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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도보여행 실패, 지린내 추억만이 남았다

[맞벌이 가족 리씨네 여행에세이 32] 천천히, 유럽캠핑

등록|2016.02.17 15:07 수정|2016.02.17 15:09

▲ 관광객이 많이 찾는 친퀘테레의 어여쁜 해안 마을이다. ⓒ 이성애


▲ 파도가 세고 해수욕장은 크지 않다. ⓒ 이성애


#1. 맥없는 아줌마의 도전, 강한 지린내의 추억만이 

고흐의 흔적을 좇아 아를에 왔건만 극성스런 모기에 쫓겨 서둘러서 짐을 싸야했다. 그렇게  프랑스를 떠났다. 무라카미 류의 책에 등장하는 요염한 밤을 가진 코트다쥐르를 눈으로만 보고 지나쳐 이탈리아 북부 친퀘테레의 산꼭대기 캠핑장에 온 지 며칠 지났다.

나름 한국에서 남편 손에 이끌려 지리산 종주를 두 차례 했던 터라 '남편 없이 혼자 도보여행 하기'를 이곳에서의 도전 과제로 정했다. 6개의 도보 코스 중 몇 곳은 통제된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홀로 기차를 타고 해안가 마을에 갔으나 지난해에 있었던 물난리로 도로가 유실되어 걸을 수 없었다.

정말 큰 맘 먹고 감행했던 미션이기에 안도감, 아쉬움 등 만감이 교차했다. 마음은 허전하고 소변은 급했기에 도마뱀 말고는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는, 으슥한 곳에 퍼질러 앉아 볼일을 봤다. 내려오는 길에 자두를 닮은 작은 야생과일을 따서 먹고 가방에도 담았다. 아줌마의 도전은 그렇게 맥없이 끝이 났다. 그날 마을 기차역 승객대기실에서 나던 노숙인의 오줌 지린내가 가장 강렬한 추억이 되었다.

"아! 이탈리아는 거지도 잘생겼다더니... 그런 생김새를 하고 공공장소에 그런 냄새로 칠갑을 해놓을 줄 누가 상상이나 할까?"

▲ 혼자 도보여행을 하니 도마뱀 도망가는 소리에도 소름이 돋는다. ⓒ 이성애


#2. 겨드랑이 털마저 섹시한 '산속 여자 1호'

도착 첫날 청소를 하는 그녀를 보았다. 난 그냥 캠핑장에서 일하는 40대 여성인 줄 알았다. 여기에서 '그냥'이란 의미는 이때껏 캠핑을 하며 보아온 청소하는 사람들과 같은, 즉 '고용인'인 줄 알았다는 뜻이다. 여하튼 처음 이탈리아에 들어와 산 속에서 만나 눈여겨 본 산 속 여자1호 되겠다. 

마켓과 바를 겸하는 곳에서 만난 여자 2호은 사실 첫날부터 청소하는 여자 1호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50대 후반대의 여자였다. 할머니라고 하면 나를 향해 쌍욕을 퍼부을 것만 같아 무의식적으로 '할머니'란 표현을 기피하게 만드는, 살짝 경이로움이 감도는 아우라를 가진 아줌마였다.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 좀 그렇게 말하면 '성질'이 사나우실 것 같은 여자였다.

왜 바의 여자가 인상적이었냐 하면 그녀의 영업방식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의 평균적인 웃음, 말투, 서비스 태도에 관한 일반 상식을 모두 무너뜨렸다. 손놀림은 과격해서 '아줌마가 화나셨나?'라는 오해와 불편함을 주기에 충분할 만했고 바게트 하나를 주문하면 꼭 이탈리아 말을 가르쳤다. 내가 발음을 따라하다 잘못하면 다시 반복하여 옳은 발음을 가르쳤고 내가 근접하게 발음한다 생각되면 말을 멈췄다. 어떤 칭찬도 없이.

만약 그녀에게 자녀가 있다면 분명 당근보다는 채찍을 사용하여 육아를 했을 것 같다. 그녀의 포스는 대단했기에, 그 포스는 단순히 캠핑장에 입점한 바의 주인에게서 느껴지는 것을 훨씬 능가한다고 판단했기에 나는 묻지도 않고 그녀를 이곳의 주인, 혹은 주인의 친인척일 것이라 판단했다. 더군다나 그녀가 바의 문을 닫고 캠핑장 어딘가에 있을 그녀의 집으로 오르내리는 것을 본 후로 내 판단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남편이 이곳의 주인인 리오와 말을 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곳은 가족이 운영한다고 했다. 각자가 보고 듣고 짐작한 것을 바탕으로 가계도를 열심히 맞춰보니 청소하는 여자 1호인 그녀는 바로 이곳의 주인인 리오의 아내이며 21살, 19살 딸을 가진 중년 여성이었다. 너무나 젊어 보여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내가 그곳에 머문 것은 5일이지만 여자 1호의 복장은 수시로 바뀌었다. 날씬한 몸매에 쩍 달라붙는, 시원한 민소매 옷을 주로 입었고 위아래 색상을 감각적으로 맞춰 입었다. 그리고 등엔  MP3나 카세트를 꽂았고 앞쪽 가슴골에는 휴대폰을 꽂고 아침이면 늘 부지런히 청소를 했다. 음악을 들으며.

풀장에서 처음 여주인을 보았을 때 벗은 몸이 너무 완벽해서 긴가민가했다. 수영은 하지 않고 선베드에 누워 태닝을 하고 있었는데 끈 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끈을 옆으로 내렸다. 역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무리 20살에 출산을 했다고 해도 지금 41살 정도일 그녀의 몸엔 군살이 전혀 없다. 부지런한 비질 때문인지 팔뚝엔 예쁘다는 여자의 근육이 적당히 붙은, 정말 완벽한 섹시미가 느껴지는 몸이었다.

우람한 팔뚝을 두고도 절대 지방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보기보다 의외로 내 몸은 체지방은 적고 물을 많이 먹어 체수분이 높은 거야, 사람들이 내 살은 근육이라고 해" 등 그간 위선적으로 일관되었던 내 변명의 꼬리가 싹둑 잘렸다. 잘려야 마땅했다.

태닝에 취약할 수 있는 겨드랑이 부분을 태우고자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렸을 때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그녀의 겨드랑이에 수북이 난 '털'의 존재였다. 예전에 일본인의 책에서 일본 여자들이 제모에 큰 에너지를 쏟는 것을 보며 좀 과하고 낯설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근래 나를 포함한 한국 여인들도 여름이면 겨드랑이를 중심으로 제모를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이 비단 모델과 연예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행하는 국제적으로 일반적인 문화라고 단정지으려 했는데 순간 그녀의 수북한 털은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했다.

어쩌면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익숙한 문화가 미국 모델들의 이야기, 할리우드 스타 이야기 등이라 다리, 겨드랑이를 비롯한 제모에 민감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일반인이 마치 런웨이를 워킹하는 모델처럼 몸에 난 자연스러운 털을 '깨끗이 없애버려야 할, 들키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젊은 생애 동안 이것을 제거하는 데 많은 돈과 노력을 기울이겠구나 싶다. 여하튼 그녀는 '음악을 들으며 열심히 비질을 하는 섹시한 여주인'으로 정리되었고 그녀에 대한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섹시미'였기에 그 후 그녀의 겨드랑이 털 또한 섹시해보였다. 어험.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바 아줌마와 여주인과의 관계였다.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대에 애가 셋인 스위스 가족이 들어왔다. 부모가 체크인 수속을 하려고 캠핑카를 리셉션 가까이 세워두었을 때 나는 친퀘테레 등반을 완전히 실패한 후 가장 더운 시간대에 기차역에서부터 30분을 걸어 산꼭대기 캠핑장에 올라왔다. 자꾸 빠지는 혀를 들이밀며 그들을 보았다. 만화 둘리의 캐릭터 중 '도넛'의 앞니와 완전 똑같은, 대문짝만하게 큰 앞니 2개가 있었다. 어떻게 자녀 셋이 다 똑같은 치아를 가졌을까 생각하며 그들 곁을 지나 수영복을 갈아입고 풀장에서 열을 식히고 있던 터였다.

잠시 뒤 그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수영장에 왔다. 곧이어 엄마가 요란스럽게 아이들 몸에 자외선차단제를 발라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나게 놀고 있는데 그 밑에서 태닝을 즐기고 있던 여주인이 "마담"하고 스위스 아줌마를 불렀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위쪽 건물의 창문을 가리킨다. 우리 풀장은 바보다 아래쪽에 위치했다. 사실 위쪽에서 보면 바는 1층짜리이지만 경사진 산에 세웠기에 풀장에서 보면 바의 높이는 마치 3층짜리 건물처럼 높아서 웅장해 보였다. <이끼>란 영화에서 마을 이장이 마을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망루 같이 지은 집의 느낌이었다.

그곳의 창으로 아줌마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현지어였기에 '마담'을 빼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손가락질, 표정, 상황을 짐작하건데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면 어떻게 하냐? 빨리 씻어라"인 것 같다. 내 매가리의 1/3을 가진,  도우넛의 앞니를 가진 스위스 엄마는 3남매를 모두 씻긴 후 풀장에 들여보냈다.

잠시 후 풀장에 도착한 아빠가 왔을 때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려고 했으나 온 가족이 말렸다. 바의 창문을 가리키며.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풀장에서 태닝을 하며 가까이 있던 캠핑장의 여주인이 직접(영어도 할 줄 알면서) "자외선차단제를 바르고 들어가시면 안돼요"라고 하면 될 것을 "창문 위를 보세요, 저 분이 하실 말씀이 있나봐요"라고 하는지. 주인이 맞는지, 바의 아줌마는 과연 누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4일째 되던 날 남편과 나는 섹시한 여주인에 대해 말을 한 번 더 나눴다. 그간 각자가 관찰하며 수집한 정보를 교환하는 날인 셈이다. 나는 풀장 사건을 예로 들어 바의 여주인은 '시어머니'일 것이라 말했고 남편은 그건 아닐 것 같다 등등 말했으나 여하튼 "그녀는 유럽 캠핑장 중 비질을 하는 여성 중 가장 섹시한 여자다"와 "그런데 행복해보이지 않는다"에 대해선 같은 생각을 가졌다. 왜 행복해보이지 않을까.

그녀의 남편 리오는 늘 웃고 다니고 딱히 힘쓰는 일을 하지 않던데. 왜 유독 그녀는 열심히 비질을 하고 예약된 자리를  표시하기 위해 무거운 화분을 낑낑대고 옮겨놓고 화분에 물을 주는 등 육체노동을 하는 걸까.

여하튼 남편이 추측한 바 여주인이 남편 리오에게 엄청난 잘못을 하여 그것을 속죄하는 의미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해야 하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이탈리아 시어머니가 가장 무서운데 서슬 시퍼런 시어머니의 명령으로 매일 청소를 해야 하며 하루에 딱 한 번 태닝을 할 수 있는 권리만 주어질 것이다 등으로 추측을 했다. 여하튼 그녀는 웃을 수도, 웃어서도 안 되는, 불행한 상황에 있을 것이다.

#3. 여자 1호와 남자 1호의 사랑은 생각보다 깊었다

떠나는 날이 되었고 물을 사러 들어간 나에게 바의 아줌마와 리오는 쌍으로 나서 '하나'란 뜻을 가진 현지어를 가르쳤다. 난 발음을 따라했고. 짐을 다 꾸리고 체크아웃을 하고 인사를 나눈 후 리셉션을 지나치는 순간 리오와 여주인이 함께 있었다. 나란히 앉았는데 리오는 옆에 앉은 여주인의 허벅지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가 여주인은 목젖이 보일라 크게 웃고 있었다.

"아~ 그녀가 웃고 있다. 그녀는 불행하지 않다. 알고 보니 그녀는 행복한 리오의 아내이자 여주인이었던 것이다."

휴우~ 다행이다. 그녀가 행복해서. 찌이이익, 쫘아아아아. 이것은 그동안 남편과 내가 쓴 소설이 찢어지는 소리다. 쿠헐.

▲ 엄마가 도보여행을 감행한 날 아이들은 아빠와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 이성애


▲ 캠퍼들이 바에 앉아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우리가 누굴 응원하는지 그들이 가만히 지켜봤다. ⓒ 이성애


덧붙이는 글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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