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안 와도 돼" 이런 서울시장도 있었다
[서평] 이남형의 <이팀장의 해외출장 레시피>
서울시장을 수행해 해외순방에 나섰던 직원이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봉변을 당했다. 낯선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바람잡이에게 정신이 팔려 컴퓨터 등 중요한 물건이 든 가방을 들치기 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기는커녕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신과 시장의 가방 두 개를 들고 있었는데, 잃어버린 것이 '다행히'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지 큰 행사를 치르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 있지만, 뒤에서는 행사가 무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온갖 고생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불행을 남의 다행으로 여기고.
역대 시장들 해외순방 20여회 수행... 세계 110개 도시 누벼
이남형 서울 서초구청 건강정책과장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최근까지 서울시에 근무하면서 주로 국제 업무를 담당하여 역대 시장들의 해외순방 20여 회를 포함해 총 30여회의 해외출장길에 올라 110여 곳의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런 그가 "후배들이 지뢰를 밟지 않도록" 자신의 해외출장 경험을 모아 <이팀장의 해외출장 레시피>(도서출판 허브)라는 책을 냈다.
그는 시장들의 해외순방이 있을 때마다 항상 선발대로 파견돼 뒤따라올 본진을 위해 미리 길을 닦아놓는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에 항상 대비해야 하는 유격수나, 처음부터 포위된 상태로 작전을 수행하지만 포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난국을 타개해 가야만 하는 공수부대와 같다고 비유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겪은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들으면 마치 여러 편의 활극을 본 듯하다.
사망한 아들 장례도 못 치르고 해외순방 따라나선 직원
급하게 시장 일정을 챙기려 중국의 호텔 로비를 뛰어다니다가 두 차례나 반짝반짝한 대형거울에 부딪혀, 한 번은 유혈이 낭자하게 다쳐 이마를 6바늘이나 꿰맸던 이야기, 7급 말단 공무원이 3급 국장 명함을 들고 서울시장을 대리해서 호주 국제회의에 참석해서 당당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온 이야기, 통역사가 준비되지 않아 즉석 구청장 통역으로 들어갔다 진땀 흘린 탓에, 영어공부를 시작해 LA 주재관으로까지 발탁됐던 이야기 등 끝이 없다.
그러나 해외출장을 빈틈 없이 준비해야 하는 담당 직원들의 무용담 뒤엔 가슴 시린 경험도 있다.
순방을 떠나기 전날 3살배기 아들이 사망했지만 "아들은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넣어놨고, 순방을 다녀와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며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순방을 떠나 무섭게 업무에 집중하던 한 6급 주임의 얘기는 읽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못 한다 그래! 대통령 안 와도 된다고 그래!"
저마다 '대선주자급'인 역대 서울시장들의 성격이나 리더십도 자연스레 묘사되어 있다.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직원들의 문화탐방 기회까지 배려하던 '따뜻한 리더십' 조순 시장, 언제나 공적으로 철두철미하게 흐트러짐이 없는 고건 시장, 국제회의가 취소된 줄도 모르고 현지가 가서 낭패를 봤는데도 "뭐 일부러 그랬겠어요?"라고 넘어갔던 이명박 시장, 지독한 냄새 때문에 아무도 손을 못 대는 현지음식을 척척 받아먹어 수행단의 체면을 살려줬던 오세훈 시장, 이 과장의 해외출장 에피소드들을 듣고서는 당장 책으로 써서 남겨두라고 자꾸 채근해 결국 책을 쓰게 만든 박원순 시장.
해외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이 과장이 어느 서울시 행사 총괄책임을 맡을 때였다. 무대 설치하는 예산이 달랑 7천만 원인데, 청와대 경호실에서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했으니 2억 원을 들여 경호용 차양막을 설치하라고 요구한다고 보고하자 단호하게 "못 한다 그래! 안 와도 된다고 그래!"라고 한 당찬 서울시장이 있었다. 누구일까?
공무원도 해외에 가면 많이 보고 와야 한다
해외출장의 베테랑답게 알차고 효율적인 해외출장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점도 지적하고 있다.
흔히 공무원이 해외출장을 가서 관광지나 유명한 여행지를 경유하거나 시찰한다고 하면 일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관광하러 간다는 비판을 의식해 무조건 관광지를 배제하고 일정수립을 수립하는데, 이는 겉만 보고 속은 못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파리에서 리도쇼를 봐야 파리의 밤 문화를 얘기할 수 있고, 암스테르담의 공창 밀집지를 보지 않고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생각할 수 없으며, 샌프란시스코의 동성애자 지역을 보아야 동성애와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인지 문제의식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도 못 쓰고,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난받는 공무원 마일리지는 철폐하는 게 청렴한 공무원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민간항공사도 더 편하게 사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화 100달러 이상의 선물은 무조건 신고하게 돼 있는 30여년 전 규정도 이제는 손볼 때가 됐다고도 주장했다.
시장들의 해외순방을 다니다 보면 별의별 선물을 받게 되지만, 그중 몽골에서는 살아있는 말을 선물 받아 곤욕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일단 귀국해서 그 말을 들여오는 방안을 서울대공원과 협의했지만, 경비는 둘째 치고 말을 들여올 때 검역문제며 계류기간, 동물인수 전문가가 현지출장해서 동행하는 문제 등에 부딪혀 도저히 들여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은 어찌 됐을까.
아직도 울란바토르에는 2명의 서울시장이 선물 받은 말들이 위탁관리 되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큰 행사를 치르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 있지만, 뒤에서는 행사가 무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온갖 고생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불행을 남의 다행으로 여기고.
역대 시장들 해외순방 20여회 수행... 세계 110개 도시 누벼
▲ <이팀장의 해외출장 레시피> 표지 ⓒ 도서출판 허브
그는 시장들의 해외순방이 있을 때마다 항상 선발대로 파견돼 뒤따라올 본진을 위해 미리 길을 닦아놓는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에 항상 대비해야 하는 유격수나, 처음부터 포위된 상태로 작전을 수행하지만 포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난국을 타개해 가야만 하는 공수부대와 같다고 비유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겪은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들으면 마치 여러 편의 활극을 본 듯하다.
사망한 아들 장례도 못 치르고 해외순방 따라나선 직원
▲ 2011년 4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한국전쟁 참전용사 조각상 앞에서.(가운데가 이남형 과장) ⓒ 이남형
급하게 시장 일정을 챙기려 중국의 호텔 로비를 뛰어다니다가 두 차례나 반짝반짝한 대형거울에 부딪혀, 한 번은 유혈이 낭자하게 다쳐 이마를 6바늘이나 꿰맸던 이야기, 7급 말단 공무원이 3급 국장 명함을 들고 서울시장을 대리해서 호주 국제회의에 참석해서 당당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온 이야기, 통역사가 준비되지 않아 즉석 구청장 통역으로 들어갔다 진땀 흘린 탓에, 영어공부를 시작해 LA 주재관으로까지 발탁됐던 이야기 등 끝이 없다.
그러나 해외출장을 빈틈 없이 준비해야 하는 담당 직원들의 무용담 뒤엔 가슴 시린 경험도 있다.
순방을 떠나기 전날 3살배기 아들이 사망했지만 "아들은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넣어놨고, 순방을 다녀와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며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순방을 떠나 무섭게 업무에 집중하던 한 6급 주임의 얘기는 읽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못 한다 그래! 대통령 안 와도 된다고 그래!"
저마다 '대선주자급'인 역대 서울시장들의 성격이나 리더십도 자연스레 묘사되어 있다.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직원들의 문화탐방 기회까지 배려하던 '따뜻한 리더십' 조순 시장, 언제나 공적으로 철두철미하게 흐트러짐이 없는 고건 시장, 국제회의가 취소된 줄도 모르고 현지가 가서 낭패를 봤는데도 "뭐 일부러 그랬겠어요?"라고 넘어갔던 이명박 시장, 지독한 냄새 때문에 아무도 손을 못 대는 현지음식을 척척 받아먹어 수행단의 체면을 살려줬던 오세훈 시장, 이 과장의 해외출장 에피소드들을 듣고서는 당장 책으로 써서 남겨두라고 자꾸 채근해 결국 책을 쓰게 만든 박원순 시장.
해외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이 과장이 어느 서울시 행사 총괄책임을 맡을 때였다. 무대 설치하는 예산이 달랑 7천만 원인데, 청와대 경호실에서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했으니 2억 원을 들여 경호용 차양막을 설치하라고 요구한다고 보고하자 단호하게 "못 한다 그래! 안 와도 된다고 그래!"라고 한 당찬 서울시장이 있었다. 누구일까?
공무원도 해외에 가면 많이 보고 와야 한다
해외출장의 베테랑답게 알차고 효율적인 해외출장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점도 지적하고 있다.
흔히 공무원이 해외출장을 가서 관광지나 유명한 여행지를 경유하거나 시찰한다고 하면 일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관광하러 간다는 비판을 의식해 무조건 관광지를 배제하고 일정수립을 수립하는데, 이는 겉만 보고 속은 못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파리에서 리도쇼를 봐야 파리의 밤 문화를 얘기할 수 있고, 암스테르담의 공창 밀집지를 보지 않고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생각할 수 없으며, 샌프란시스코의 동성애자 지역을 보아야 동성애와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인지 문제의식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도 못 쓰고,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난받는 공무원 마일리지는 철폐하는 게 청렴한 공무원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민간항공사도 더 편하게 사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화 100달러 이상의 선물은 무조건 신고하게 돼 있는 30여년 전 규정도 이제는 손볼 때가 됐다고도 주장했다.
시장들의 해외순방을 다니다 보면 별의별 선물을 받게 되지만, 그중 몽골에서는 살아있는 말을 선물 받아 곤욕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일단 귀국해서 그 말을 들여오는 방안을 서울대공원과 협의했지만, 경비는 둘째 치고 말을 들여올 때 검역문제며 계류기간, 동물인수 전문가가 현지출장해서 동행하는 문제 등에 부딪혀 도저히 들여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은 어찌 됐을까.
아직도 울란바토르에는 2명의 서울시장이 선물 받은 말들이 위탁관리 되고 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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