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거미줄 지배구조', 해체는 이렇게
[제'법'이네12-재벌개혁 위한 3법①] 기업 공시를 이용한 재벌의 체질 개선
법치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13년 6월까지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대국민사과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희훈
조현아, 신격호와 그 아들들, 그리고 최태원. 재벌 총수 일가들은 올해도 여전히 뉴스 메이커가 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일명 땅콩회항으로, 롯데그룹 신씨 일가는 경영권 다툼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수백억 원 배임죄로 징역을 살다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각기 사연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모두 카메라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모습들에는 한국사회 재벌개혁의 필요성이 응축돼 있기도 하다.
재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언제나 비정상적인 지배구조가 꼽힌다. 재벌 총수 일가들은 낮은 지분을 가지고도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로 기업을 소유한다. 이사회는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사실상 재벌 일가의 거수기 노릇을 할 뿐이다. 공정거래법 강화와 소액주주들의 집단행동으로 이를 바꿔보려는 시도가 계속됐지만, 재벌 기업은 그때마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사후적 조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터진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지배구조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총수 일가의 지분은 2.41%에 불과했다. '오너'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80개 국내 계열사 사이에 416개의 순환출자를 가지고 왕에 가까운 지배력을 갖췄다. 게다가 일본롯데 소속의 회사들이 롯데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국적 논란'까지 벌어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지만 따가운 시선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재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처방이 나온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재벌개혁 방안 이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 대통령은 다중대표소송, 집단소송 등 주주의 권한을 강화해 재벌을 견제하는 방안을 제시했었다. 박영선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도 '불법 이익 환수법' 등을 제기하고 있다. 대부분 재벌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사후적 조치로 억제하는 방안들이다.
방향을 바꿔 재벌 기업의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이언주 새정치연합 의원이 최근 제출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기업의 공시 의무를 활용해 불합리한 부분을 스스로 고치게 만들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 의원은 앞선 지난 2013년에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내용을 공시하게 만드는 법안을 제출 한 바 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기업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다.
"사전적이고 내부적인 통제로 지배구조 개선"
▲ 롯데그룹의 지분구조도(2015년 4월 1일 기준) ⓒ 공정거래위원회
이 의원이 지난 10일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재벌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투명한 경영권 승계에 관한 원칙과 절차를 마련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 그리고 재벌 총수 등이 보유한 해외계열사 지분 또한 공시토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재벌 대기업들은 기업의 일반현황과 주식소유현황, 특수 관계인과의 거래현황 등만 공시하게 돼 있다. 기업 내부의 문제는 전혀 노출되지 않는 것이다.
이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재벌대기업은 내부적으로 자체규범을 만들어 이를 공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회사의 이사회의 구성과 운영, 임원의 전문성 요건, 임원의 성과평가 및 최고경영자의 자격 등 경영승계 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원칙과 절차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또 재벌 총수일가 본인이나 특수 관계인을 통해 소유하고 있는 외국 법인의 주식보유 현황 역시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했다.
이러한 내용이 공시가 되면 그만큼 투자자와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가 전달되고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이 의원의 생각이다. 공시내용에 부적절한 내용이나 비정상적인 지배구조가 담길 경우 투자자와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스스로 그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겼다. 재벌 총수 일가가 해외 기업의 지분을 통해 국내 기업을 지배하는 경우도 같은 방식으로 개선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 의원이 지난 2013년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안'도 같은 맥락이다. 이 의원이 이 법안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노력에 관한 정보를 사업보고서 항목으로 추가했다. 근로조건과 노사관계 및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경영활동, 지역사회 공헌활동, 저출산 문제 등에 관한 사항을 밝히므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의도다. 이러한 취지의 법안은 영국과 프랑스 등 많은 선진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이 의원은 이와 함께 재벌 대기업의 내부거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도 준비 중이다. 부당한 내부거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강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반복되고 있는 문제다. 이 의원은 이것 역시 보다 높은 수준의 의사결정을 통해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내부거래는 사실상 재벌 총수 일가의 의도대로 운영될 수 있는 이사회의 승인으로 할 수 있다. 이를 주주총회까지 거치게 한다는 것이다.
이언주 의원은 이러한 법안 발의와 관련해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우리나라 재벌대기업들의 공통된 사항"이라며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처벌을 해왔으나 이러한 사후적, 외부적 규제로는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내부의 행동원리와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원리에 작동할 수 있는 사전적이고 내부적 통제를 통해 자연스레 지배구조가 개선될 수 있도록 기업생태계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는 법안과 관련해 "비재무적 정보의 공시는 투자자들의 투자를 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비자, 근로자, 거래처, 지역사회 등 다양해진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에 기업이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현재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는데, 하루 빨리 통과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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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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