. 

그때마다 교육 당국은 예방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번 사례를 봐도 그런 대책이 형식적이었다는 건 또다시 드러나게 됐지. 아마 이제 곧 또 여러 대책이 쏟아져 나올 거야. 우선 경찰은 "강력한 단속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법 위반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수사 할 것"이라고 밝혔지.

정말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하긴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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