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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엄마가 식사를 못한다

[부모님의 뒷모습 ⑨]

등록|2015.08.15 16:50 수정|2015.08.15 16:50
"어머니가 죽도 못 드시고 설사만 하시는데 걱정이다."

불볕더위다. 이런 더위에 팔순 엄마가 식사를 못 한다니. 게다가 설사까지. 큰일이다. 출근한 친정아버지가 아침부터 전화했다. 마침 남편의 여름 휴가 첫날이다. 부랴부랴 친정에 전화했다. 안 받는다. 죽도 못 드셔서 기운 없는 분이 어디를 가신 걸까? 아니 기운이 없어서 전화도 못 받으시는 건 아닐까? 서둘러 남편과 친정으로 향했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기척이 없다. 전화를 걸어도 안 받는다. 창문을 두드려도 소용이 없다. 담을 넘어들어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열린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이 없는 거 같다.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지, 엄마 병원 가신 거 아니에요?"
"한의원 갔나? 거기 100번 버스 정류장에 빵집 있지. 그 옆에 한의원 있어. 거기 가 봐."

100번 버스 정류장까지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이런 뙤약볕에는 나도 걸어가기 쉽지 않다. 기운도 없는 양반이 이 복더위에 걸어가다가 쓰러지신 건 아닐까? 차로 이동을 하며 골목에 엄마가 있나 살폈다. 허름한 한의원이 보인다. 한의원에 들어가서 신발을 벗으려는데 가지런히 놓인 작은 신발이 보인다. 엄마 신이다. 엄마 여기 있구나. 휴~ 다행이다. 길가에 안 쓰러지신 것도 더 이상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도 다 다행이다.

"엄마."

불 켜진 치료실 커튼을 살짝 열었다. 누워있던 엄마가 눈을 뜬다. 얼굴에 살이 많이 빠졌다. 엄마는 침을 맞고 있다. 치료가 끝나고 엄마를 부축해서 한의원을 나섰다. 머리로 내리쬐는 뙤약볕이 뜨겁다. 죽도 못 드신 양반이 이 볕을 이고 어떻게 한의원까지 걸어서 왔을까? 집으로 돌아왔다.

"죽은 드셨어요?"
"아버지가 끓여 놓고 가셔서 조금 먹었어. 너희도 점심 먹어. 밥통에 밥 있어. 난 나중에 먹을 테니."

밥을 차렸다. 엄마가 드실 죽도 상을 차렸다.

"엄마, 혼자 드시면 밥이 넘어가겠어?"

엄마가 겨우 일어나 수저를 든다. 천천히 드신다. 죽을 한 그릇 다 비웠다. 다행이다.

"엄마, 죽도 못 드시면 병원 가서 링거라도 맞아야 해요. 그냥 이렇게 있다가는 큰일 나요."

대답이 없다. 내 말이 안 들리는 건지 대답을 하기 싫은 건지 모르겠다. 엄마 얼굴을 보니 표정이 안 좋다.

"난 병원 안 가."
"엄마, 몸이 안 좋아지면 병원 가는 거야. 누가 가고 싶어 가."
"걱정하지 마. 여름엔 예전에도 조금씩 그랬어. 내가 조심해야 하는데 아무거나 막 먹어서 그래. 이제 괜찮아질 거야. 난 원래 병원 안 가."

아버지는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하는데 엄마는 병원을 통 안 가려고 하신다. 여태 팔순이 넘도록 엄마가 병원에 간 경우는 많지 않다. 아버지가 수술했을 때도 병실이 답답하다고 비상계단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한숨이 나온다. 정작 당신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야 하면 어떻게 병원 생활을 하실지. 사실 나도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이 걱정되긴 한다. 가면 피 뽑고 여러 검사를 한다고 이리저리 끌고 다닐 게 뻔하다. 엄마 몸이 그런 검사를 버티기 힘들 거 같다.

엄마는 힘드신지 주무신다.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수저통에 아버지 칫솔이랑 치약이 들어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여기저기 얼룩덜룩하다. 곰팡이다. 꺼내서 싹싹 닦았다. 왜 칫솔을 통에 넣어 두었을까? 설거지하며 씻어 둔 그릇을 살펴보았다. 밥풀이 굳어 그대로인 게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엄마가 아프시니 아버지가 집안일을 하실 거다. 게다가 아버지는 매일 일을 하러 다니니 얼마나 바쁘실까?

청소하러 방에 들어갔다. 모기장이 그대로 처져 있다. 그런데 모기장 안에 모기가 있다. 손으로 모기 세 마리를 잡았다. 손바닥을 펴보니 피가 묻어 나온다. 휴~ 모기장이 모기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기가 자유롭게 사람 피 빨아 먹는 장소가 되었다. 들고 날고 할 때 틈으로 모기가 들어갔을 거다. 가뜩이나 죽도 못 드셔서 기운 없는 엄마가 모기에게 피까지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

비질하는데 구석에 먼지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이렇게 먼지가 많을 줄 몰랐는데 한 곳으로 모으니 가득하다. 먼지가 쓰레받기에 곱게 안 들어간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먼지 때문에 화가 난다. 그리고 부모님께 죄송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안 좋다. 이 더위가 지나야 엄마의 소화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더위에 식사도 못 하고 설사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다시 기운을 차리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번 여름을 잘 보내지 못하며 정말 큰 일이다.

그리고 다음 날, 친정으로 전화했다. "아침 식사 하셨어요?" 엄마에게 물었다. 큰 의미 없이 했던 이 인사말이 이렇게 간절하긴 처음이다.

"어,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 아버지가 해 놓고 간 죽 먹었어. 너도 이제 엄마 걱정 그만해. 나 잘 지내니까. 언니 오빠한테도 엄마 말 하지 말고."
"엄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낫기나 해."
"너희 오면 엄마는 더 힘들어. 그러니까 오지 마! 알았지."
"알았어. 나 안 가게 하려면 아프지나 마."

언니 오빠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언니 오빠도 바쁠 거다. 그렇다고 해서 연락을 안 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난다면 그땐 진짜 어떤 원망을 들을지 모른다. 언니 오빠에게 연락했다. 짬 내서 들러 보겠다고 한다.

자식들이 부모 걱정하는 것을 엄마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나를 봐도 그렇다. 나도 내 살림이 있고 자식이 있으니 항상 부모 걱정은 뒷전이다. 짬날 때 잠깐 부모 걱정을 할 뿐이다. 만일 내가 엄마처럼 죽도 못 먹고 설사를 한다면 엄마는 애간장을 끓이며 걱정을 하실 거다. 부모님께 받은 은덕을 생각하면 내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부족하고 부끄럽다.

여름 더위가 수그러들며 엄마가 다행히 기력을 조금씩 찾아갔다. 한동안 나는 친정에 전화해서 제일 먼저 "엄마, 오늘 식사는 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물었다. 그렇게 엄마는 여든 살 2012년 8월을 잘 넘겨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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