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바닷가 산성들, "역사를 잊었는가"
임흥빈 전남도 의원 "'해양 산성' 발굴·복원이 필요해"
▲ 임흥빈 전남도의원이 해양에 있는 옛 산성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돈삼
"바다가 뚫리면 육지가 열리게 돼 있어요. 육지가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죠. 도성의 나라님이 욕을 당할 것이고요. 나라도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바다는 언제나 최일선에서 나라를 지켰어요. 섬 주민들이 최전방에 선거죠. 그 흔적이 섬과 바닷가에 있는 산성(山城)들입니다."
지난 22일 만난 임흥빈(55, 신안) 전남도의원의 말이다. 임 의원은 전남 서남해안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도서·해양문화 가운데서도 옛 산성에 주목하고 있다. 섬 주민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섬 주민들은 중앙정부의 온갖 수모와 천대를 다 받고 살았어요. 국토 끝자락에 산다는 것 만으로요. 모질고 질긴 삶을 살아온 거죠. 그러면서도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어요. 섬과 바다를 지키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죠. 섬의 높은 곳에 산성을 쌓으면서요. 이런 사실은 우리 해양역사 속에 기록으로 살아있어요. 지금도 잔해로 남아 있고요."
임 의원이 섬과 바닷가의 옛 산성에 주목한 건 최근의 일이다. 섬에서 태어났고, 그 섬을 지역구로 둔 지방의원으로서 섬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전남의 섬과 바다에 대한 관심은 지역발전과도 직결된다는 생각을 했다. 전남도의회에 의원 연구모임인 '도서해양문화연구회'를 두자고 제안한 것도 그였다.
▲ 임흥빈 전남도의원이 행정환경위원회에서 옛 해양 산성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제296회 전남도의회 정례회에서다. ⓒ 이돈삼
"얼마 전, 신안 비금도에 있는 성치산성을 찾아보고 놀랐습니다.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 같더라고요. 성벽의 판석은 무너져 내려 나무와 풀 속에 묻혀서 폐허가 돼 있었고요. 이곳이 옛 산성인가 싶을 정도였어요."
임 의원의 한탄이다. 그가 다녀온 성치산성은 고려 시대에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231년 몽골이 침입해 오기 전까지 우리 병사들의 함성과 말발굽 소리가 요란했던 곳이다. 칠발도 해역을 굽어보고, 자은도 앞바다까지 주시하며 왜선과 상선의 출현을 경계했던 성이다. 성터에는 봉화대의 흔적도 남아있다. 흑산도 상라산성에서 피워 올린 봉화를 받아 장산도의 대성산성과 압해도의 송공산성을 거쳐 뭍으로 연결했던 봉화대다.
"역사를 잊고 산 민족은 패망의 길을 걸었어요. 역사가 증명하고 있잖아요. 바다를 포함한 국토를 지키는데 맨 앞에 섰던 섬과 바닷가의 옛 산성을 잊어선 안 돼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옛 해양 산성의 실태를 파악하고, 발굴하고 또 복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후손에 물려줘야죠. 그게 오늘을 사는 우리의 책무라 생각합니다."
임 의원이 기회 있을 때마다 집행부에게 섬과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옛 산성에 대한 관심과 함께 실태 파악을 촉구한 이유다. 지난달 진행된 전남도의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서는 역사의식을 갖고 예산 편성에 임할 것을 집행부에 주문했다.
▲ 상라산성에서 내려다 본 신안 흑산도 전경. 임흥빈 전남도의원이 풍경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관광지로 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곳이다. ⓒ 이돈삼
"육지와 해양의 문화는 다르게 봐야 합니다. 똑같이 봐서는 안 돼요. 산성도 마찬가집니다. 섬과 바닷가에 있는 산성의 규모가 육지의 것보다 작을지 몰라요. 그러나 역사성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가치가 저평가될 수 없는 유산들이에요."
임 의원의 말이다. 그는 이어 빼어난 경관을 지닌 흑산도의 상라산성을 복원해서 조상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역사관광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상라산성을 본보기로 개발한 다음, 점차 다른 곳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임 의원의 요즘 최대 관심사다.
임흥빈 의원은 3선 전남도의원으로 교육위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행정환경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남도의원들의 연구모임인 '도서해양문화연구회'를 이끌면서 도서·해양 관련 학술대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중국 상하이해양대학교가 주관한 '도서해양문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장보고기념사업회가 주관한 '다도해 발전전략과 비전' 학술회의엔 발제자로 참여했다.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과의 간담회도 수시로 갖고 있다.
▲ 임흥빈 전남도의원이 옛 해양 산성과 서남해안의 섬과 바다에 대해 설명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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