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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태도에 관하여>를 읽고

등록|2015.08.17 17:24 수정|2015.08.17 17:24

▲ 태도에 관하여<임경선> 작가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간결한 이미지의 느낌이 드러난 북커버 ⓒ 권순지


저자는 자신의 충분한 경험을 통해 체득했던 태도들의 타당성을 공감 있게 풀어냈다.

스스로가 충만해질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올바른 태도로 그 가치를 구현해 나가는 일은, 살면서 꼭 해야만 하는 과제일 것이라 생각하게 만든 이 책을 파헤쳐본다.

세상의 모든 의미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

누구나 상상 속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 상상의 끝에 진짜로 움직이는 '행동'이 시작되어야만 다시 또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예컨대 저자가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스스로 준비하고 알아보는 과정에서 느꼈던 그 힘은, 실제로 글을 쓰는 일에 충실히 매진할 수 있게 했다. 건강상의 문제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뒤 두려움을 떨쳐내고 새로이 다른 일을 시작하려 애쓴 그 이야기는, 비슷한 일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느낄 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소설가 김연수씨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소설을 쓰기 위해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는 '일단 그 소설을 쓰는 것' 이라고 주장한 부분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일을 하고 싶으면 우선 그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같은 진리. 누구에게 질문할 필요조차 없고 더더군다나 누가 말린다고 해서 관두지도 않는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투입해 강단 있는 결론을 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 때 행동하지 않는다면 내심 주장하고 있던 강력한 의견이 맹렬히 추락해 영영 자취를 드러내지 않을지 모른다.

자신의 일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대상이 내가 아니었을 때 분명히 닥칠 좌절감을 맛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단 움직이라는 거다. 덧붙여 그게 사랑이든 일이든 마찬가지라고 피력한다.

나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

사랑 앞에 무력해지라 말한다. 누가 더 사랑을 하건 말건 그건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만큼 표현하여 충분히 사랑하라는 것. 아주 단순하지만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연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덜 사랑하는 쪽이 유리하다.' 라며, 그것이 불변의 진리인 것 처럼 주장하는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보통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져진 손해 보지 않는 능력이 연애 옵션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그런 옵션과 능력이 무색해질 만큼, 충분히 마음을 다해 사랑하면 설사 이별이 온다 해도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덜 사랑하는 것에 토를 다는 시간에 내가 그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 그렇게 해서 둘 사이의 충만한 사랑을 어떠한 기술 없이 온전한 사랑의 힘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힘이 그저 일단 사랑하는 것임을 충분히 공감하도록 하기 위해 또 다른 작품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에서는 최고의 사치가 사랑이라는 내용의 독백이 등장한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되물으며 마무리한 그 독백은 오히려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이냐의 큰 명제의 답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껏 말한 임경선 작가의 사랑법과 일맥상통하는 듯 했다.

<비치 보이스의 God Only Knows>노래 가사를 통해 교감한 남편과의 경험담도 서슴없이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언제나 어떠한 이유로 이별은 있을 수 있다는 그녀 특유의 리얼리즘적인 발언을 한다.

'우리가 그저 그렇게 한때 서로의 곁에 머물러 있다 가기에 그토록 너그럽고 관대하게 서로를 지켜봐 줄 수 있었나 보다.'

인생의 기초체력

성실하다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최대한의 성실성을 발휘했던 그 과정의 경험들이 쌓여 인생의 기초체력을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원한다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꿈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과 성실을 보인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보상이 있을 거라는 신념은 죽도록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통속적인 주장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물론 운도 무시할 수 없다. 모든 일의 결과를 위해서 운이라는 고맙고도 얄미운 존재도 늘 따라다닌다. 그러나 비록 운이 따르지 않더라도 덜 실망하고, 지녀왔던 성실함을 유지해 나가는 연습도 인생의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눈을 늘 반짝이게 한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며 그 시간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 나간다. 열심히 해 본 자만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문득 인생이 무의미하다며 가끔 혹은 자주 투덜대는 사람들의 성실성은 실제로 바닥을 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공정함의 대상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삶의 태도에는 늘 '나'라는 중요 주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시한 공정함의 태도 역시 우선적으로 '나'에서 기반 한다. '나'를 존중해야만 상대도 존중할 수 있고, 그 존중의 깊이는 자존감의 깊이로도 설명된다. 스스로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의 자존감은 꽤 뿌리가 깊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굳건히 걸어 나간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도 그 미움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마냥 모르고 살아가기도 한다.

반면 그 미움과 비난 때문에 불안에 떨며 건강치 못한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자신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상대에게도 불안을 요구하며 같아지길 원하기도 한다.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 보통 품기 마련인 불안이나 미움 등의 복잡한 감정의 대상이 결국 상대가 아닌 자신이라고 서술한 부분에서는 깊은 공감을 느꼈다.

"내가 싫어하는 내모습이 네게서 보일 때, 그 때부터 네가 싫어졌어."

새삼스럽게 몇 년이 지나 지금에 와서야 내게 솔직하게 털어놨던 한 친구의 말이 내 귓전을 울린다. 그런 말을 했던 친구에게 이기적이라는 날선 말로 비난했던 한때의 내가 지금만큼만 나를 존중하고 믿었다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었을까.

나를 존중하지 못했고 또 존중받지 못했던 관계에 대한 기억과 관련한 깨달음은 새로이 관계를 맺을 때에 지키고자 하는 기준을 만들어냈다. 그건 어떠한 상황이든, 상대가 누구이던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상대 역시 그 자신을 잃지 않도록 함께 존중해주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내일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더 깊이 생각해보기도 전에, 과연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사그라들지 않는 불안으로 잠식당하는 게 다반사였던 그간의 삶. 내 모든 일의 근간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잊지 않고 성실히 노력하면 불안은 어느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매사 떨쳐버리지 못하는 불안과 고민을 단번에 털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덜 수 있었다. 내가 믿는 좋은 태도를 꼭 간직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그 외에 하잘 것 없는 욕심들은 내려놓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내게 꼭 맞을 태도를 하나씩 실행해나가다 보면 내가 그리고자 하는 세계가 드러나겠지. 그 세계가 완성되는 날, 그 때 다시 이 책을 정독해야겠다. 너무 고마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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