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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100명 가운데 99명은 기계처럼 움직여"

[서평] 존 테일러 개토의 <학교의 배신>

등록|2015.08.10 11:56 수정|2015.08.10 11:56
한국인 중 읽고 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1.7퍼센트에 불과하다. 최근 70퍼센트 중후반대를 오르내리는 대학 진학률은 오이시디 최고 수준이다. 2014년에는 1만2806명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구 1만 명 당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1985년 0.3명에서 2009년 2.1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2010년 기준으로 발행된 도서의 발행 종수는 4만291종이었다. 언뜻 보면 학교교육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학자 노명우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에서 우리나라를 "배운 괴물들의 사회"로 규정했다. "싸가지 없는 애들"과 "추잡스런 중년"과 "나잇값 못하는 늙은이들"이 모인 지하철 풍경을 통해서였다. "배운 괴물들"이 요새 유행한다는 '헬조선', '불지옥반도'를 만들었을 것이다.

존 테일러 개토가 쓴 <학교의 배신>을 읽었다. 개토는 30년 동안 미국 뉴욕 주의 공립 중등학교에 평교사로 재직하면서 공고한 미국 공교육 시스템에 맞섰다. 그만의 '게릴라 학습법'으로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데 매진했다. 그의 전작 <바보 만들기>(민들레)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 또한 강한 영감과 깊은 통찰을 주었다. 곳곳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개토가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는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이다. 비효율적이고 반교육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공립학교의 예산 운용, 우둔함을 가르치는 강제적인 의무교육의 폐해, '공적'이지 않은 공립학교의 파행, 교과서와 숨겨진 교육 과정에 따라 '기계'를 만들어내는 학교와 교사 등이 날카롭게 파헤쳐진다.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은 프러시아(현재 독일)의 의무교육 시스템에 터를 잡고 출발했다. 우리나라의 학교 시스템은 일제 강점기 시절 미국식 시스템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손을 거쳐 들어와 정립된 것이었다. 그 뒤 한국교육은 큰 변화 없이 과거의 시스템을 답습해오고 있다. 화려해 보이는 지표들에도 불구하고 "배운 괴물들의 사회"가 되어 '헬조선'과 '불지옥반도'가 돼버린 이유들이 아닐까.

개토는 미국 공교육 시스템이 "개인이 타고난 지성의 힘을 없애버"(45쪽)린다고 주장한다. 이는 독창적인 사고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한데, 개토에 따르면 이렇게 독창적인 사고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의무교육으로 시작된 공교육 시스템의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고 비판한다.

개토는 1900년 무렵 미국 교육부장관이었던 윌리엄 토리 해리스를 통해 학교교육의 이면을 고발한다. 해리스는 현재와 같은 미국의 학교 시스템을 규격화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다. 나이가 같은 아이들을 한 학년으로 묶고 나눈 뒤 한 교실에 몰아넣고 가르치는 시스템을 개발한 주역이기도 했다.

해리스는 "학생 100명 가운데 99명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 걷고, 이미 굳어진 관행을 따를 뿐"(45쪽)이라고 말하면서 "과학적인 교육은 개인을 로봇처럼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46쪽)이라고 규정했다. "학교는 바깥 세계와 단절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우둔함, 곧 아무 비판 없이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한 무지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사고통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새로운 우둔함은 중류 또는 중상류 계급 사람들에게 더욱 심각합니다. 그들은 체제 순응에 대한 복합적인 필요성 때문에 이미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하나마 학력, 학위 또는 자격증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믿습니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이혼을 하거나 자식들로부터 멀어질 때, 실직을 하거나 주기적으로 삶의 허무감이 찾아들 때, 위태로운 정신의 균형이 깨어져 불완전한 인간성이 드러날 때면 그 믿음이 여지없이 흔들립니다.(45~46쪽)

개토는 아이들을 '기계'로 만드는 학교 시스템이 거대한 비즈니스의 대상이 되었다고 본다. 학생을 볼모로 유지되는 학교 안에서 여러 사람의 주머니로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무책임한 사람을 기르는 양성소"(158쪽)가 된 학교에서 '경주마가 목표지점까지 도달하는 길'을 뜻하는 '커리큘럼'에 따라 질주하듯 살아간다. "이 세상이 도덕적인 우주라는 것을 불신"(94쪽)하는 의무 학교교육의 철학적 기반이 아이들을 옥죈다.

그 철학 기반은 우리가 서로 먹고 먹히는 세상에 살며, 그런 세상에서 피조물들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며 통제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 이론가들은 자유의지를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기계처럼-기자말) 하나의 메커니즘이라고 믿으며, 아이들에 대한 중앙통제가 사라지는 순간 재앙이 뒤따른다고 믿습니다. (중략) 그럴 때 학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또는 권위자의 말밖에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곳이 됩니다.(94~95쪽)

다음 학기부터 '법'으로 인성교육을 강제하는 <인성교육진흥법>이 발효된다고 한다. 서울의 어느 공립학교에서는 교장과 부장교사들이 힘없는 기간제 여교사들을 상대로 집단적으로 성추행을 벌였다고 한다. 충청도의 한 사립학교에서는 교사 자리가 수억 원에 '매매'되었다. "학교의 배신"의 생생한 사례들이라 할 만하다.

며칠 전 지난 글을 뒤적거리다 미국 진보적인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존 듀이가 말한 "학교는 민주주의의 산 공론장"이란 문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이들과 교사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에서 고작 '거수'나 '다수결'을 떠올린다. 민주주의가 사라진 학교에는 일방통행과 성과주의가 횡행한다. 지난 세기 듀이의 말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개토가 말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민주주의로, 개인의 세계로, 가정으로"(192쪽).

<학교의 배신>(이범준 지음 / 북, 콤마 / 2015.7.20. / 192쪽 / 1,0000원)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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