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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만들기 정치세력화는 필패한다

[기고] 고원 서울과기대 교수의 ‘왜 신당이 필요한가?’ ②

등록|2015.08.25 14:17 수정|2015.08.25 14:17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의 자문단에서 활동했던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신당 창당'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두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말]

정의당 피켓시위, "선거제도 개혁 집중하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대로 유지키로 잠정 합의한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직선거법심사소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진후, 김제남, 서기호, 박원석 의원이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집중하라"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심상정 대표는 "정개특위 본회의 차원에서 공직선거법 의결이 이뤄지기 전에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책임있는 논의와 결정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심 대표는 "정당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유성호


기고 ①에서 이어집니다

90%의 새정치연합과 10%의 진보정당

지금 야권은 새정치민주연합이든 정의당이든 가릴 것 없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내년 총선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식물정당의 상태로 들어가고 있다. 사실상 출구가 안 보이는 상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그대로 총선을 치를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이 확보할 수 있는 의석의 최대치는 90석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야권 참사가 벌어진다는 얘기다. 이는 곧 여/야, 보수/진보 간 권력불균형의 심화로 이어져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기본 가치의 연쇄적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적 참사로 발전하게 된다는 뜻이다.

정의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당은 최근 5% 지지율을 넘길 조짐을 보이기도 하나 새정치민주연합에 실망한 유권자들 일부가 반사적으로 흡수되면서 생기는 일시적 착시일 가능성이 크다. 정의당이 기존 진보강화론의 연장에서 진보통합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지금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정의당은 존재 소멸의 위기 한가운데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야권이 이런 퇴행적 구도 속에 안주해 온 데에는 야권 내부의 왜곡된 거버넌스에 근본 원인이 있다. 야권은 90% 정도의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새정치연합과 10% 정도의 영역을 점하는 나머지 진보정당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서로 견제와 균형의 건강한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데 실패해 왔다. 기존 진보정당들은 새정치연합과는 각기 다른 영역을 점유하면서 지분을 획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새정연의 강력한 도전자가 되지 못하였다. 새정치연합을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10% 지분을 놓고 자기들끼리 아귀다툼을 벌였다.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통합진보당 사태가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새정치연합은 아무런 견제와 도전을 받지 않고 야권 영역의 90%를 독점하면서 안주해왔다. 내부에는 정치성향이나 역사적 맥락이 서로 다른 이질적 세력들이 혼거했지만 견제와 균형의 정치를 작동시키기보다는 당권과 공천지분을 둘러싼 끝없는 갈등과 분열만을 재연해 왔다. 결론적으로 새정치연합의 부패와 타락을 막을 수 있는 대내외적 거버넌스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야, 보수-진보를 뛰어넘는 정치질서 재편

그러므로 야권혁신의 핵심은 건강한 거버넌스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소위 정치권과 언론의 용어로 표현하면 새판 짜기이다. 필자는 지금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가 사력을 다해 혁신투쟁을 벌이는 데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잘 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혁신위원회 활동과정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제안들도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내부의 혁신으로는 구조적 한계 또한 뚜렷함을 정직하게 자인해야 할 것이다.

새판 짜기의 핵심 목표는 현재의 야권질서를 '혼성단일군에서 연합군으로' 재편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의 독점구조에 대한 강력한 견제와 도전세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혼성단일군의 형태로는 더 이상 야권의 기득권 안주와 정체성 부재 그리고 혼란과 지리멸렬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 그 속에서는 이익과 지분을 둘러싼 분열과 담합이 줄기차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과점적 집단을 분할하여 계열 분리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이 과정에서 야권-진보 밖에 있는 개혁적 인물과 그룹들을 흡수하여 낡은 여/야, 보수/진보를 뛰어넘는 정치질서 재편을 이뤄야 한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노선을 가진 야권정당들이 수구적 보수패권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전략과 국가혁신의 비전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자유롭게 경쟁하면서도 연합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그 경쟁에서 승리한 집단이 야권진영의 대표주자로 부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경쟁적 연합의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야권 새판 짜기의 핵심이고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고의 혁신이다.

정권교체를 위한 신당 창당

이는 야권 내부에 반드시 신당이 등장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신당의 건설은 다가오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의 정권교체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지금의 총량적 역학구조는 국가기구, 언론, 재정의 측면에서 현격히 기울어진 운동장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강렬한 변화 열망 때문에 언제든지 수구보수·새누리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 등 야권은 참사 수준의 결과를 벗어날 길이 거의 없다. 그것은 야권의 분열-통합과는 무관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무능, 혼란, 태만으로 집약되는 야권의 상태는 국민들에게 이미 실망을 넘어 분노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무능한 야권으로 인해 생기는 참사를 방지하고 정권교체-사회교체를 주도할 섹터로서 대안적 신당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안적 신당의 출현은 야권 재편을 둘러싼 치열한 내부 담론투쟁과 정치경쟁을 촉발하여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이 의제, 이슈, 매스컴의 헤드라인을 점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 사이의 후보단일화 논쟁이 어떻게 그런 효과를 창출했는지 경험한 바 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현상이 없었더라면 여야 일대일 구도가 불가능했던 것처럼 지금도 대안적 신당 없이 총선, 대선을 돌파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금 야권에는 분열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서로 치고받고 논쟁함으로써 담론을 지배해가는 전략이 절실하다. 다양성의 힘은 획일성의 힘보다 더 세다.

어떤 신당이어야 하는가?

그런데 모든 신당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여러 번 신당 실험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정체성이 불투명하거나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진보/보수, 여/야의 대결구도를 뛰어넘는다는 명분을 내세운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로 신당이 지향하는 가치와 핵심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니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인 '구도'가 드러날 수가 없었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자신의 대척점이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신당의 정치실험이 독자적 정치구도를 창출하지 못하고 기성정치세력들이 주도하는 대립구도의 종속변수로 전락하거나, 방향성이 불분명한 중간입장에 머무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것은 결국 이슈를 모호하게 만들고 이슈 대변 능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강한 일체감과 적극적 행동유인을 줄 수 없게 했다. 심지어는 내부에서 정체성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조직의 분열을 초래하였다. 이런 신당으로는 야권분열과 배신이라는 비난공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기성정당에 흡수되거나 소멸되는 길을 걸어야 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러므로 신당은 과거의 실패한 실험을 반면교사로 정확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신당은 어떤 당이어야 하는가?

첫째, 신당은 사회교체, 국가혁신, 대한민국 재창조를 통해 국민 삶의 근본적 변화를 핵심 목표로 삼는 정당이어야 한다. 좋은 정치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이다. 야당이 무기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소명의식을 잃어버리고 생계형 월급쟁이집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런 선상에서 신당은 역사적 소임으로서 사회구조의 근본 혁신을 통한 대한민국재창조를 핵심목표로 삼는 정당이어야 한다. 실질적으로 대중의 삶을 변화시키는 대담한 이슈와 의제들을 만들어 던지고, 이를 통해 강력한 대결구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말로만 경제·민생을 외치면서 정권교체 외에는 주장할 내용이 없는 기성야당과 구별된다. 또 의원정수축소 같은 지엽적 안건을 새로운 정치라며 내세웠다 국민을 어처구니없게 만든 안철수 정치와도 구별된다.

둘째, 신당의 가치와 노선은 계급과 이념, 그리고 진영의 논리를 넘어서, 좌우에 걸쳐 있는 모든 특권-기득권을 반대하고, 민주주의 밖의 시민, 노동 밖의 노동까지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1% 특권층과 10% 기득권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들, 공동체의 이익과 발전보다는 사적 이익과 권력배분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을 배제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보수특권 대 진보기득권의 정당구도를 뛰어넘는 정당이어야 한다. 대체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당이나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정치가 그에 가장 근접한 모델이 될 것이다.

셋째, 신당은 수구적 보수패권체제를 구성하는 일체의 낡은 사회제도와 정책들을 폐기시키기 위해 선명한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싸워야 한다.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는 종북담론과 싸워야 하고, 개발독재의 잔재인 신권위주의와 싸워야 하고, 국가주도의 재벌자본주의와 싸워야 하고, 패권적 지역주의와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일체의 사회적 차별과 세습 그리고 특혜의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무능하고 어정쩡한 새정치연합을 대신해 '과거 대 미래'의 대결구도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는 새정치연합을 주요타격대상으로 삼는 '야권교체론'과 구별되는 점이다.

넷째, 신당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단순히 리더십의 물갈이를 지향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세력기반을 재구성해야 한다. 세력기반의 중심이 호남+486+기득권 노동에서 청년+공동체시민+비정규직노동으로 확대되어 나가야 한다. 신당은 바로 이 같은 세력교체를 주도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신당은 출발부터 당의 기간골격을 만드는 데서 청년들과 공동체시민들을 주축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지역, 일자리, 기업 등 각종 사회현장에서 대중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2세대 사회운동과 결합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신당은 프로페셔널리즘, 일관성, 기강과 규율을 갖고 움직이는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치정체성의 구심이 명확해야 한다. 조직화 과정에서는 결코 새정치연합의 여집합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치와 정책노선의 기준에 맞고 실질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물들을 가려 뽑아야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외연을 확장해서는 안 된다. 인위적으로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 알박기 공천을 해서도 안 된다. 기성야당들과의 소모적 논쟁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치·노선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전국적 정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방향으로 매우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신당은 오직 국민들에게 원칙과 진정성으로 승부하고 인정받아 나가는 정당이어야 한다.

신당 창당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그냥 앉아서 당할 것인가, 아니면 참사를 막기 위해 무슨 노력이라도 해 볼 것인가 둘 중 하나이다. 공동체시민의 책임 있는 자세라면 당연히 후자다. 대안적 신당의 건설은 신당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사회 권력균형의 붕괴를 막고 장차 예고되는 국가공동체 최악의 역주행에 맞서 싸우는 발판을 만드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당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주체세력은 있는지 묻는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어떤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 기성야당이 차기 총선에서 선방할 수 있는지, 대선에서 집권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주체세력은 도대체 무엇이며,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묻고 싶다.

13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과 확고한 지역기반 그리고 막대한 재정과 조직을 가진 야당은 왜 집권을 못하는지 묻고 싶다. 유력 대선주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영웅 만들기 정치세력화의 실험은 지도자를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추종자들의 운명을 지도자의 명멸에 종속시킴으로써 성과의 축적이 전혀 이루어질 수 없게 했다.

이번 2016년 총선을 통해 기성정당 밖에서 독자적 힘으로 교섭단체에 준하는 정당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확증해낸다면 정치권의 대변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미래가치로 무장하고 기성의 낡은 정치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전사(warrior)들이 몇 명이라도 출현할 수 있다면 지금 고여 있는 물처럼 정체되어 있는 한국정치에 역동성과 활력이 솟고 새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 그것은 한국정치를 넘어서 국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회교체, 국가혁신, 대한민국재창조의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다.

신당 냄새는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진짜와 가짜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내는 힘은 의식 있는 사람들의 관심과 동참에서 나온다. 대중의 바다 저 깊은 심연에 강렬히 내연하고 있고 당장이라도 분출할 수 있는 불꽃이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각자 스스로가 준비된 미래를 위한 행동에 착수해야 한다. 예고 없이 폭발한 안철수 현상 앞에서 넋을 잃고 우왕좌왕했듯이 또 다시 허겁지겁할 것인가? 가진 사람은 불안하고 못 가진 사람은 처절한 이 사회의 덫을 깨부수는 역사의 현장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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