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지뢰 폭발' 청와대 해명 찝찝한 까닭
[청와대 일기 27] 국방부의 말바꾸기와 부실한 해명 그리고 '입막음'
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경태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 박근혜 대통령이 7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마치고 자리에 앉고 있다. ⓒ 연합뉴스
청와대 안보통일 관계자들이 지난 12일 오후 6시를 넘겨 기자실을 찾았습니다.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 매설한 목함지뢰가 폭발하면서 우리 군인 2명이 크게 다친 일을 두고 청와대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 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반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국회에서는 사건 발생 다음날인 5일에 박근혜 대통령의 경원선 남측구간 연결 기공식 참석, 통일부의 대북 고위급 회담 제안 등이 이어진 점을 지적하며 "정신 나간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죠.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박 대통령의 행사 참석 및 통일부의 회담 제의 당시까진 DMZ에서 폭발한 폭발물을 '북한의 목함지뢰'라고 보고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더욱이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5일 북한의 허가를 받고 방북하던 상황이라 북한의 도발을 의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또 통일부의 대북 고위급 회담 제의 접수 이후인 5일 오후가 돼서야 '해당 폭발물이 북한의 목함지뢰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이 당시에도 유실된 지뢰인지 매설한 지뢰인지 북한의 의도성 여부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결국, 박 대통령이 '북한이 의도적으로 DMZ에 지뢰를 매설했다'는 조사 결론을 보고받은 건 8일 오후였습니다. (관련 기사 : 청와대 "박 대통령, 지뢰 폭발 후 4차례 보고 받았다")
그런데 청와대의 해명을 듣고 나서도 모든 의혹이 깔끔히 풀리진 않습니다. 과연 군 당국은 사건 발생 당일에 그 폭발물이 북한의 지뢰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까요?
국방장관의 '말실수'라지만 여당 의원도 못 믿는다
▲ 의원들 질타에 곤혹스러운 한민구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지난 4일 발생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과 관련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일단, 국방부는 말을 바꿨습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12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의에서 "청와대에 언제 보고했느냐"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 "4일 늦게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가능성이 높다, 그런 것이 보고가 됐고"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청와대가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고도 5일 일정을 강행한 셈이 됩니다.
그러나 한 장관은 같은 날 오후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문에 "4일 국가안보실에서 대통령에게 지뢰사건 상황보고를 했고 5일에 안보실이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추정된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라고 답합니다.
반나절도 안 돼 말을 바꾼 겁니다. '오락가락' 답변인 만큼 논란은 커졌고 결국 청와대가 직접 나서 추가 해명을 덧붙인 것이죠. 국방부도 같은 날 저녁 해명 자료를 통해 "(한 장관이) 기억에 의존해서 발언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라며 청와대의 해명에 힘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한 장관의 '실수'로만 보기엔 석연치 않습니다. 당장 여당 의원조차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13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그날 사건 직후에 북한이 (지뢰 매설)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보고 안 받아도 군 생활을 그렇게 오래 하신 분이 직감적으로 모를 수 없는 것"이라며 "모른다면 정말 군생활 완전 엉망으로 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 근거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하 의원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지뢰는 발목지뢰라서 발목만 날아가는데 (부상 입은 군인의) 무릎까지 날아갔다, 이것은 북한 지뢰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사고가 일어난 지형이 우리 쪽에서 북쪽으로 경사가 내려가 있다"라며 "북한 것이 떠내려올 가능성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4일 사건 발생 당시 우리 군인의 부상 정도, 지형의 경사도 등만 파악해도 '북한의 의도적인 지뢰 매설'이란 추정을 갖고 있을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사건 발생 당일 오전 10시께 받은 "DMZ 수색 작전 중 미상의 폭발물 폭발로 우리 군인 2명 부상"이라는 첫 번째 보고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물증까지 확보한 뒤 100% 확실한 보고만 올려야 한다는 군 당국의 판단에 따른 것일까요. 아니면 청와대에서 보고 내용을 '각색'한 것일까요.
진위 여부 떠나 안이한 상황대처 꾸짖는 게 맞지 않나
▲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에 대한 정부 책임론을 겨냥해 "지금은 아군 진지에 혀로 쓰는 탄환인 설탄을 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 남소연
전자의 경우가 맞을 거라고 희망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위급 안보라인의 안이한 상황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이에 대해 하 의원은 "(청와대) 안보라인이 정무적인 판단을 해야 했는데 4일 '북한이 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며 "안보실장이 대통령한테 보고 드려서 '화해적인 제스처는 중단해야 합니다', 그런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그러니까 이 사건의 1차적인 문제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정무적 판단 능력 결여"라면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4일 (사건) 발생했을 때 바로 외교안보 장관들한테 '북한 (도발) 가능성이 높으니까 참고해서 여러가지 일이 있을 때 판단해라'고 얘기했어야 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4성 장군 출신인 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이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비무장지대 안에서 지뢰폭발에 대한 사고들이 왕왕 일어나서 아마도 초기에 그런 사고의 유형 아니겠냐는, 그런 최초 판단이 안이했던 것 같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합동조사팀도 6일에 보냈는데 (북한 소행 여부가) 애매할 경우에는 4일에 바로 보내서 판단을 보완했어야 했다"라며 "군사적인 안보문제는 애매할 경우에는 과도한 조치를 해야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안보라인 '경질'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더욱이 최윤희 합동참모의장이 '북한의 목함지뢰로 추정된다'는 보고가 올라간 5일 저녁 음주회식을 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온 판입니다.(관련 기사 : 지뢰 도발 다음날 합참의장 "음주했으나 안 취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같은 질타를 '입막음'하려는 이도 있습니다.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권이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사에 때가 있는 것으로서 격분된 발언으로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매도하고, 의구심을 증폭하는 것은 군의 전력을 약화시킨다"라며 "지금은 아군 진지에 혀로 쓰는 탄환인 '설탄(舌彈)'을 쏴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상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책임론'을 자해행위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방부의 말 바꾸기, 충분치 않은 해명과 입막음. 이 모든 것들이 도리어 불신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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