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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살면 로또' 소리 들은 부부의 10년 후

[서평] 장차현실 작가의 가족 이야기, 만화 <또리네 집>

등록|2015.08.13 14:16 수정|2015.08.13 17:54

가족식 서약서장차햔실과 서동일 감독이 가족식을 올릴 때 읽었던 서약서. ⓒ 이명옥


나는 나의 딸 은혜와 나의 아들 은백이를 사랑합니다. 나는 나에게 소중한 딸과 아들을 선물해 준 나의 신부 장현실을 사랑합니다. 나와 장현실이 이루는 가정이 비록 장애와 나이 차이에서 오는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지만 나와 장현실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서 세상의 불편한 시선과 편견 불합리한 고정관념에 기꺼이 도전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장현실과 함께 우리의 소중한 가정을 자유로운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가정으로 더욱 건강하고 튼실한 가정으로 가꾸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2008년 6월 8일 신랑 서동일

지난 2008년 6월 8일, 신랑 서동일과 신부 장차현실이 하객들 앞에서 낭독한 서약서 내용이다(관련 기사 : '장차현실'과 '서동일'이 가족식 올리던 날). 19살 딸 은혜와 3살배기 아들 은백을 포함한 네 식구가 가족식을 올리는 자리였다.

만화가 장차현실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어느 날 이유명호 한의원에서다. 2006년 당시 이유명호 선생이 장차현실을 한의원으로 불렀다. 은백이를 임신하고 힘들어하는 장차현실에게 입맛에 맞는 밥 한 끼를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이 아빠는 연하의 총각이었다. 우리는 '5년 살면 대박, 10년 살면 로또'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면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부부의 행복한 삶이 이어지기를 빌어주었다.

장차현실은 양평에 둥지를 틀고 아이들 만화교실 등 지역사회와 호흡을 같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운증후군 장애를 지닌 스물세 살 딸 은혜, 남편인 다큐멘터리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 감독 서동일, 그리고 초등학생이 된 늦둥이 아들 또리(은백)와 함께 지낸다.

가정을 꾸린 뒤 10년간 삶을 녹여낸 만화

▲ 장차현실의 만화 <또리네 집> 표지사진. ⓒ 보리

최근 장차현실은 그녀가 그린 만화 <또리네 집>을 선보였다. 새로 가정을 꾸려 살며 10년간 겪은 삶을 녹여냈다.

축하의 말을 건네자 장차현실은 "또 한 명의 은혜를 세상에 선보이는 것처럼 마음이 개운치 않다"고 했다. "애정과 애증이 섞인 만화가 되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자기 가족의 일상을 그려냈지만, 결코 개인의 이야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사회에서, 다운증후군 장애를 안고 있는 딸과 살아온 시간. 그 기록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시각과 가족이 겪은 고통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만화 속에는 여성 가장의 고충부터 영화 감독이지만 지역 사회 구성원으로 지역 내 보이지 않는 갈등을 조정하는 '남성 주부' 서동일 감독의 이야기를 비롯해 성과 사랑, 일자리,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이중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성년이 된 딸 은혜의 이야기가가 오롯이 녹아 있다.

나 역시 여성 가장이다. 경미한 지체 장애와 청각 장애를 갖고 있다. 그동안 정규직으로 대접받으며 일해 본 기억이 없다. 아직 대학생인 아들이 졸업한 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해 안정된 생활을 하리란 보장도 없다. 이 사회 전체가 '위험 사회'인 까닭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장애인이 설 자리도 없다. 복지 사회를 만들고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해져서, 장애를 지닌 은혜가 자립적 독립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장차현실 작가.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에도 곁에서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딸 은혜의 모습을 만화에 그려 넣었다. 참 가슴 아린 부분이다.

장애인이 설 자리 없는 한국, 살만한 사회를 보고 싶다

20년 후 그녀들장차현실은 20냔 후 그이 곁에 딸 은혜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렸다. ⓒ 책 갈무리


이럴 줄 몰랐다.장애인이 살아가기 녹록치 않은 한국 사회 ⓒ 책 갈무리


이럴 줄 몰랐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큰딸 은혜.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늘 밝고 씩씩했던 아이.
엄마를 힘들게 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엄마 삶에 희망을 안겨 주는 딸.
은혜 덕분에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빨리 발전하니
복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자랐을 때쯤엔 좋아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복지가 발전하기 전에 아이가 먼저 자랐다.
돈이 없으니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교육을 받는 일
사람답게 사는 일 모두 누리기 어려웠다. - 본문 '이럴 줄 몰랐다' 중에서

또리가 성년이 될 10년 후, <또리네 집>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후속편이 출간된다면 이런 장면을 보고 싶다. 희망이 넘치는 사회가 되어 장애를 지닌 은혜가 더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찾은 모습을. 훗날의 대한민국이 복지가 자리 잡은 살만한 사회, 행복 사회라면 참 좋겠다.

추천사에서 김미경(전 한겨레 기자, 화가)씨는 "독자는 은혜의 자리에 누군가를, 아니 무엇을 놓고 읽어 보아도 좋을 것"이라 말한다. 20년 후 내 곁에, 또 당신 곁에는 그 누가 혹은 그 무엇이 자리하게 될 것인가.

나무 엄마나무 엄마 ⓒ 책 갈무리


'나무 엄마'들이 자기의 수액을 모두 빨려 고목으로 남더라도, 식구들을 이고 지고 가는 사회임에는 변함이 없을지라도. 우리네 삶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면 좋겠다.

엄마에게 힘이 되고 때론 짐이 되는 식구들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솟아난다 해도
엄마는 식구들을 이고지고 간다
나뿐이랴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씩씩한 나무 엄마들이 내 곁에 무수히 있다. -본문 '나무 엄마' 중에서
덧붙이는 글 <또리네 집>(장차현실 글·그림/ 보리출판사/ 2015.8.1./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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