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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기업 생활 10년, 기상천외한 경험?

[서평] <한국인은 미쳤다>

등록|2015.08.11 16:17 수정|2015.08.11 16:17
한국의 많은 청년들은 대기업에 입사하기를 원한다. 국내에서 소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삼성에 들어가기 위해 치러지는 직무적성검사는 '제2의 수능시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많은 이들이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시간과 비용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 청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높은 소득과 직원 복지 시스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청년들은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을 안고 있다. 부모의 실질 소득이 높으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청년에게 학자금 대출은 큰 짐이다.

학자금 대출이라는 짐을 덜어내지 못하면 한국 청년은 사회 초년생이 되기 전부터 '신용 불량자'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동시에 '실패자'로 낙인이 찍힌다. 꿈도 희망도 없는 인생의 시작이다.

그래서 많은 청년이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꿈꾸며, 어린이부터 청소년, 그리고 청년까지 그들의 뒷바라지를 한 부모님도 대기업이 가장 좋은 기업이라고 말한다. 경기 불안정으로 대기업이 불편하면, 선택하는 차선책이 바로 공무원인데… 이런 식으로 대기업과 공무원이 꿈이 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바깥에서 보기에 마냥 좋을 것 같은 대기업이지만, 막상 속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행복하기만 할까? 나는 이 질문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마냥 대기업 찬양을 하는 것은 우리 한국 사회가 재벌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척 쉽게 가진 자의 힘이 정의를 부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특혜를 빌미로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또 최근 벌어진 롯데 왕자의 난도 전혀 낯설지 않다. 가진 자의 세상은 늘 그런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세상은 전혀 다르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이런 재벌의 편익을 위해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제를 철폐하고,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에 대기업 총수들의 이름을 줄줄이 넣었다. 돈 없이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없다.

오직 가진 자가 되는 것.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 에스컬레이터는 대기업이고, 대기업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안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는 수밖에 없다.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한국의 많은 청년이 그것을 가장 이상적인 꿈으로 가슴에 품고 있다.

▲ 한국인은 미쳤다! ⓒ 북하우스


얼마 전 읽은 <한국인은 미쳤다!>는 이런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었다. 프랑스 LG 법인에서 일했던 저자 에리크 쉬르데주는 10년간 LG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한국 사회에 대해 말한다. 그가 책에 옮겨 놓은 한국 사회 속 특정 기업 문화의 장단점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든다.

특히 개인적으로 머리에 남은 건 부회장이 자신의 사진을 찍었다고 하여 다음날에 바로 그 직원의 해고를 명령한 부분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정말 어처구니가없었다. 행사장에서 자신이 사진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을 모른 직원이 찍는 것을 보고 해고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법인의 간부 한 명이 휴대전화로 부회장의 사진을 찍었다. 플래시는 터뜨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찍었지만, 부회장 주변에서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꽤 흥분한 어투의 속삭임이 오갔다. 하지만 출장 마지막 순간이어서 불편한 말은 오가지 않아 나도 모든 일정이 끝났다는 데 기뻐서 의견에 조금 어긋났던 이 사건을 금세 잊어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법인장이 나를 불러 출장에 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별다른 말이 없다가 그는 "부회장님이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찍은 사람들 당장 회사에서 내보내세요"라고 말했다. 그의 요구에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p70)

위 사례는 하나에 불과하다. 정말 놀랄 정도로 음주를 좋아하는 한국 문화가 기업에 어떻게 녹아있는지, 그리고 단순히 비인간적이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선택해 어떻게 한국인이 기업의 이윤을 만들고 있는지 책을 통해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입이 몇 번이나 벌어지고는 했다.

저자 에리스 쉬르데주는 한국 기업 문화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게 아니다. 그는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효율적이다"라며 LG 프랑스 법인에서 있었던 여러 일과 그가 외국인 최초로 400클럽에 들어간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저자는 자신이 임원으로 있는 동안 LG 프랑스 법인에서 인간적인 경영을 도입하고, 좀 더 창의적인 마케팅을 하고 싶어 했다. 한국인과 프랑스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조율하고, 모두가 공생할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고, 그 이유 또한 책에 서술되어 있는데 짧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엘지에서 변화를 꾀하고 싶다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처럼 행동했어야 했고 시스템 안으로 들어갔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절대로 강제로 되지 않는다. 그들의 DNA를 받아들여야 의심을 잠재울 수 있다. 트로이 목마 전략만이 모든 장애물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다. 그 전략으로 무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곳에서만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 내가 정말로 후회하는 것은, 일시적인 실패나 잠깐의 모욕감이 아니다. 내가 세웠던 목표는 좋았지만 실현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썼더라면 어쩌면 목표를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p162)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과연 한국 사람 중에서 누가 이런 책을 집필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단언컨대, 절대 대기업 임원 출신의 한국 사람이 이런 방향성을 가진 책을 집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에서 계속 생활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에 잘못을 알더라도 끝내 입을 닫을 테니까.

내부 고발자를 한국인은 철저히 배신자로 규정하여 많은 해(害)를 가한다. 이런 나라에서 어떤 잘못을 폭로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그것을 약점으로 물어 잡고 돈을 뜯어내려는 일도 포기하는 게 좋다. 한국의 대기업이 가진 힘은 이미 정부를 넘어서고, 모두가 여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마냥 헐뜯는 것은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좋은 점만 보려고 하고, 잘못을 보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는 똑같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변변찮은 이유로 해고되는 노동자가 있고, 퇴직금과 피해 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다. 그것도 대기업에서 말이다.

그러니 대기업 취직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나의 가장 이상적인 꿈이라는 착각은 버리자. LG 전자 해외 법인을 10년 간 이끈 외국인 CEO 에리크 쉬르데주는 <한국인은 미쳤다!> 책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사실을 말한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고, 조금 아픈 사실임에도 알아야 하는 사실을!

"아무런 사심 없이 책을 썼다는 것을 이 지면을 빌려 밝혀두고 싶다. 나는 서양인으로서 10년 동안 간직했고 이제는 끝나버린 엘지에 대한 충성심에 대해 해명할 책임을 느꼈다. 또한, 독자들이 한국의 기업 문화가 일하는 데에 있어서나 삶의 방식에 있어서나 커다란 도전과 같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랐다. 내가 엘지에서 보낸 10년은 직업적인 도전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경험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과 공명정대함에 기대어 책을 썼다. (p167)

한국의 대기업 중 하나인 LG 해외 법인을 이끌며 진실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을 꼭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기업은 이래야지! 난 이렇게 살 거야!' 한다면, 지금 그대로 대기업을 목표로 해도 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인간적인 삶'을 바란다면, 시급히 궤도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노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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