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함께 있어야" 코피노를 바라보는 시선들
결혼이주여성, "나쁜 아빠, 용서하고 잊으라"는 이유
▲ 코피노에 대한 결혼이주여성의 반응코피노 아빠 공개 블로그에 대한 결혼이주여성의 반응-“Oh there's a lot of kopino in philippines?!.. How sad because they don't know their father,and they are growing up without there father by there side.. heart melting.” ⓒ 고기복
캐티는 필리핀 출신으로, 4년 전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얼마 전 이혼했습니다. 이혼하면서 양육권을 빼앗긴 캐티는 현재 가정법원에 면접교섭권 청구소송 중입니다. 그녀에게 코피노 아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필리핀에 한국인 남성과 연애하다 애를 낳은 여자들이 있는데, 그 여자들이 낳은 아이들을 코피노라고 해요. 그중 많은 남자들이 애 엄마와 연락을 끊어 버렸는데, 그동안 연락 끊고 살아왔던 남자들 이름과 전화번호를 누군가가 블로그에 올렸다고 해요.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처음에는 '코피노'라는 말 자체를 모른다고 했던 캐티는 코피노 관련 블로그를 보고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필리핀에 코피노가 그렇게 많아요? 그 아이들이 아빠를 모르고, 아빠 없이 자라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군요. 마음이 녹아내리네요."
캐티와 코피노 관련 문자를 주고받은 후, 다른 결혼이주여성들과 이주노동자들과도 관련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캐티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세 명도 코피노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고 했습니다. 캐티를 제외한 셋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이혼한 캐티는 어떻게든 아이를 만나기 위해 소송을 청구한 입장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만나려 하지 않는 코피노 아빠를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반면, 국적을 취득한 세 여성은 조금씩 다른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혼한 지 벌써 수년째라는 A와 P는 처지가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양육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이혼한 이후로 아이들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만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둘은 입을 모아 "Forgive and forget. 용서하고 잊어라"라고 했습니다.
"아이 아빠들이 양육비를 댄다면, 아이를 만날 권리 있어요. 양육비를 내지 않는다면 아이를 만날 권리 없어요. 남자가 연락 없었다면 굳이 찾을 이유 없어요."
질문 의도와 다른 대답에 재차 물었습니다. "이건 아빠의 권리를 묻는 게 아니라, 엄마와 아이가 아빠를 찾는 문제인데요." 그러자 "아이들이 커서 아빠를 스스로 찾는 문제와 엄마가 아이 아빠를 찾는 이유는 달라요. 돈 때문이에요"라며 여자를 비난하듯 말했습니다.
순간 동병상련으로 코피노 엄마들을 이해할 거라 기대했던 것과 다른 대답에 당황스러웠습니다. A와 P는 결혼이라는 절차를 밟은 자신들과 달리 혼외 결혼한 코피노 엄마들에 대해 도덕적인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비록 자신들은 돈이 없어 아이들 양육권을 뺏겼지만, 코피노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 아니냐며 되물었습니다.
둘은 아이를 찾으려 하지 않는 한국 남자들과 돈 때문에 아이 아빠를 찾는 필리핀 여자들을 모두 비난했습니다. 아이를 '나 몰라라' 하는 남자들도 이해가 되지 않고, 책임감 없는 남자를 찾으려고 하는 여자들도 책임감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둘은 이런 문제는 "용서하고 잊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다시 말했습니다.
한편, 넷 중 가장 연장자로 결혼한 지 18년째인 리진은 남편과 아옹다옹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하고 매일 싸워요. 왜 싸우는지 몰라요. 같이 있으면 그냥 싸우게 돼요. 아이들 때문에 참는 거예요. 이거 한국 사람도 똑같잖아요. 결혼하기 전에 왜 애 낳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에게 피임이나 낙태를 허락하지 않는 필리핀 문화에서 아이 엄마만 비난하는 거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그 말에 리진이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필리핀 여자들이 피임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돼요. 나처럼 나이 든 사람도 결혼 초기에는 피임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 다 피임해요." 리진의 말에 세 사람은 "맞아요. 남자 친구 있는 여자들은 피임 안 하면 바보예요"라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피임과 낙태를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임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네 명의 결혼이주여성들은 코피노 엄마들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과 달리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데도 불만인 이유를 모르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자식을 가까이 두고 싶은 엄마의 간절한 마음 때문에 코피노 엄마들을 부러운 눈길로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 양육권 빼앗긴 결혼이주여성, 언젠가는 꼭 되찾겠다
한편, 일요일마다 아이를 만나러 다니는 훈이 엄마는 코피노 엄마 이야기에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습니다. 훈이 엄마는 베트남 출신으로 작년 이혼 소송 당시 남편에게 양육권을 뺏겼습니다. 아이를 혼자라도 키우고 싶었지만,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면접교섭권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양육권 소송에 패소하면서 아이와 헤어진 훈이 엄마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훈이 아빠는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고, 약도 사 오지 않아요. 그런데 아이를 데려갔어요. 일요일에 훈이를 볼 때마다 마른 걸 보면 가슴이 아파요."
훈이 엄마는 남편이 아이를 학대, 방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몸이 고달파도 매주 시간을 내어 아이를 만나러 갑니다. 그런 그녀는 코피노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 모두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랑을 빼앗아가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훈이 엄마는 언젠가는 꼭 아이 양육권을 되찾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대체로 코피노 아이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엄마들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 거리감이 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점은 남성 이주노동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동거한다고 다 애 낳지는 않는다. 그래도 애가 있다면 돌봐야...
▲ 쉼터 이용 중인 이주노동자들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용 중인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용인이주노동자 쉼터에서 세 명의 인도네시아인, 두 명의 태국인과 캄보디아와 잠비아에서 온 남자들에게 같은 내용을 물어보았습니다. 잠비아에서 온 월리만 빼고, 기혼이든 미혼이든 의외로 대답이 똑같았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꿈뿔 꺼보(Kumpul kebo, 동거)라는 말이 있어요. 학생들이 외지에 가면 많이들 같이 살아요. 이주노동자들도 외국에 가면 동거하게 돼요. 그렇다고 애까지 낳진 않죠."
"굿바이 하면 굿바이, 끝이에요."
"그래도 아이에게는 돈 보내줘야 해요."
남성 이주노동자들은 아이가 불쌍하다고 하면서도 출산의 책임을 전적으로 여자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고국을 떠나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털어놓는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반면, 잠비아에서 온 윌리는 달랐습니다. 그는 미국 유학 중에 한국인 여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딸이 태어나자 잠비아로 돌아갔던 그는 아내의 권유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했지만, 한국에서는 어디에서도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몇 달 간의 실직 생활 중에 처가댁의 곱지 않은 시선은 윌리 부부를 별거하게 만들었습니다. 벌써 일 년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월리는 매주 한 번, 시간을 정해 딸과 아내를 만나고 있습니다.
"잠비아에 있었으면 아무 문제 없었어요. 한국에선 딸아이와 함께 식당에만 가도, 주위에서 이상한 눈으로 봐요. 느낄 수 있어요. 힘들어요. 아이와 아내를 데려갈 수 있으면 당장 돌아가고 싶어요."
윌리는 "코피노 아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남자들이 문제 있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는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에 안정적인 잠비아와 미국에서의 생활을 버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아내가 한국에서 살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가족과 함께 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이 지금처럼 힘든 상황을 만들고 있지만, 윌리는 "가족은 그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해요. 가족과 함께 하려고 한국에 온 거예요."
결혼이주민이든, 이주노동자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어떤 이는 자기 일처럼 공감하고, 어떤 이는 자신과 전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조차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심할 수 있음을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크든 작든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보듬는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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