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사 단죄비 설치해 역사공간 만들자"
사직동 문화재보존 모임 토론회 개최, 광주공원 문화유산 재배치·탐방길 개발 등 제시
▲ 최근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동 광주공원 사직비군에 친일 인사 윤웅렬과 이근호의 선정비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정비 철거와 단죄비 설치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30일 오후 광주향교 문회재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선정비를 철거하기 보다 단죄비 등 역사기록물을 설치해 역사교육에 활용하자"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날 토론회를 주과한 '사직동 문화재 보존을 위한 시민모임'은 지난해 광주공원 일대 역사문화 유산 조사를 벌여 두 친일 인사의 선정비의 존재를 확인했다. ⓒ 강성관
최근 광주 지역에서 그 존재가 알려진 친일 인사의 선정비(善政碑)에 대해 "선정비를 보존하고 단죄비 등 기록물을 세워 역사교육에 활용하자"라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동 광주공원에 친일 인사 윤웅렬·이근호의 선정비가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 '사직동 문화재 보존을 위한 시민모임'의 문화유산 조사에서 확인됐다.
최근 시민단체들이 선정비 철거, 단죄비 설치를 요구하고 나서자 광주시는 지난 26일 "시민사회·학계와 협의해 철거 또는 단죄비 설치를 검토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관련기사 :'임진왜란' 권율 옆에, '귀족 세습' 친일파 비석이).
"단죄비 세워 역사교육에 활용"... "역사적 기념공간 재편 필요"
30일 오후 '사직동 문화재 보존을 위한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 주관으로 광주향교 문회재에서 열린 '사직동 일제 강점기에 대한 고찰' 토론회에서는 선정비 보존과 단죄비 설치 의견이 많았다.
발제에 나선 김홍길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교수는 "사직동은 근대 도시인 광주의 성장을 잘 보여주면서 근대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심 주변의 허파와 같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라면서 "과연 광주에서는 근대문화 공간에 대한 기념을 위한 종합적 차원이 대책이나 정비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광주공원 일대에) 독립운동 등에 대한 전시공간도 정립되지 못한 채, 일부 친일파 인사들의 기념시비가 들어서 있다"라면서 "광주 도심, 사직동 광주공원 일대의 문화유산 실태를 조사하고 재배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노영기(조선대·역사학 전공) 교수는 "1960~1970년대 '조국근대화' '역사바로세우기'가 오히려 역사의 흔적을 재빠르게 뒤덮어버리는 '역사 감추기'가 돼 버렸다"라면서 "항일 유적과 친일 유적을 기억하고, 친일의 흔적인 문화유산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재배치하자는데 동의한다"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공간의 재배치는 지리적·역사적·문화적 위치와 구도심으로 전락한 현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안식 전남문화재연구소장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전북 군산시의 일제 강점기 근현대 문화유산 활용 사례를 들면서 "근대 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심 재생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산의 경우 일본 제18은행 등 170여 채의 근대 문화유산을 활용, 근대역사벨트화 권역과 근대역사경관을 조성하는 사업 등을 진행했다"라면서 "통곡과 분노의 공간 등을 문화예술 창작과 교육 장소 및 숙박 공간 등으로 가꿔가는 작업 역시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문화 탐방길 개발 제안도... "전문가·주민 의견 모아 활용방안 모색"
▲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동 광주공원에 있는 사적비군. 맨 앞의 비석은 임진왜란 당시 국난 극복에 큰 역할을 한 권율을 기리는 비석(도원수 충장권공 창의비)이고, 뒤쪽 좌우의 비석은 각각 친일인사 윤웅렬(관찰사 윤공웅렬 선정비), 이근호(관찰사 이공근호 선정비)를 기리는 비석이다. ⓒ 오마이뉴스 소중한
노성태(국제고 교사) 빛고을역사교과모임 회장은 광주공원·사직공원·양림동을 대상으로 한 근현대 문화유산 '투어 워킹 프로그램(역사문화 탐방길)' 개발과 광주역사박물관 건립을 제안했다.
그는 "친일 인사들의 선정비를 철거하는 것보다 단죄비 등 역사 기록물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라면서 "광주 근현대 워킹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자"라고 자신이 구상한 구체적인 역사탐방 코스를 제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일부 사직동 주민은 "선정비를 주민들의 접근성이 좋은 장소로 옮겨 재배치하자" "아예 철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직동 광주공원은 1913년 일제가 지정한 광주 최초의 도시공원으로, 한말 의병전쟁 당시 사망한 일제 군경 등을 기리는 충혼탑과 신사(神社) 등을 세워 식민지배 상징공간으로 활용했던 곳이다. 이곳에는 의병장을 기리는 기념비, 친일 인사의 선정비, (한국전쟁 희생 군경의) 충혼탑, 5·18 유적지 표지석 등이 산재돼 있다.
구용기 시민모임 대표는 "광주공원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잔재, 의병 봉기와 항일운동 역사, 5·18 당시 항쟁 현장 등 다양한 시기의 역사문화 유산이 산재해 있다"라며 "친일 인사의 선정비는 물론 광주공원 일대 공간과 유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전문가·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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