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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에게 요리사 권했다가... "고모는 거짓말쟁이"

[말없는 약속 20년 29] 덕이의 진로 문제... 마음이 무겁다

등록|2015.07.27 10:51 수정|2015.07.27 10:51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덕이의 진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중 아무래도 요즘 덕이가 반 친구들에게도 인기 있는 만큼 또래들의 생각과 견해를 들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같은 반 아이들 몇 명의 도움을 받아볼 계획으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학교에서 모범적이며 성격이 원만하고 착한 친구들로 7명을 선별해 주셨다.

그 아이들과 방과후 저녁 식사를 위해 삼겹살집으로 갔다. 덕이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얼마나 친구들이 그리웠고 이렇게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으면 저럴까 싶어 조용히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삼겹살철근도 씹어 먹을 나이인 10대들의 삼겹살 흡입은 대단했다. 삽시간에 8명이 삼겹살 37인분을 깨끗이 정리했다. ⓒ 조찬현


철근도 씹어 먹을 나이인 10대들의 삼겹살 흡입은 대단했다. 삽시간에 8명이 삼겹살 37인분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것도 다 익기도 전에 불판 위에 있는 삼겹살을 싹쓸이 또 싹쓸이를 몇 번 하더니 끝. 와우~ 대단한 녀석들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뷔페로 함께 가서 실컷 먹을 수 있게 하는 건데. 삼겹살을 좋아하는 덕이였음에도 옆에서 친구들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냥 좋은가 보다.

나 : "너희는 진로 다 결정했니?"
친구들 : "네."
나 :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희망했던 직업이 지금도 그대로니?"
친구1 : "아뇨! 저는 유치원 때는 소방관이었지만 지금은 회계사예요."
친구2 : "저는 초등학교 때는 과학자였지만 지금은 교사가 될 거예요."
친구3 : "저는 지금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은 저보고 의사 되라고 하시는데 저는 자동차에 관심이 더 많거든요."
나 : "아~ 그렇구나! 그러면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 할 직업이 변했다는 거니?"
친구1 : "예. 아마도 애들 거의 다 변할 걸요."
나 : "그러니? 그러면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한 결심이 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구나."
친구1 : "예, 많이 그래요."
나 : "응 그렇구나~"

사전에 각본이 없었음에도 내가 바라는 대로 아이들이 잘 반응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쯤 말하고 덕이를 살펴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큰 눈만 깜빡깜빡한다. 친구들과 헤어진 후 집으로 둘이 걸어오면서 내가 덕이에게 말을 걸었다.

고모 : "덕아, 아까 친구들 7명이 거의 다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때 가졌던 희망직업이 지금은 다른 직업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덕이는 어떻게 생각하니?"
덕 : "몰라."
고모 : "덕이 입장에서는 모를 수 있을 것 같아, 덕이는 지금까지 한가지 꿈만을 생각했으니까... 고모는 중학교 때까지는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었거든... 고모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떻게 했는지 덕이가 알고 싶다면 이야기해줄 수 있는데."
덕 : (고개를 끄덕인다)
고모 :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경험해본 분들에게 조언을 듣는단다. 고모는 주로 담임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었어."

나의 이런 말에도 덕이는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아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걸까.

덕이에게 다른 직업을 권했더니... 마음이 무겁다

▲ 만약 관장님께서 덕이의 진로를 태권도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 생각해보라고 권하게 되면 아마도 덕이는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 freeimages


고모 : "덕아, 오늘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하면서 기분이 어땠어?"
덕 : "좋아."
고모 : "나도 즐거웠어. 특히 덕이가 좋아하니까 더 좋았단다. 덕아~ 덕이도 태권도관장님 말고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 또한 덕이에게 다른 직업을 생각해보자고 권하면서도 막상 덕이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나의 말에 힘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관장님의 입장에서는 덕이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들을 잘 지도하며 그 아이들의 가능성을 도와야 하므로 계속해서 특별히 덕이만을 애기 사범으로 둘 수는 없는 상황이다. 또 덕이가 태권도 관장님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렇다고 태권도 관장님께 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었다. 만약 관장님께서 덕이의 진로를 태권도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 생각해보라고 권하게 되면 아마도 덕이는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덕이가 느낄 배신감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정서적인 슬픔 등을 고려해 본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덕이가 상처를 덜 받으면서 태권도 관장님이 아닌 다른 직업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고모 : "덕아, 태권도에서 직접 쌀을 씻고 밥을 해서 상을 차리고 식사 후에 설거지를 하는 덕이를 보면서 고모는 덕이가 아마도 요리를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단다. 덕이는 관장님과 사범님들을 위해서 요리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니~ 재미있니?"
덕 : "응."
고모 : "특히 지난번에 관장님들을 집에 초대해 덕이가 직접 김치볶음밥을 했을 때 다들 맛있다고 하셨잖아. 할머니와 나 또한 그런 덕이 모습이 좋아 보였어. 덕이가 지금 애기 사범을 하면서 요리사에 대해 알아보면 어떨까?"
덕 : "싫어."
고모 : "'싫다'라고 말하는 덕이를 고모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덕이는 지금까지 요리사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는데 고모가 이런 말을 하니까 그런 거니?"
덕 : "응."
고모 : "고모 또한 이런 말을 하기가 사실 쉽거나 마음 편하지는 않단다. 그러나 어쩌면 덕이가 다양한 재능을 지니고 있을 것 같아서 권해보는 거야. 요즘 덕이가 좋아하는 만화 <요리왕 비룡>처럼."
덕 : "싫어."
고모 : "어? 싫어?...  나는 덕이가 요리사도 되고 애기 사범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자꾸 덕이에게 관장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해보자고 권하다 보니까 덕이가 몹시 혼란스러워하는 듯하다. 나는 권하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아마도 덕이는 어떻게 해서라도 다른 직업에 관심 두게 하려는 나의 의도를 알아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심 마음이 무거웠다. 한편 솔직한 심정으로는 덕이가 나의 마음을 알아채 주길 바랐다. 이 정도로 하고 덕이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저녁 덕이가 태권도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고 있을 시간에 관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덕이가 태권도 관장님께 불쑥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고모는 거짓말쟁이에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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