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어제의 '노숙인', 바리스타로 희망 쏘다

[현장 탐방] 인천 서구 노숙인 재활시설 '은혜의 집'

등록|2015.08.17 20:01 수정|2015.08.17 20:01

함께하는 이웃 노숙인사단법인 서천재단이 운영하는 은혜의 집 팸플릿 문구 ⓒ 이정민


"인천에도 노숙인을 위한 시설이 있었나요?"

기자가 처음 취재 의뢰를 받고 던진 질문이다. 나름 인천에서 40년 가까이 살고 있어 누구보다 지역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왜 모르고 있었지'라는 당혹스러움과 자괴감을 안고 17일 오전 10시께 서구에 위치한 노숙인 재활시설 '은혜의 집'을 찾았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위치한 '은혜의 집'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아침햇살을 벗 삼아 자유롭게 오가는 노숙인 입소자들(이하 가족)이 눈에 띄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지하 대강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13년째 진행하고 있는 약사사 대휴 스님과 반야회 신도, 시설 가족들의 법회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스님, 안녕하세요. 왜 이렇게 오래간만에 오셨어요(웃음)"

스님이 강당에서 예불을 끝내고 법문을 열자 가족 한 명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강당에는 대략 60여 명의 시설 가족이 스님과 마주했다. 나이는 50~60대 중후반. 대부분 오랜 노숙생활과 각종 질병에 노출돼 정신질환과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스님 따로, 가족들 따로 노는 형국이었다. 그래도 스님은 익숙한 듯 연신 손짓, 발짓을 해가며 구연동화를 이어갔다.

노숙인 인식전환 1004 프로젝트...사회적 편견을 내려놓다

▲ 약사사 대휴 스님의 야단법석 ⓒ 이정민


스님의 우스꽝스러운 몸 개그가 빛을 발할 무렵, 시설 가족들의 어머니 역할을 자처한 김명동 사무국장이 기자를 반겼다. 그는 먼저 명함 뒤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노숙인'이란 명칭 대신 '응급지원 서비스 이용자'란 말을 강조했다. 그리고 명함 글귀를 선보였다.

'집이 없어도, 장애가 있어도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되지 않고, 언제나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은혜의 집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에 함께 해주세요.'

김 국장이 전하고자 했던 '노숙인 인식전환 1004프로젝트(후원회원)'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노숙인이라고 천대받고 멸시받을 이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27년 동안 오로지 노숙인 자활에 열정을 쏟아 부은 그의 긴 회한이 몰려왔다.

"한국사회는 '노숙인 등'이라고 명명된 사람들에 대하여 '게으르다' '불결하다' '위험하다' '무지하다' 등 막연하고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은혜의 집은 '천사(1004)프로젝트'라는 사업을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어요. 이들의 공통점은 빈곤이지 게으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역의 여러 병원과 기업, 봉사단체 등이 발 벗고 나서서 우리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기 시작했습니다."

▲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은혜의 집 전경 ⓒ 이정민


그에 따르면 노숙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회적 편견의 늪지대라는 것. 즉 멀쩡한 사람도 한 순간에 재산을 모두 잃고 거리를 떠돌다 노숙인으로 낙인찍히면 그걸로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자'로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 김 국장은 '부랑인' '떠돌이 인생'이라는 나쁜 이미지의 노숙인 대신 '응급지원 서비스 이용자'란 말로 대체했다. 이들이 다시 사회에 나가 떳떳하게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권을 되찾아주기 위해서였다.

어제의 노숙인에서 희망 찾는 바리스타로...

▲ 시설 2층에 놓여 있는 휴게시설 풍경 ⓒ 이정민


김 국장과 간단 인터뷰를 마치고 시설을 둘러봤다. 총 4층 구조의 건물은 1층이 여자 숙소, 나머지는 남자 숙소로 구성됐다. 휴게시설, 의무시설, 샤워시설 등이 잘 구비됐다. 숙소도 말끔히 청소돼 청결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김 국장과 직원들의 수많은 노력이 뒷받침했다. 시설 초창기에는 청결과 위생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들이 편히 쉬고 누울 수 있는 자리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러다보니 지역주민과 갈등을 빚고 시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사도 나와 미운오리새끼로 내몰렸다. 이에 김 국장은 단단히 결심했다. '우리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편견도 바뀌지 않는다고...'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바꿔갔다. 가족 스스로 새 칫솔을 사용하고, 매일 목욕을 하며, 깨끗한 옷을 입는 등 작은 것부터 변화해 나갔다. 자활을 위한 활동도 시작했다. 제과제빵, 바리스타, 운전면허, 중장비, 세차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가족들은 이내 통장을 만들고 다시 사회에 나갔다. 그제야 지역주민과 후원업체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듯 김 국장의 천사프로젝트가 빛을 발한 것이다.

▲ 노숙인 시설이라고 믿기지 않는 청결하고 깨끗한 생활방 모습 ⓒ 이정민


김 국장은 지하 식당을 둘러보면서 시설 가족 스스로 배식을 하는 모습을 유심히 봐달라고 강조했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지적장애인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시설의 점심 풍경이었다. 남을 위해 줄을 서는 배려의 모습도 보였다. 김 국장은 한 남자를 가리키며 인사를 건넸다.

"이 기자님, 여기 이 분이 은혜의 집 에코카페 바리스타에요. 한 때는 노숙인이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생활 직업인이죠. 무릎이 좋지 않아 다리가 불편해도 열정하나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에코카페는 은혜의 집 내부에 있다. 노숙인의 재활을 돕는 착한 커피 전문점이다. 작은 회의실도 갖춰져 지역 주민들과 왕래하며 정을 교류하고 있다. 이 카페도 '1004프로젝트' 후원 회원들의 도움으로 열게 된 것이다. 김 국장의 말 대로 하면, 천사 1004명이 모여서 또 다른 노숙인 천사를 낳는 격이다.

김 국장은 마지막으로 '세상에 공짜 없다'라는 잠언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노력 없이 얻지 말자'는 지난한 그의 인생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지난 30년간 직원들과 함께한 헌신과 노력을 알아달라는 수줍은 고백이었다. 그는 '함께 합시다'란 말로 기자를 배웅했다.  

한편 '은혜의 집'은 정원 350명이 기준이지만 병원 환자와 상담 환자 등을 더해 현재 550여명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여기에 재입소자 비율 20% 등을 감안하면 매년 노숙인 1000여명이 재활치료 상담을 받고 있다. 이 중 정신지체, 알콜중독 등 정신질환 장애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노인과 여성이 각각 30%를 차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참조. 사회복지법인 서천재단 <은혜의 집> 후원 문의. 032-590-8530~1. www.eunhye.or.kr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