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암페어로 살기, 어느 기자의 도전
[독서 리뷰] 사이토 겐이치로 <전기 없이 우아하게>
▲ 책 표지 ⓒ 티티
그는 왜 더는 전력회사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2011년 3월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지진이 기억난다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할 것 같다. 그때 그가 살던 저층 주택도 벽에 금이 가고 창이 휘어지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재해를 당한 입장이 되었다고 한다.
해일이 원자력발전소를 덮치다
하지만 그가 당한 피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게 며칠 뒤에 밝혀졌다. 미야기 현 앞바다에서 최대 진도 7의 지진이 발생해 15미터의 해일이 일었고 이 해일이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를 덮쳐 버린 것이다.
해일에 휩쓸려 충격을 받은 원자력발전소는 제어 불능 상태가 됐고, 급기야는 수소 폭발을 일으키며 흰 연기와 더불어 대량의 방사성물질을 공기 중으로 방출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수소 폭발로 주변에 사는 주민 대부분은 대피를 했고, 기약 없는 난민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의 끔찍했던 에피소드 중 하나를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북쪽에서 휭휭 소리를 내며 바람이 불어들더니 화창했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동시에 새까매진 하늘에서 눈이 옆으로 때리듯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방에 함박눈으로 새하얘졌다. 실외여서 그 많은 사람들이 눈을 피할 장소는 없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거 죽음의 눈 아니야? 방사성 눈이잖아." - 본문 중에서
남학생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단다. 방사성 눈이라니. 말이 되는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며칠 뒤 정말로 공기 중에서 방사선이 검출됐고, 거리에 나와 있던 모든 사람들이 피폭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국가도 도쿄전력도 주민들이 피폭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언론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하지 않았다고 분개했지만 저자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다.
후쿠시마 현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지만, 원자력발전소의 상황이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쿄전력에서 온 상무의 브리핑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진 못했다. 그러자 브리핑이 끝나고 나가는 상무에 대고 누군가가 소리치며 물었다. "후쿠시마에 희망은 있습니까?" 이 질문에 상무는 어렵게 지켜오던 표정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기자는 깨달았다.
여기 있는 모두가, 도쿄전력 간부조차 원자력발전소에서 벌어진 사고를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 비상사태는 계속된다. 원자력발전소는 앞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지진 발생시 15.7미터의 지진 해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도쿄전력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해안가에 건설했다. 그런데 이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전기는 누구를 위한 전기인가. 이 곳의 전기는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으로 흘러나간다. 후쿠시마 현민들을 위한 전기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사고가 일어나면 피해를 볼 사람은 모두 후쿠시마 현민이다.
기자는 통제 불가능한 원자력발전소를 보면서, 맥 없이 피해자가 된 후쿠시마 현민들을 보면서, 자신이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얼마나 안이하게 생각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째서 전력회사를 의심하지 않았는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왜 사고가 생기지 않으리라 믿었는지, 왜 전력회사와 국가의 '안전하다'는 말을 신봉했던 건지, 그는 뒤늦게야 한숨을 쉬며 후회를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저자는 전기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도쿄로 인사 온 후, 밤을 낮처럼 밝히는 네온사인을 보고 나서야 밝음이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전 사고 직후, 도쿄는 가로수와 네온사인의 빛을 줄여 밤을 진짜 밤답고 어른스럽게 유지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자 도쿄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밤을 화려하기 밝히기 시작했다.
다시 재가동된 원자력발전소
▲ 기억하자 후쿠시마, 멈춰라 월성1호기지난 3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기억하자 후쿠시마, 멈춰라 월성1호기' 표어를 내걸고 탈핵문화제가 열렸다. ⓒ 정대희
사고 후 1년 3개월이 지나자 정부 또한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 생활을 지킨다"는 명분이었지만, 그 국민들은 원자력발전소가 얼마나 자신들의 삶을 쉽게 파괴할 수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시위를 시작한 국민들. 그런데 그 시위의 가장자리엔 눈이 부시도록 밝은 네온사인과 빌딩 불빛이 국민들의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밤을 낮처럼 즐기고는 싶지만, 원자력발전소만은 안 된다는 국민들의 말. 이 말에 정부가 끄떡이나 할까.
밤을 밤으로 두지 않고, 저 하늘에 빛나는 별을 용납하지 않는 생활을 즐기는 동안에는, 수상에게 "당신들이 원하니까 재가동하는 겁니다."라는 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본문 중에서
그래서 기자는 직접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전기를 줄이는 행동을.
5암페어 절전 생활을 하며
책의 반 이상은 기자가 직접 체험하는 5암페어 생활이 직접적이고 현실적이게 묘사되어 있었다. 여기서 5암페어 생활이란 일본에서만 가능한 생활인데, 그것도 6개 전력회사와 연결된 지역에서만 가능한 생활이다.
도쿄전력을 포함한 6개 전력회사에서는 '계약 암페어제'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암페어란 각 가정으로 흘러 들어오는 전류의 양을 말하는데, 각각의 가정에서는 전력회사와 계약을 할 때 암페어 양을 선택할 수 있다. 양을 적게 선택할수록 기본요금이 저렴해지는 효과를 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기자가 선택한 5암페어란 전력 회사에서 제공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전기 양인데 전력 회사 직원의 말대로 평범한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초절전 상태를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궁금해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암페어를 선택할 수 있는지 한국전력공사에 전화를 해봤다. 고객센터 직원은 내 질문에 너무나 친절하면서도 너무나 당황한 목소리로 어렵게 말을 이으며 기억을 짜내다가, 이내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걸려 온 전화에서 고객센터 직원은 우리 나라에서는 암페어를 선택할 수 없다고 웃으며 말을 해주었다.
2012년 7월, 기자는 5암페어 생활을 시작했고, 점점 더 전기가 없는 생활에 이력이 나더니, 급기야는 냉장고도 필요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전자레인지 대신 철제 찜통을, 전기밥솥 대신 냄비를, 히터 대신 두꺼운 양말과 이불을 사용했고, 더위나 추위를 이겨내는 신공을 부리기도 했다.
여기다 더해 태양열 패널까지 설치하자 그는 점점 더 자신감이 붙었다. 국가와 거대 전력회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그의 희망에 감응돼 주위에서도 한 명, 두 명 5암페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냉장고까지 끊어 버린 어느 날 그는 집을 나서면서 전기 차단기를 아예 내려 버렸다. 그가 집에 없을 며칠 동안 집안의 그 어느 물건도 전기를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넘치는 홀가분함을 느꼈다고 했다.
결혼을 한 뒤에도 계속 5암페어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기자, 그를 향한 악성 비난('혼자만 잘났냐!'라는 류의 비난들)에도 끄떡없이 그는 책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거대 시스템이나 불건전한 에너지에 의지하지 않고, 태고부터 생물에게 생명과 힘을 전해 준 태양을 아군으로 삼아 내 손으로 자연 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한다. 지구에 부끄럼 없이 정직하게 사는 이 상쾌함은 산이나 초원에서 사는 행운을 거머쥔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이 절대 아니다. 도시에서 사는 수많은 사람에게도 활짝 열려 있다. - 본문 중에서
올해 우리나라는 뜨거운 여름을 전기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예비전력이 널널해 남은 여름 기간에도 끄떡없을 듯이 보인다. 이 넘치는 전기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 당연히 발전소일 것이고, 그 중 일부는 원자력발전소일 것이다. 큰 위험이 경고되고 있는데도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의존량은 국내 총 발전량의 30%를 넘게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 그 비중은 더 커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일본엔 없는 사고대책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라도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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