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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카페를 외면했다, 햇볕 때문에

[맞벌이 가족 리씨네 유럽캠핑 에세이 29] 프랑스 아를

등록|2015.07.30 14:39 수정|2015.07.30 14:39

▲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돌아다니고 있다. 나중에서야 고흐가 그린 카페테라스 그림의 그 카페를 그냥 지나쳤음을 알았다. ⓒ 이성애


아침을 먹고 이빨에 낀 바게트 쪼가리를 다시 꺼내 씹으며 실실 캠프장만 나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 고흐가 그린 포룸 광장이 나오고 고흐에게 삶의 공간임과 동시에 모델로 활약했을 길, 건물, 들판, 나무 등 모든 것들이 보이리라. 몇십 년을 이어 살아오고 있는, 한마디로 눈앞에 살아있는 갤러리가 펼쳐질 것으로 생각했다.

리셉션 직원이 고흐와 관련된 관광지 정보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모르고 있을 때도, 난 '한국에서나 유명한 관광지라 현지인은 잘 모르나?' 정도로 생각했더란다.

여기가 아를이 아니라고요?

▲ 프랑스요리에 대해 워낙 코스 주문이 어렵다느니, 값이 비싸다느니 하는 말을 많이 들어 제대로 된 프랑스 요리도 못 사먹어봤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고흐가 그린 카페테라스의 모델이 된 바로 그 카페이다. ⓒ 이성애


그냥 걸어 다니며 볼 수 있는 만큼 보자는 내 말에, 남편은 서둘러 설거지, 빨래 등의 가사를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그런데 남편은 캠핑 생활자에서 여행자로 변신하려는 순간 "그런데 여긴 아를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했다. 물론 나도 뭐가 뭔지 모르기에 일단 다른 누군가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막상 물어보려고 했을 땐 선뜻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그중 그나마 아침과 저녁으로 눈빛 교환에 간단한 인사 정도 나눈 할머니한테 다가가 "여기가 아를이에요?"하고 물었더니 "농"이라고 하신다. 짧고 단호하게!

아이코, 여긴 아를이 아니다. 하룻밤을 잔 후에야 이곳이 당초 목적지였던 아를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단지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기 위해 자동차에 올라 사람 가리지 않기로 유명한 내비게이션에 물었다. 내비게이션 그녀가 말하길 아를은 이곳에서 18km 정도 동쪽으로 가야 한단다.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차에서 내렸다.

아를 시내에 들어가기 전 우린 론 강과 먼저 만났다. 왜 이런 강줄기를 두고 '젖줄'이라고 표현하는지, 아이를 낳고 젖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난 후 알게 되었다, 또한 대지의 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되었다.

출산 후에 주어진 하루하루는 출산 전의 일상적인 하루와는 정말 많이 달랐다. 특히 산후조리원에서의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면 난 나도 모르게 "또 모유 수유의 날이 밝았구나"를 외쳤다. 나를 비롯한 앳된 엄마들은 더 양질의 젖을 만드느라 그에 맞는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병아리같이 연약하고 어여쁜 입에 젖을 물리는데 미약하게 남아있는 에너지를 몽땅 썼다. 물론 가끔은, 나처럼 아기가 운다는 말에 수유 간격과 내 몸 상태를 따져가며 에너지를 보충하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10명, 20명 엄마가 모두 그것을 가졌지만, 거기에서 나오는 모유의 양과 질은 각기 다르다. 우린 이 세계에 대해 경험한 바가 없는 앳된 엄마들이었기에 일단 양이 많은 것을 최고로 치고, 최고인 두 쪽이 있을 때 "참 그것이냐? 물이 태반이냐?"로 질을 논했다. 마사지로 양과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했으나 내가 보기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 아닐까 싶다. 갖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졌다고 해도 만족스러운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론 강도 이처럼 프랑스가 그냥 거저 받은 선물이다. 이 젖줄을 차지하고자 수많은 전쟁을 치러냈던 인간의 노력을 슬쩍 거론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강 자체는 공짜로 받았다는 것이다. 수혜자들은 얼마나 감사해 할까? 하긴 나 또한 여러 나라를 둘러보며 열악한 자연환경을 접한 후에야 여주, 이천을 유유히 끼고 돌며 비옥한 농토를 이뤄 차지고 풍미 가득한 쌀을 만들어주는 남한강에 대해 더욱 감사한 마음이 갖게 되었다.

한 나라를 돌며 대지에 뿌리박고 사는 온갖 생명을 먹이고도 남는, 양질이 훌륭해 보이는 론 강. 얼마나 오랫동안 이 모습으로 수많은 생명을 살찌우고 인간의 사색을 깊게 했을까. 고흐는 이를 배경으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론 강에 별빛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프랑스의 대지는 참 비옥하고 풍요로워 보인다. 론 강 덕분에 더욱.

한국인은 무조건 사는 1유로짜리 '고흐 지도'

▲ 독일어로 먼저 부부가 대화한 후 검증된 내용을 다시 내게 일러주신다. 이렇게 성실할 수가. ⓒ 이성애


아를 여행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면 일단 그곳에서 챙길 수 있는 '공짜 지도'를 먼저 챙기고, 그 후 '고흐 때문에' 이곳을 온 '고흐 마니아'라면 1유로를 내고 지도를 한 장 사면된다. 어설프게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로, 나는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1유로짜리 고흐 지도를 달라고 했다. 다른 한국인도 거침없이 나와 같은 것을 사기에 그때 또 놀랐다. 한국인의 정보 수집력과 신속한 실천력.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여기저기 흩어진 고흐의 흔적이 1cm도 안 되는 노란 동그라미로 지도에 표시되어 있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카페 테라스', '아를 정신병원' '고흐와 고갱이 처음 같이 살았던 집' 등 몇 가지를 보고 싶었던 내겐, 이 1유로짜리 지도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하튼 1유로짜리 지도를 가지고 정신병원을 찾다가 길을 잃었다. 여기서 길을 잃었다는 것은 '어떻게 되돌아가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에 가까웠다. 점심시간이었기에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우리 눈에 좁은 골목에 내놓은 작은 탁자에서 관광객이 먹고 있던, 일본식 김밥이 눈에 들어왔다. 흰색 밥과 까만색 김의 조합은 색상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기분까지 산뜻해졌다.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 골목을 꺾어졌을 뿐인데 눈앞에 광장이 쫙 펼쳐졌다. 레스토랑들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었고,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탁자와 의자들로 광장은 꽉 차 있었다. 이런 광장의 출현에 순간 멈칫했다. 길을 잃었기에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이라 더 그랬다.

높은 건물 그림자에 의지해 햇빛을 피해오다 갑자기 햇빛을 피할 길 없어진 느낌, 빨리 이곳을 벗어나 그늘로 숨고 싶은 느낌이었다.

우린 잠시 잊고 있었다, 독일인의 친절함을

▲ 고흐를 사랑하는 친절한 독일인 부부. ⓒ 이성애


그때 지도를 펼쳐놓고 분석 중인 반대편의 한 부부에게 물었을 때,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고흐를 찾아 이곳에 왔고 이번이 세 번째 여행이란다. 즉, 아는 것이 많았다.

먼저 그들은 우리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반가웠다. 그래서 우린 "아~"란 효과음을 과장해서 냈다. 사실 그 효과음은 '오, 아이 갓 잇(I got it)'에 해당하는 효과음이지만 서양인에겐 낯설어서 재미있는 반응이었나 보다. 여하튼 터키인 큐사드와 네덜란드인 루드가 여러 번 흉내 내었다.

흉내 내는 것이라면 자신 있던 나를 반대 상황에 놓이게 함으로써 여러모로 수줍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부부께선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주셨다. 정보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서로가 독일어로 뭐라 쏼라쏼라 의견을 나눈 후 고갯짓을 까딱하여 합의에 도달한 것을 알려주셨다.

들어와서 차 한 잔이라도 시켜먹으며 매상은 올려주진 못할망정, 영업장 앞에 둔 '호객용 높은 식탁'쯤 되는 곳에서 이토록 자리를 오래도록 차지하다니. 주인에겐 다소 불편한 동서양의 교류현장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마음이 불편한데 이런 나의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그들의 정보 제공은 끝이 없었다. '아으~' 점점 들리지 않는다.

고마운 마음이 엄청나게 크지만 그래도 다리가 아프다. 설명은 끝이 없다. 여하튼 그들은 고흐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인사를 하고 서로의 여행을 축복해준 후 헤어졌다. 남편이 말했다.

"아~ 왜 내가 독일인은 매~우 친절하단 사실을 잊고 있었지?"

여하튼 최고로 유익했던 그의 정보는 불과 50m 떨어진 카페를 가리키며 "저게 그 카페 테라스의 모델이 된 카페예요"라고 했을 때였다. 하마터면 게을러터진 우리는 노란 가림막이 쳐진 카페를 지나면서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뻔했다. 의미 있는 그 카페에 앉아 음료라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점심시간인지라 탁자 위에 차려진 번듯한 음식가격에 마음을 옥죄어 와 그냥 사진만 대충 찍고 갔다.

뜨거운 햇볕은 우리에게 일단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가난해서 지나친 것이 아니라 햇볕이 뜨거워 지나쳤단 말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노란색'을 보면 자동으로 자유와 낭만을 떠올릴 기회를 놓쳤다. 비싼 값으로 바꿀만한 그 아름다운 추억의 기회는 돈이 아까워 물 건너갔다. 이것은 두고두고 아쉬움과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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